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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머슴 부처 외 9 편 / 송유미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6/21 [23:02] | 조회수 : 2,977

 

  © 시인뉴스 포엠



 

운주사 머슴 부처                     외 총 10

 

 

                                             송유미

 

 

 

 운주사 머슴부처 한 분 돌 속에 장승처럼 서서 바람으로 눈이 덮인 산길을 자꾸 쓸고 있다 전생에 무슨 업보로 염병할 천연두라도 앓았던 것일까 왕곰보의 보기 흉하게 얽은 얼굴에는 눈물이 살을 파고들어 고름이 질질 흘러내린다 열반에 드는 일도 저와 같은 고역일 것인데 이중 삼중 고행을 하고 있는 머슴 부처, 사람의 손때 묻은 가사자락도 몹쓸 담뱃불에 덴 흔적…… 부처들도 일하는 부처, 노는 부처, 공부하는 부처 따로 따로 어울리는지 외따로이 떨어진 외로운 산비탈에 서서 눈길만 쓸고 있는 머슴 부처, 팔이 달아난 줄도 모르고 싹싹 빗질하는 아릿한 소리, 눈이 덮인 산길도 어느새 피가 배여 나와 황톳물이 질척거린다

 

 

 

 

 

 

 

희망 유리 상회

 

 

 

허름한 희망 유리 상회 창문은

수족관처럼 뭉클뭉클 몰려다니는

양떼구름을 키우고 모래 바람도 키운다

어느 창틀에든 맞게 잘라 놓은

여러 개의 유리들은

골목길 모롱이에서 튀어나온

똑같은 크기의 승용차와 사람들을

무수히 복제해서 쏟아내기도 한다

때론 흐릿하거나 밝거나 어두운

희망 유리 상회 창문 안을 기웃대면

심해에 사는 거북이처럼

등이 굽은 주인을 만날 수 있다

한 장 한 장 저마다 다른

바다를 품은 듯 바람에 잔물결 치는

희망 유리 상회, 문이 열린 날보다

문이 굳게 닫힌 날이 많은 희망 유리 상회

어쩌다 밤늦게 그 앞을 지나노라면

밤바다보다 고요한 침묵에

나는 지느러미 돋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된다

 

 

 

 

 

 

뿌리론

 

 

 

쓸 만한 나사 하나 찾으려고 연장함 뒤적인다

한번 어디엔가 박혔다가 튕겨 나온 나사들

다시 쓰기 어렵 나사의 뿌리가 다쳤기 때문이다

화분에 옮겨 심다가 잘려나간 뿌리로는

다시 어디에 심어도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통째로 그자의 눈에 거슬려 뽑혀 나와

다시 그 자리의 틈을 파고들기 어렵듯이

천직의 일자리를 잃은 무수한 나사들이 칼잠을 자고 있다

 

물질주의의 뿌리가 없이는 가난한 민초의 생은

부평초의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가능한 한 그 뿌리를 많이 융성하게 번식시켜야 하고

그 뿌리를 잃지 않아야

이 세상에다 꽝꽝

내 목소리의 뿌리내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철면피로 망치를 다잡아 쥐고

녹이 슬었지만 그나마 뿌리가 생생한 나사 하나 찾아

단단한 벽에 한 그루 나무를 심듯이 쾅쾅

집 전체가 무너지게 나사를 박는다

이 나사가 튕겨 나오면 집 한 채도 무너질 것이다

 

이보다 세상이 단단하니

뽑히지 않은 뿌리들은 더 손잡고 깊어갈 것이다

 

 

 

 

 

 

 

 

가대기 예수

 

 

 

그가 평생 등짐을 지고 걸어서 올라온

계단의 길이는 이미 하늘에 닿아 있었으나

그는 그걸 계산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의 힘든 노역으로 받아 갈 노임만 생각했다

 

왕소금 같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그는 꿈속에서도 종종 무거운 등짐을 지고

계단을 올라가다 추락하곤 했다

 

