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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막”, 도복희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입력 : 2020/07/02 [21:33] | 조회수 : 215

 

  © 시인뉴스 포엠





 

 

“그녀의 사막, 도복희 시인과의 인터뷰

 

 

악어가죽 소파에 앉아 있는 등에 악어 한 마리 아가리를 쩌 억 벌리고 있다 끝도 없이

중얼거리는 입, 바삭하게 말라가는 말들이 악어의 목구멍 속으로 연신 뛰어 들어가는 저녁, 그녀의 사막에는 돌개바람 뿌리가 쭉쭉 뻗어가고 있었다  

                                                       시인의 시「그녀의 사막」에서

 

           

 

 

 

 시인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시인과 나와의 인연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가 기자로 재직하고 있었던 ‘옥천향수신문’에 졸시를 투고한 뒤, 그녀에게서 온 답장 메일에 나는 감동받았던 듯하다. 바쁜 와중에도 투고 메일에 일일이 답해주는 그녀의 정감어린 품성에 나는 일단 호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의 등단지가 내가 동경해마지않아, 30대 초반 지하셋방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악기 삼아 밑줄 그어가며 탐독하던 『문학사상』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나에게 어떤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던 터였다.

 

 시인은 근래 이직을 하였고 낯선 곳으로 이사한 탓으로, 다소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 나도 십 수 년 간 정붙이고 살던 정든 집을 떠나, 4년 전 거실 창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집으로 이사 하지 않았던가! 단지 바다가 좋아 낯설고 외진 곳으로 이사한 뒤,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가. 꿈속에서 꿈만 꾸며 살던 청개구리 소녀가 기어이 현실을 직시하게 되기까지, 그렇게 어른이 되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야만 했던가. 우리는 다소 melancholy한 심경이 되어 서로를 응원하기도 하였다. 그와 내가 불안과 외로움에서 승리하기를, 무엇보다 시 잘 쓰는 그녀가 가파른 현실에서 기필코 승리하기를, 나는 기원하였다. 더불어 나 또한,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굳건한 반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였다.

 

 도복희 시인! 이 여리고 가날픈 듯 새침하고, 여성스러운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의 시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대표시 모음》

 

 

  숫돌

 

                                                                         

칼날이 지나가기 위해서는 물을 적당하게 축이고

일정한 리듬과 손목을 통해 가해지는 힘이 필요하다

 치의 오차 없이 몸과  섞이며 만들어낸

날선 눈빛으로 아침이 싹둑 잘려나간다

잘려나간 아침이 오래된 공복을 든든하게 채우리라

받아들일 때마다 얇아지는 살들의 쓰린 기억을 잊고

 몸은  똑같은 자세로 너를 향해 눕는다

닳고 닳는 것이  길이어서  이상 물러설  없다면

 전부를 내주며 빛나는 너만을 지켜보겠다

날선 날이 지나갈 때마다  몸으로 토해내는 속울음

노래로 들릴 때까지 , 부동의 자세 바꾸지 않겠다

검은 눈물이 앞강을 채우고 병동의 침묵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해도 네가 지나간  시간의 

기억으로 즐겁게 우주를 떠다닐 수 있겠다

바람으로 강물로 산천 굽이굽이

가볍게 휘돌아   있는  사각의  생애,

위해 고스란히 내어놓은 결과이다

살과 뼈로 남아 너와 쉼 없이 부대꼈기 때문이다

징그럽게 품안으로 파고들던 칼날도

같은 자세로 나를 향해 눕는다

 

 

 

(2010년 천강문학상 수상작품)

 

 

 

그녀의 사막

                     

                         

