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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쌓듯 살아온 / 이어산(시인, 문학평론가)

곽인숙 시인이 풀어놓은 삶의 편린과 어머니를 탁본한 여자의 이야기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6/24 [11:01] | 조회수 : 248

 

▲     ©시인뉴스 포엠

 

 

탑을 쌓듯 살아온

시인이 풀어놓은 삶의 편린과

어머니를 탁본한 여자의 이야기

 

이어산(시인, 문학평론가)

 

 

 ‘시를 쓴다’는 말은 ‘나를 쓴다’라는 말이다. 내가 살아온 삶에서 보고 겪고 체득한 이야기를 쓰고, 느끼고 상상한 일을 쓰고, 했던 일과 하고 싶었던 일을 쓴다. 그 이야기 안에는 대부분 사랑의 대상이 있다. 독자가 느끼는 비슷한 감정은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결국 ‘쓴다는 말과 일고 공감한다’라는 말은 같은 시공에 있는 일이다. 해마다 숱한 시인이 등장을 한다. 그들의 손에 들린 시집은 완결편이 아니라 시의 입문서다. 누가 시에 대해 완결을 정할 수 있을까. 이미 기존의 시집을 추간한 경험이 있는 시인일지라도 다시 펴드는 무형의 원고지를 앞 둔 시인은 늘 초보일 수밖에 없다. 앞에 섰다는 말만큼 긴장되는 단어가 또 있나 생각을 해보니 문득 100M 달리기 직전의 선수가 떠오른다. 그렇다. 시인을 두고 달리기 선수라고 말을 한다면 결코 먼 의미는 아닐 것이다. 시를 쓴다는 말은 달리기 선수로서의 출발점이 앞이라는 말이다. 어떤 시를 쓰느냐 보다 어떻게 써나갈 거냐는 말이 더 정확하리라.

 

 누군가의 삶이 담겨있는 편지를 먼저 열어보는 것 같은 시 해설은 매번 새롭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선 미생의 이야기 속을 함께 하는 초대장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실 시는 시로 말하는 것이기에 굳이 해설을 덧붙일 필요가 없기도 하다. 그래도 해설은 그 시인의 시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그를 더욱 이해하는데 필요한 방편이라고 믿기에 사족이 아닌 머릿돌을 세우는 책임감으로 시인의 길을 축복하려 한다. 힘든 길이지만 아주 잘 오셨다는 인사를 앞서 전하고 싶다.

 

                    봄바람이 지나야

                아찔한 향기가 익어 터지는

                오월

                흩어진 벚꽃 날아간 곳으로

                다시 꽃은 여문다

                하얀 소문이 무성해진다

 

                붉은 손수건 흔들면

                꽃조차 붉어진다고

                산이 비운 자락마다 아카시아도

                붉어지는 일인지

                향기를 수소문하는 바람 편에

                유월이 오면

               

                아찔하게 더 아찔하게

 

                꽃이 진다

                하얗께 익은 아카시아 탓이다

 

                - 「아찔한 아카시아 꽃은」에서

 

 첫 이야기는 꽃의 이야기다. 아카시아 꽃이 첫 포문을 연다. 몇 십번을 거듭해도 부족한 주제가 꽃의 이야기다. 다양한 종류만큼 얽힌 사정과 연상이 되는 사람이 많은 탓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자태나 치명적인 향기만으로도 시의 재료가 되기 안성맞춤하다. 그렇기에 시의 재료로 쓰고자 할 땐 조금 신중해야만 한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어쩌면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에겐 금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반복이라면 구태여 다신 반복을 하는 일은 소모전이 되기 마련이니까. 그런 이유로 재료와 상관없이 시의 제목을 신중하고 독특하게 쓰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첫걸음을 떼는 일이 이미 시가 시작되는 것이니까. ‘아찔한’이라는 표현에 우선 눈이 간다. 같은 물건이라도 홍보가 시각을 환기를 시키는 효과를 주는 것처럼/ 아찔한 아카시아꽃은 어떤 모습을 묘사한 것일까? 시인의 일인칭 관점에서 보고 느낀 아찔함을 좇아 읽어나가 보자. ‘봄바람이 지나야/아찔한 향기가 익어터지는/오월/흩어진 벚꽃 날아간 곳으로/다시 꽃은 여문다/하얀 소문이 무성해진다’. , 향기를 두고 아찔하다고 표현을 했다. 그것도 익어 터지는 오월의 꽃향기를/ 벚꽃이 그렇게 하약ㅎ게 진 자리로 찾아든 꽃의 향기가. 살고 죽는 일의 자연스런 순서를 이어달리기로 배가되는 향이 아찔하다는 표현으로. ‘아찔하게 더 아찔하게/꽃이 진다/하얗게 익은 아카시아 탓이다’. 당연히 피었으니 지는 이치를 따르는 꽃이 아찔하다 썼다. 진행되는 삶의 순서는 늘 이런 음과 양의 순환이 따르는 일이라 시인의 시야는 현실을 있는 대로 보는 정확한 이성을 토대로 시인만의 혜안으로 현실을 승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시인이 세상을 위해 하는 몫이다. 화가는 색과 느낌을 섞는 일로 세상을 회화로 보여주는 일처럼 시인은 시각적인 일을 전인격적인 통로, 즉 육감까지 동원된 감성으로 보여줘야 한다.