그러나 그건 꿈이 아니라

건설 공사장에서 꿈처럼 추락한 것이다

현장 사람들과 경찰들이 달려왔으나

그는 이미 죽어있었고

아무도 그의 신원을 알지 못해

그가 일한 반나절의 일당 이만 오천 원으로

그의 화장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나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리고 2시간 후, 한 줌 재로 나온

시구의 화장비가 더도 덜도 아닌

이만 오천 원이라는 사실에

동료 하나만 눈물을 줄줄 대책 없이 흘렸다

 

다음 날 예수가 뜬금없이 부활했다는

신문에 대문짝하게 사진기사가 나왔으나

아무도 죽은 가대기 사내의 얼굴이

왜 예수의 사진으로 나왔는지

눈물을 흘린 그만 알 수 있었다

 

 

 

 

 

 

 

동백연탄

 

 

 

빈손만 남고 망한, 동백연탄 공장 자리에

활활 타는 듯 붉은 동백꽃이 탄불처럼 피었다

방금 불을 갈아 넣어서 불꽃이 일어난 듯

후끈후끈 땅 냄새 석탄냄새 나는

무너져 내리는 인부 숙소 안마당

활활 방금 갈아서 내버린

뜨거운 연탄재인 듯, 동백꽃불이 일렁인다

귀뚜라미 석유 보일러 집집마다 들어와서

속이 까맣게 타서 죽은 연탄 공장 주인은

하나 둘 떠나는 인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연탄은

스스로를 돕는 이 두 손바닥 이상이 없습니다)

겨우내 꽁꽁 언 삼신할매 손바닥 두 장이

싹싹 차가운 아궁이에 꽃불 일구네

녹슨 연탄 기계 꺼내 철커덕거리며

한 치 오차 없이 19공탄 찍어내네

활활 온 지구에 온기를 데우며

상차(上車)의 붉은 마킹을

허공에다 쿡쿡 눌러 찍으며

 

 

 

 

 

 

 

  

탱화 속의 폭설


 

 

 

좌골 신경통 앓던 노모, 눈 오는 날 수미산으로 떠나고
탱화틀 속에 천수관음보살 혼자 남아 웃고 계신다
목욕재계하고 흰옷 입고 산문을 넘어간 금어(金魚)
아교 이긴 탱화 속에 끈끈하게 잠시 들어가 출렁이는 오후,
백열등 흐릿한 집 아궁이에선 누가 장작불을 때는지
굴뚝 위로 모람모람 연기가 올라오고
문풍지 뜯겨져 우는 방에선 밤 깊도록 들려오는 재봉틀 소리,
이승의 신경통 앓는 소리를 내며 물고기 비늘 반짝이는 가죽옷 짓는다
저 옷을 입고 범어사 처마 끝에 매달리거나
만어사 골짜기 돌 속에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어머니 반평생을 앓다간 아픔으로
목어 우는 소리라도 될 수 있다면
합장 하고 타박타박 내려오는 산길
눈 속에 아렴풋이 멀어져 가는 탱화 속의 빈집
지붕 위엔 둥실 달이 떠 있고, 문고리에 쩍 달라붙은 달빛이
실뭉치처럼 설(), (), (), 풀어져 나오고 있다

 

 

 

 

 

 

해주항까지



   아버지 벗어 놓은 십구문(十九文) 고무신을 배처럼 끌고 다녔다 댓돌 위에 놓인 십구문 고무신. 왜 그렇게 신고 싶었는지 동구 밖까지 끌고 나가면 너무 커서 엎어지고 자빠지고 종아리 매를 맞아도 타박타박 낙타처럼 끌고 다니던 십 구문의 아버지 검정고무신

 

내 작은 칠문 반(七文半)의 꼭 맞은 꽃신은 다락방에 꽃씨를 가득 담아 숨겨 두고, 백일홍 피기만 기다렸었지 외할머니가 그랬나 어머니가 그랬나 외할머니 어머니 큰오빠 아버지 십구문 검정고무신에 미어터지게 몸을 집어넣어서 한강을 도강해 올 때 달이 너무 밝아서 큰오빠를 바늘처럼 빠뜨리고 월남(越南)했다고

누옥의 담장 위에 상현달 뜬다 외할머니 댓돌 위 벗어둔 흰 고무신 둥둥 떠나간다 철철 비새는 유년의 집 한 채 싣고 아버지 십구문 검정고무신 무적 울린다  

 

꽃씨 가득 뿌린 꽃신아, 저 해주항까지 잘 가라, 안녕 !