 여자의 몸에 더듬이가 자라기 시작했다 밤이 익어갈수록 손톱을 물어뜯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가 벗어놓고 간 와이셔츠와 빠진 몇 가닥 머리카락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낯선 냄새가 여자의 몸에 붉은 발진을 일으켰고 시간이 지나면서 냄새의 농도는 차츰 진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그 남자만 바라보고 왔기에 손동작 하나하나 읽히지 않는 것이 없는 여자에게 냄새의 징후는 불길했다 그것은 편서풍이 불 때 느껴지는 묘한 기분으로 가만있어도 멀미를 일으켰다 여자의 밤이 길어지고 발진의 부작용으로 온 몸을 벅벅 긁어댈수록 길게 뻗어가는 더듬이는, 닫힌 현관문을 빠져나가 그가 품고 있는 흔적을 찾아다녔다 몸 한쪽에서 길어진 더듬이가 낯익은 냄새를 찾아 나선 동안 그녀의 발이 검은 집을 기웃거렸다 키우던 난 화분들이 배배 말라가며 뱉어내는 신음이 베란다 가득 쌓여가는 집, 생장점을 저당 잡힌 여자가 더듬이로 버티는 집에서 밤마다 목쉰 소리가 웅얼웅얼 창틀을 새나갔다 악어가죽 소파에 앉아 있는 등에 악어 한 마리 아가리를 쩌 억 벌리고 있다 끝도 없이 중얼거리는 입, 바삭하게 말라가는 말들이 악어의 목구멍 속으로 연신 뛰어 들어가는 저녁, 그녀의 사막에는 돌개바람 뿌리가 쭉쭉 뻗어가고 있었다

 

 

   (2011년 문학사상 등단작, 2011년 문학나무 젊은시 선정 작품)

 

 

 

비에 대한 감정

 

 

오늘 내리는 비를 서어나무의 눈물이라고 해두자

 

어느 날 당신이라고 부르게 된 사람은 바람의 종족이었다 알고 보니

 

말채나무, 이팝나무, 느릅나무 모든 나무란 나무를 흔들고

 

떠돌아다니는 사주의 사람

 

저녁 빛 그림자를 뒤쫓다

닳고 닳은 무릎 관절을 곧추 세운다

 

세월 다 보내고 돌아온 그의 저녁밥상이 되어주던

그녀를 온 동네가 쑥덕거리던 말던

내 할머니는 정갈한 밥상을 눈썹까지 치켜들고

다소곳이 치마폭을 여미고 앉았다

 

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그 자세는 흔들림이 없었다

 

할머니가 치마폭 뒤집어쓰고 몸 던지려했던 강물로

세상의 모든 비가 쏟아지고 있다

 

나는, 그녀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가지고 태어난 손녀다

 

 

 

 

• 반갑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시인은 하늘과 땅을 매개해주는 사람, 하늘의 말을, 의 말을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님께 시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시인님을 찾아왔나요?

 

 

•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했죠. 당시 대학생이면 대부분 가지고 다니던 토플 책 대신 시집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우주의 언어 같았습니다. 이해되지 않았지만 매일 그 언어하고 놀았습니다. 대학노트에 시인지 일기인지 무언가를 끄적이며 스무 살 시절을 보냈습니다. 매우 간절했지만 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막연했습니다. 막연한 동경이었고 그리움 같은 거였죠. 시는 숨겨둔 비밀처럼 가슴에 파고들어 방황하게 했습니다. 자아에 눈떠가던 시간 시를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헤매면서도 시의 고리는 놓을 수 없었습니다.

 

 

 시인님의 시,「그녀의 사막」을 주의 깊게 여러 번 읽었습니다. 저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사막 한가운데에 홀로 서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나운 모래바람이 제 눈을 덮쳐 인간과 사물을,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비워내지 못한 제 그릇된 욕망이  있는 그대로 보기를 해치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이 시의 정황을 떠나서, 시인님의 사막은 어떤 형상인지 궁금합니다.