 

                예뻐 심었더니

                온 마당이 꽃으로 답을 주는

                잔치로 갑니다

                엷어진 하늘과 함께 종종 갑니다

                붙잡아 두고 싶었던 시절의 마음입니다

 

                - 「수국 꽃잔치」에서

 

 수국을 보는 시선도 이런 선행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예뻐 심었더니/온 마당이 꽃으로 답을 주는/잔치로 갑니다’ 꽃을 묘사하기 저의 마음을 아주 단순한 진행으로 담백하게 적었다. 예뻐 심었다는 말이 담백하다. 왜 심었냐는 질문은 없었지만 꽃을 보고자 하는 마음을 그대로 담은 문장이 단순함에도 시의 문장으로 써도 손색이 없다. 구태여 어렵고 멋진 시어를 고민할 필요 없다는 말이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 ‘붙잡아 두고 싶었던 시절의 마음’이라는 다음의 문장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연역의 관계로 풀어지는 깨끗한 언어로 표현을 했다. 많은 문장이 있지만 독특한 진행이 돋보인다.

 

               

 

                햇살을 좋아하는 꽃찔레

                다섯 장 꽃잎이 소박한 손을 포갠

                잎태에도 빛이 배여

                찔레꽃 향기는 구슬프다

 

                가난했던 시절에만 피어

                배고픈 마음에 밥이 되던 찔레꽃

                먹으면 달고 시려

                달처럼 서럽던 애달픈 꽃찔레

 

                - 「찔레꽃 속사정」에서

 

 찔레는 다섯 장의 꽃잎이라는 정보를 자연스레 적으면서 시의 현실성도 부각시킨 시다. 시가 블을 디딘 곳이 현실적이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햇살을 좋아하는 꽃찔레/찔레꽃 향기는 구슬프다’ 까지 한 호흡으로 읽혀진다. 시에 어떤 지정된 순서가 있진 않다. 그 순서가 이미 시의 시작인 탓이다. 그럼에도 시가 순서를 지닌다는 말은 시로 써진 순간 그 시마의 규칙에 의한 순서가 생기는 것이다. 시인이 정한 순서로 호흡이 된다는 뜻이다.

 

 시인의 순서의 이해 시는 시각적인 흐름으로 물이 흐르듯 하거나 산을 오르는 거칠고 대담한 호흡으로 읽히기도 한다. 한 호흡으로 읽힌다는 말이 꼭 정답은 아니다. 시의 변화는 무엇보다 다양성에 기반을 한다. 특별하다는 말과 독특하다는 말은 그런 예상할 수 없는 모든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그런 모든 변화를 한 시인이 다 보여줄 필요도 없다. 시인의 특별함은 시의 변화를 추구하는 성숙일 것이다. 자신의 스타일에 집착하는 것이 지나쳐 아집이 돼버린다면 독자가 먼저 알고 외면당하는 일에 이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인에게 한 호흡을 일궈내는 일은 앞으로의 성숙에 기반이 돼 줄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진다. 좋은 시작이다.

 

                태풍처럼 휘몰아쳤던

                시절하

               

                꿈길에 나 왔노라

                고백할까

 

                저 달빛 대신할 말

                빛났더냐 물어도

 

                눈물이 어여뻐라

                답을 해주던

 

                풀은 깨갱

                가슴에 비벼 울던

                사람하

 

                - 「깽깽이풀꽃」에서

 

 