 

 

 

 

 

 

 

천 개의 말이 댓잎에서 쏟아진다

-순이에게

 

 

 

앙상한 겨울나무들 수화를 한다

옹알이 하듯이 떨어지는 나뭇잎들 수다를 떤다

한밤에 공중전화 부스 수화기 들면 고인 빗소리가 쏟아진다

 

어릴 적 어머니 청계천 시장에 밥장사 나가고 일곱 살 나는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나를 돌보는 열세 살의 순이의 손바닥이 내 창백한 이마에 손을 얹으면 그렇게 뜨거울 수가 없었다 어린 나는 순이가 참아온 말들이 손바닥에 몰려와서 뜨거운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가끔 비가 오면 마당에 나와 물장난하는 나를 보고 놀란 순이의 손가락이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한참 커서야 수화(手話)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러 더러워서 말 못하고 살아가다가도, 어릴 적처럼 이따금 뭉클뭉클 베갯잇이며 이불깃에 피비린내 나는 말을 쏟아낸다…… 당골 할머니 흔드는 댓가지에서 양잿물에 삶아도 잘 빠지지 않는 영혼의 말들이, 자판기를 두드리는 내 천개의 손가락을 빌려 컴퓨터 화면 속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평생 식모살이를 전전하다가 끝내 고향 저수지에 빠져죽은 순이의 넋을 건져 올리는 긴 장대 끝에서 하얀 햇빛 쏟아진다 온몸에 묻은 더러운 말을 씻어내는 댓잎의 말이 쏟아진다

 

뭉툭 손목이 잘려나간 가로수의 슬픈 말이 달의 물방울을 적셔가요

말의 물방울 속을 떠도는 환영같아요*

 

 

 

*일본 영화 <환생> OST에서

 

 

 

 

 

  

관계
-서쪽이 있어야 동쪽이 있다



촛대에 살던 나비 한 마리 문을 열자 어디론가 떠났다
촛대는 나비 그리워 더 많은 나비를 떠나보낸다
떠난 나비의 빈자리에 촛농이 쌓여간다
가만히 있어도 촛대의 몸에는 나비가 일렁인다
촛대는 촛대가 아니라 나비의 고향
나비들이 촛대에 붙여서 사는 동안
알 수 없이 높아진 정신의 촛대
청산을 어깨에 떠메고
날아가는 나비들은 더 높은 촛대를 향해 날아간다
유리창나비는 유리창에서 잡을 수는 없다
꽁꽁 얼어가는 얼음송곳으로
제 발등을 찍고 있다

 

 

 

 

 

 

 

 왕오천국전

 

 

                                          살아생전 조그마한

                                          항아리 속으로 못 들어가고

                                          죽어서도 조그마한

                                          항아리 채우지 못하네

                                             ―정삼일의 「인생」에서

 

 

옹관보다 단단한 살 속에 뼈를 가두었네

살을 찢고 알이 되어 나오려 하지만

껍질만 찢어지네 하두 악바리같이 살아

푸른 징소리 한번 내지 못했네

양은 냄비 같은 얇은 마음,

작은 소리에도 모양새 일그러지네

본디 본향이 없는 나는

이슬로도 돌아가지 못하네

그래도 봄이 오면

자꾸만 내 몸은 꽃피고 싶네

푸른 창이 되어 열리고 싶네

철면피의 이 단단한 심장에서

뜨거운 지옥이 끓어 넘치지만

고통의 북소리 한번 제대로 울리지 못하네

옹관 밖으로 발을 내민

낙타의 능인(能仁)이 나보다

모래사막을 먼저 건너가네

 

 

 

 

 

약력: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대표시집<검은 옥수수밭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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