 

 

• 인간관계에서 오는 기대심리를 저는 욕망이라고 봅니다. 분명 사랑으로 시작한 만남이었는데 어느 순간 기대와 상대방에 대한 집착으로 불행의 원인이 되죠. 모든 인간관계에서 기대를 버리지 않는 순간 둘 사이의 관계는 점점 사막화 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충족되지 못한 기대감은 실망과 함께 타인에게 요구가 생기기 시작하거든요. 내 자신의 기준에 맞춰 족쇄를 채우려 한다면 나도 상대방도 자유로움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기대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각자 감옥에 갇히게 되는 거죠. 조직이나 관념이라는 틀에 맞춰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의 삶은 그런 의미에서 사막 가운데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퇴근길 터벅터벅 걸어가는 직장인들의 뒷모습에서 모래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혹등이 보이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사회와 조직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뜨거운 사막을 건너는 낙타가 되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우린 늘 오아시스 같은 자유로움을 갈망하게 되죠.

 

 

 시인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나 대상(시를 제외하고!)이 있다면 무엇인지, 감히 여쭈어 보아도 괜찮을까요?

 

 

• 어떤 기대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요. 그것이 사람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취미생활 일수도 있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아무런 목적 없이 떠난 여행길이나 미술관이나 영화관에서 만난 감동적인 작품 앞에서 행복해집니다. 18살 아들과 함께 먹는 저녁 밥상 앞에서도 감사하구요, 부여에 홀로 계신 친정엄마와 궁남지 연꽃길을 천천히 산책할 때 불어오던 바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함께 했던 친구와의 평범한 주말이 제겐 오아시스입니다. 사막과 같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물길이죠. 기대가 없어도 편안한 순간이고, 눈물겹게 감사한 시간입니다.

 

 

 

• 진부하지만, 공식 질문이예요. 시인님께 시란 무엇일까요?

 

 

• 요즘 저에게 시는 위안입니다. 짜여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수시로 밀려드는 불안 증세에서 도망할 수 있는 피난처입니다. 견고해지고 단단해지는 정서에 파열을 일으키며 숨구멍을 내주기도 하죠. 지금 시를 읽는 이유입니다.

한때는 시가 다다르고 싶은 열망으로 다가왔습니다. 한편의 좋은 시를 쓰고 싶었고 그만큼 매달렸습니다. 시를 쓰기 위해 살았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모든 중심을 시에 두고 산적이 있었죠.

지방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출퇴근을 하고 취재와 정해진 시간 안에 기사 마감을 해야 하는 상황은 시인으로 살아내는 것이 요원하기만 합니다. 시인으로 살아가고 싶을 때마다 시를 읽습니다. 시를 쓰지 못하면서 시인들이 써놓은 좋은 시로 위로를 받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기입니다. 다만 언젠가 한편의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붙잡고 있으려구요.

 

 

 

낭만적 우울에 대한 처방전

 

 

동방마트에서 사온 햇소금 한 수저와

당신을 밀어내고 남은 공허 한 줌을 섞어

세상에서 제일 심심한 오븐에 구워내면

씹지 않아도 넘어가는 쿠키 다섯 개쯤 된다

그것을 적당히 갈라 때마다 끼니로 대체하면

그런대로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간간 바람과 햇살을 공복에 복용하는 것으로

경미한 우울증을 넘기기도 한다

 

소스리바람으로 제조한 것보다는

골 바닥에서 산마루로 불어 올라간 것을

이용하는 편이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

햇살의 양은 조절이 필수적이다

절대적으로 과부하 상태를 막아야 한다

포플러 잎새에서 정제된 빛이 최상의 조건

주로 이른 아침 갓 따낸 태양을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부작용으로 심한 알러지 증상을 보일 수 있으니

 

먹장구름이나 안개를 주의할 것

비상시를 위해 비타민제와 수면안대를 준비할 것

호흡곤란이 올 경우를 대비해 소나무에서 추출한

산소통을 항상 가까이 비치해 둘 것

 

쿠키의 장기 섭취는 혈압의 수치를 떨어뜨려

삶에 대한 의욕을 제거할 수 있으니 조심할 것

 

이상은 실연을 시련으로 받아들인

낭만적 우울에 대한 민간요법으로

체질에 따라 속성으로 치유되기도 하나

간혹 평생을 복용하고도 개선되지 않는 특이 체질이 있다

 

 (2011년『문학사상』신인문학상 당선작품)