 깽깽이풀꽃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야생화다. 얼핏 이름만으로는 흔하디흔한 들풀 같지만 연보라 빛의 수줍고 고운 꽃이다. 지구상에 딱 두 종만 있는 야생화이고 그 중 하나가 우리나라 들판에 핀다고 한다. 은유란 이런 관점의 차이나 변화를 소리로도 적을 수 있다. ‘저 달빛 대신할 말/빛났더나 물어도//눈물이 어여뻐라/답을 해주던’ 달빛만큼 빛이 나더냐 물었더니 눈물을 흘리더라는 문장이다. 낭만적인 질문에 더 아름다운 답을 시인은 주고받는다. 깽깽이풀꽃도 그럴 것 같다. 건드리면 깽깽 울 듯 한 이름을 지녀 달처럼 빛나도 눈물일 것 같다. 역시 꽃을 다루는 곽 시인의 호흡이 보드랍다. 섬세하다. 그래서 더 빛이 난다. 그 꽃을 의성어로 “깨갱” 친근한 강아지 울음으로 표현을 했다. ‘가슴에 비벼 울던’이라고 정인情人의 이름으로 대신했다. 시를 쓴다는 일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한글이라는 자유로운 언어를 연장으로, 도구로 써서 집을 짓는 일. 다양하다는 말 역시도 한글의 장점을 잘 이해하고 쓴다는 말을 저변에 깐 단어다.

 

 이제 다시 우리는 시인의 걸음을 좇아 고향으로 간다. 곽 시인의 고향은 남쪽바다, 남해다. 시의 태반에서 그 바다가 출렁인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이 추억으로 굳어진 모정과 닮았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이 추억으로 굳어진 모정과 닮았다. 익숙한 갯내음을 찾아가는 여행에 우리도 동승을 하는 일이다.

 

                봄이면 피는 진댈래로

                산자락 자락마다

                화색이 돌아

 

                (중략)

 

                어머니는 꽃전을 부쳐

                입안까지 봄을 피워 주셨지

 

                보기도 아까운 꽃은

                먹기도 아까운 꽃은

                소녀로 자라는 향기로

                아이들 얼굴에서 새로 피어

                꽃전처럼 발긋이

 

                봄마다 산등성이로

                어머니 부쳐주시던

                꽃색이 돈다지

               

                - 「진달래 꽃전」에서

 

 ‘어머니’라 말을 하면 벌써 입에서 꽃내가 돈다. ‘어머니는 꽃전을 부쳐/입안까지 봄을 피워주셨지’ 아이들이 따온 진달래는 머리핀이기도 했지만 어머니에게선 먹거리가 된다. 시인의 어머니 세대가 기억하는 향수의 음식이다. 어머니의 꽃전은 입안으로 봄을 피우는 온전한 봄의 먹거리였다. ‘봄마다 산등성이로/어머니 부쳐주시던/꽃색이 돈다지’ 산을 채우는 꽃의 색이 어머니의 화전을 통과하면 꽃색으로 변한다는 표현이 감탄스럽다. ‘보기도 아까운 꽃은/먹기도 아까운 꽃은’ 그 시절에는 어머니에게 딸이 그랬고 딸의 눈에 꽃이 그랬겠다. 이렇게 모든 사물은 생명을 지닌다. 어제의 역할이 오늘은 바뀌어 있다. 그렇기에 추억이라는 이름표로 다시 시인 앞에 꽃전이 피는데 시인이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 절절한 한숨소리

                거기서 멈춰

                고운 모시 같던 손매는

                세월에 부대껴

                마디마디 아픈 주름인데

 

                노을이 몰고 간 시간에

                달빛 묻은 장독대 사연이

                굽어진 손길에 감기면 초가지붕에 기어오른 박꽃

                박꽃 같던 울 엄마 손이 닿은

                하얀 곰팡이 피어야

 

                역시

                그 맛이지

 

                - 「장독대의 엄마 맛」에서

 

 역시 그 맛이지! 한마디로 결론이 절창이다. 엄마의 맛이 그렇다. ‘어머니 절절한 한숨소리/거기서 멈춰’ 장독대를 텃밭처럼 가꾸던 어머니에게 그곳은 피난처였을 것이다. 절절한 고통이나 근심이 있어도 잠시 멈추는 곳. 어머니를 기억하면 반드시 그 장독대를 떠올릴 추억의 박제, 어머니와 장독대는 같은 의미로 곽 시인의 기억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다. 노을, 달빛, 박꽃, 울엄마, 하얀 곰팡이까지 장독대에 묻어있는 추억의 색과 시선과 느낌이 다 묶여져있다. 시각과 청각, 후각이 추억이라는 집합체에 들어있다. 그래서 마디마디 아픈 주름이던 엄마의 손을 장독대를 이룬 집합체 속에 묻어 조금 덜 아플 수도 있겠다. 시는 때론 시를 쓰는 동안 시인에게 먼저 위로가 되는 정화작업이다. 시인에게서 걸러진 감정이 묘사나 진술로 되살아나는데 시인이 먼저 흠뻑 느낀 후 독자에게 정화된 감정으로 흘려보내는 일이다. 물론 시의 역할이 그것만은 아니라 시의 조정력을 오롯이 독자에게 맡기는 장르도 있긴 하다.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 곽 시인의 어머니는 고향이라는 모성의 합성어가 된 연유로 시인의 추억소환을 통해 눈물도, 그리움이 주는 회환도 큰 숨 삼킨 후의 정화가 일어난 시어들로 부활이 되었다. 아프지만 평안한 슬픔이 흐른다.