 

 

• 제가 앓고 있는 증상이 시인님의 등단작인「낭만적 우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쩜「낭만적 우울」은 사치인, 그야말로 우울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하루 하루 인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체질에 따라 속성으로 치유되기도 하나 / 간혹 평생을 복용하고도 개선되지 않는 특이 체질이 있다” 저야말로 그런 특이 체질”인 것도 같습니다. 낭만적 우울이든 전혀 낭만적이지 못한 우울(憂鬱)이든, 우리 모두는 우울한 사막을 횡단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2011년도에 쓰신「낭만적 우울에 대한 처방전」은 현재까지 유효한 것인지요? 2020년도에 「낭만적 우울에 대한 처방전」을 다시 쓰신다면, 시인님의 처방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 옥천에서 지낸 3년 동안 대청호 물빛을 참 좋아했습니다. 70%가 수변 구역인 옥천은 안개가 많았고 산과 대청호가 만나는 곳곳마다 비경이었습니다. 취재를 하고 오다가 차창으로 들어오는 툭 트인 물길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대전에서 이사한 직후 옥천은 분명 낯선 지역이었지만 편안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위안은 우울을 날리기에 충분했습니다. 한달전 이직하면서 옮겨온 또 다른 도시는 아직 물길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우울한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숨겨진 아름다운 풍광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곳에서도 우울을 날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련사

 

 

 

무화과 숲을 통과하여 왔어요

첫날은 검은 우산 속으로 장대비가 들이쳤죠

나는 까마귀 조련사로 이직을 신청했구요

신종직업으로 분류된 상태에서

칠일 만에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죠

십칠층 계단을 오르면서

깃털 고르는 방법에 대해 정리했어요

운전면허 이론시험처럼 정답만 달달 외우기 시작했죠

위로 오를수록 바람이 무성해지더군요

정오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어요

고압전선에 앉아 있던 까마귀들

이주한 십칠 층 허공이 내 일터입니다

도착한 후, 창문을 떼내어 바람을 교체하는 일이 첫 번째 과제죠

검은 날개의 상태와

눈빛의 밝기를 체크하여

알맞은 먹이를 곳곳에 놓아두어야합니다

둥지 곳곳을 살펴

깃털이 상하지 않도록 모서리를 다듬는 과정도

빠뜨려선 안되요

나는 훈련 받은 까마귀 조련사입니다

새롭게 시작한 일이어서

계단을 줄이는 것이 뜻대로 안되지만

새로 돋아나기 시작한 날개가 적응해 나갈 거예요

난간을 붙드는 일이

무료를 견디는 오전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걸 알아요

 

(2016년 전국계간지우수문학상 수상작품)

 

 

• 우리들은 모두 “훈련 받은 까마귀 조련사” 들입니다. 삶의 굴곡진 “계단을 줄이는 것이 뜻대로 안되지만/ 새로 돋아나기 시작한 날개가 적응해 나갈” 것을 압니다. 사막에서도 날개는 돋아나고, 우리들은 살아남기 위해 선인장처럼 뾰족하고 앙칼진 가시를 서 너 개쯤 비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님의 시조련사」에서, 저는 희망의 작은 불씨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니, 발견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날개”가 있으니까요. 이 시를 체념이 아닌 어떤 희망의 징조로 읽어도 좋을지요?

 

 

• 두 달 정도 지적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시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덧입혀 쓴 시입니다.  (나는 이 시를 내 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를 범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찌하랴, 시인의 시가 내게로 왔을 때, 시인의 시는 이미 시인의 시가 아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확장하고 싶은 시세계가 궁금합니다.

 

 

• 여유롭고 단순하게 살고 싶습니다. 생활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나 그저 두리번거리며 소일하듯 살고 싶습니다. 커피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행기를 쓰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산골 어딘가에 책방을 내고 시와 소설을 실컷 읽는 것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부여에 혼자 있는 엄마랑 살면서 맛있는 거 해먹고 나서 소소한 시를 쓰는 것도 편안할 것 같구요. 좀 더 맑은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렇게 바라본 세상을 시로 옮겨내고 싶습니다. 그리운 이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시간, 덕지덕지 들러붙는 외로움을 훌훌 털어내 버리고 그리움의 대상들 곁에서 그들의 손짓과 웃음을 받아 적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시인님의 시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 면 말씀하여 주시죠?

 

 

• 시로 소통하는 모든 이들이 제겐 소중한 친구입니다. 시가 우주의 언어 같아서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도통 읽어낼 수 없을 때에도 저는 시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래 놓지 않으니 우주의 언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를 읽어내기 위해 기다린 모든 시간들이 나를 깨어있게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긴 침묵이 필요합니다. 시의 목소리를 들기 위한 그 긴 침묵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사소한 날의 억양

 

 

너를 볼 수 있어서 억양이 생겼다

사소한 하루에 무지개가 떴다

비 온 뒤에 해 뜬 어느 날

옥상에 올라간 이유는 일곱 가지다

알 길 없는 길에서 만난 무지개가 그날의 억양이다

 

어제는 주름질 때까지 머무르게 될 것이다

 

무지개를 전송받고

 

네가 거짓말처럼 왔다

 

고독해 보였으나 여전히 눈부셨다

나는 이미 눈멀었으므로

바깥의 어떤 풍경도 들어오지 않았다

너의 윤곽을 잡고 버틴 하루가

잠깐의 무지개 같았다

 

하루가 기울고 저녁 빛 내려앉을 때

수면을 차고 오르는 물고기처럼

널 향한 내 목소리에도 힘이 생겼다

 

이것이 오늘의 억양이 되었다

 

 

 인터뷰 내내 나의 사막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너무 많아서 다 적을 수도 없는 형편이지만, 나의 가장 큰 사막은 사람에 대한 절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쩜 그건 나 자신에 대한 절망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하였던가! 너를 볼 수 있어서 억양이 생겼다 / 사소한 하루에 무지개가 떴다” 는 시인의 시 구절처럼, 사람에 대한 절망은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윤곽을 잡고 버틴 하루가 / 잠깐의 무지개 같”을 , 그녀, 너로 지칭되는 대상이나 존재가 있어, 우리들은 수면을 차고 오르는 물고기처럼” 현실을 박차고 날아오를 수 있는 억양”을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도 오랜 칩거를 끝내고, 힘이 생길”, 억양”을 지니기 위해, 이제 세상으로 나가고자 한다. 시인의 시를 읽으며, 사막을 횡단할 수 있는 버팀목은 사람” 뿐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또다시 사람 속에서 깨어지고 비틀거리고 상처받고 사랑하고 배신당하며, 그렇게 오늘의 사막을 건널 용기가 생겼다. 시인 덕분이다. 나는 다시 햇빛과 바람으로

개화한 얼굴”이 될 것이다.

 

 내게 이런 용기를 갖게 해준 시인에게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하며, 시인의 건강과 행복과 건필을 기원한다.

 

 

 

소금꽃

 

 

염전은 뼈를 녹인다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온 날

텅 빈 소금밭 귀퉁이 돌부처 그림자 되었다

 

 

너를 가라앉혀야 피어날 것이다

삼십 년 한결같은 써래질

 

바람의 손으로 바다를 걷어내고

태양의 제단 앞에 엎드려 건넌 날들

 

울음이 염전의 거름 되어

소금꽃을 피운다

하얗게 만개한다

 

나는 햇빛과 바람으로

개화한 얼굴이다

 

 

《도복희 시인》

1990년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 한남대학교 사회문화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19년 카이스트 지식재산전략 최고위(AIP) 과정  

2010년 천강문학상 수상

2011년 문학사상 등단

2012년 문학나무 젊은시 선정

2016년 전국계간지 우수문학상 수상

2018년 시집 『그녀의 사막』 출간

2020년 시집 『바퀴는 달의 외곽으로 굴렀다』 출간

) 옥천향수신문사 취재기자

) 동양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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