                               

                물살의 유속은 잽싼 길목에

                대발

                물길 위에 기둥으로 선다

                은빛 멸치들

                물 위로 뛰어오르는 춤이 시작 된다

 

                (중략)

 

 

                물속에서 내몰린 은빛 무희들

                죽방림 궁지로 가두어

                마침내 한자리

                눈부신 춤을 위한 무대에

                어부의 신바람이 마중 나온다

                바닷길 끝에서 일어난 일이다

 

                - 「죽방림에는 멸치 떼」에서

 

 남해는 어촌이다. 곽 시인은 그 어촌에서 자라났다. 또한 남해의 주어종인 멸치는 ‘죽방림’이라는 특수한 어망으로 잡는다. 바다의 물살이 지나는 지점에 드나드는 물길을 이용해 대나무를 발처럼 엮은 어구인 죽방을 숲처럼 설치하여 물살 안으로 드는 멸치를가두는 대대로 이어져온 전통 어업법이다. 죽방림을 보면서 자라온 시인에게 그 곳은 어쩌면 멸치의 무대로 보였을 것이다. 갇혀서 펄펄뛰는 멸치의 춤을 시로 썼다. 익숙한 이야기는 한 장의 그림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그 그림을 시의 도구인 언어로 옮겨왔다. 기억의 재생은 회화적인 시각에서 움직이는 멸치와 닮은 언어로 풀어내 우리에게 보여준다. 살아있는 언어로 부활했다. ‘대발/물길 위에 기둥으로 선다/은빛 멸치들/물 위로 뛰어오르는 춤이 시작 된다’ 은빛 멸치들이 춤추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바닷길 끝에서 일어난 일이다’로 마감을 했다. 죽방림으로 내몰린 멸치가 뛰어오르는 모습, 시인의 눈을 통해 우리는 남해 그 바다로 간다. 멸치가 뛰는 춤을 본다. 목도한 이 모든 일이 그녀, 곽인숙 시인에게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시인의 미감(美感)이다.

 

                엄마는 신기한 제빵사였다

 

                나 어릴 적

                막걸리와 밀가루가 전부였던

                그것으로

                가마솥 바닥에 깔아

                장작불을 지피면

                신기하게 떡이 나왔다

 

                (중략)

 

                양과점 빵을 볼 때마다

                아득해지는 손에는

                엄마의 개떡

                이야기로만 쪄내는 내게

                신기한 제빵사가 새록이 사무친다

               

                - 「개떡 엄마」에서

 

 이제 엄마를 그리는 최상의 기억이 소환되어 나왔다. ‘개떡 엄마’, 가장 서민스러운 먹거리였던 개떡, 시인의 표현대로 ‘막걸리와 밀가루가 전부였던/그것으로’ 엄마는 신기한 떡을 쪄낸다. 요즘의 말로 ‘엄마스러운’ 음식이 되었다. 양과점 빵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마의 떡, ;이야기로만 쪄내는 내게/신기한 제빵사가 새록이 사무친다‘ 요즘의 엄마도 분명한 모정이 있는 존재이지만 개떡 엄마는 이제 먼 이야기이다, 살기 힘들던 시절의 가난한 음식이었다, 풍요한 시대에서 소환시킨 시어로 남은 개떡……

 

 

 곽 시인에게 유년은 어떤 기억일까. 이야기를 기억하는 통로 역시 먹거리다. 표준어도 있겠지만 고구마를 비스듬히 썰어서 말린 지역말로 ‘빼때기’인 먹거리가 아마도 영원히 그 언어로 남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공감이 되는 시간을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할머니도 엄마도

                어린 나도

                마르기도 전에 냉큼

                집어먹던 삐딱한 기억까지 골고루

                작은 호주머니에 넣고선

                왼종일 오물거리던

                나의 작고 삐딱하던 입매도

 

                지나간 것은 왜 이리 생생해서

                코 끝에 손끝에서

                부시럭대는 건지

 

                (중략)

 

                지금은 햇볕이 좋으면

                그리운 마음을 먹으려 창가에 앉아

                아련한 입맛을 추려

                추억을 삐딱하게 씹는다

                빼때기는 이렇게도 오래

                기억주머니 안에 남았다

 

                - 「고구마 빼때기 삐딱이」에서

 

 다시 시인의 눈으로 돌아가 세 번 째 이야기로 넘어가자. 시인의 시선은 자신에게서 시작되어 꽃으로 피었다가 어머니와 고향, 유년이 있는 추억으로 갔다가 또 다시 현실과 미래를 아우르는 제3의 공간으로 향한다. 3의 시공에는 어쩌면 지금껏 써온 모든 이야기의 멋진 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시의 진보는 그처럼 자신이 지나온 시간에서 갇힌 기억을 소환했다가 소환된 존재와 기억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회한을 입혔다가 정화된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결국은 내게서 시작된 일들이 내게로 와서 다시 마무리 되는 것이다.

 

                잘 쉬었다 간다는

                귀띔도 두지 않고

                소리 없이 지나가

 

                참

                야속도 하지

 

                붙들어 맬 수 없는

                시간이 나란히

                아침도

                어두운 밤에도

                그져 스쳐가

 

                - 「시간 평행이론」에서

 

 시간의 과학적 실증론이 있지만 시인의 펜끝에서는 그 과학조차 자유롭다. 그래서 곽 시인은 평행이론을 두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덩어리로 꿰려한다. ‘붙들어 맬 수 없는/시간이 나란히/ 아침도/어두운 밤에도/그저 스쳐가’ 추억을 소환했어도 역시 지나간 일이다. ‘붙들어 맬 수 없는’에 넣었다. 안다는 말은 실은 아주 잔인한 결론이다.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다. 그 사실을 정확히 인식했다는 표현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는 무기는 상상력과 인식의 높이다

 

                한려수도 지도에서 펼치지던

                고향 남해는 바다가 태반이란다

                해삼과 멍게와 성게는 소라 미역과

                하나의 강목이 아니라던 생물시간도

                물 빠진 바다 돌 밑으로 돌 위에 널리던

                남해에 나고 크던 집이 있단다.

 

                서로 보겠다 앞다투던 아이들도

                바닷가에서 야단법석이면

                그 요란함에 힘을 실어 멍게가 자라는지

                아이들 조막손에 잡힌 소라까지

                향도 요란스럽게 맛으로 배던 남해란다

 

                어리던 내가 소녀로 자라난 동네는

                해안선처럼 둥글던 뱃고동 소리로 나이를 드는지

                온 마을에 박자를 닻줄로 맺던 아버지들이

                마디마디 굵은 뼈로 맺힌 바다는

                남해가 거반인 그리움이란다

 

                지도에 없는 향수로 시를 쓰자고

                지도를 펼치기도 전에 덮쳐오는

                성게가시 투성이로 박힌 말은

                남해바다에서 저 혼자 밀릴 미역에서

                분이 피는

 

                - 「동심원 연가」 전문

 

 

ㅕ 위 시는 본 시집의 표제시다. 곽인숙 시인의 고향 남해, 그 동심원에서 키운 서정은 그를 큰 사람으로 만든 바탕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그가 일궈온 삶의 궤적은 도전과 열정 그 자체였다고들 한다. 그는 매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언제 시를 썼는지 200편이 넘는 시를 필자에게 내밀었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필자는 곽 시인이 시의 내용을 대강 말했던 고향과 어머니, 꽃의 이야기들은 식상한 소재여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앗다. 그러나 난해한 시가 판치는 현실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의 꾸밈없는 서정과 삶으로 말하는 이런 시가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곽인숙 시인은 자기의 오늘이 있기까지 믿어주고 지원해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나 지인드레 대한 감사함을 꼭 전하고 싶다며 명단을 주었다. 그의 진심이 담겨 있음을 알고 이 시집의 해설을 쓰는 필자도 행복한 마음으로 글을 맺을 수 있었다.

 

곽인숙 시인의 바다를 여러분께 보낸다. 곽 시인의 어머니를, 그녀의 진달래꽃전을 식탁에 펼쳐본다. 후식으로 개떡까지 보낸다. 삐딱하게 썰어 말린 고구마 빼때기도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러니 이제 안심하고 시인의 길을 따라 그의 많은 이야기에 심취해보라고 자신 있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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