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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신작 시집 꽃의 전언 / 이인선(시인, 문학평론가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7/11 [10:52] | 조회수 : 606

 

  © 시인뉴스 포엠



 

 

 

꽃의 전언

 

 

알스트로메리아, 꽃말은 새로운 만남이야

 

농장주들은 봄을 기다리고 꽃집 주인은 졸업 시즌을 기다리고 당신은 나의 숨은 향기를 꺾고 싶어 하지 경매인들은 사랑의 상향가 낙찰을 기다리지만, 간혹 몇 차례씩 유찰되는 봄은 꽃 가위로 잘근잘근 향기를 거세당했어

 

당신은 거짓 유혹을 엉거주춤 못 이기는 척, 눈감고 넘어가다 낭패를 당한 시즌이 있다고 하셨나요?

 

어린 날 이웃집 할머니 꽃상여가 나갈 때, 습자지로 만든 하얀 꽃송이가 목에 가시처럼 걸려 눈물이 났다는 당신 몸이 달아서 꽃들이 향기를 이식하고 싶어 하네요. 사랑이 별건가요? 느낌의 경계에서, 문밖과 문 안의 감정을 희롱당하고 싶은 설렘이지요

 

꽃향기 흩날리며 내 꽃의 중심을 부풀리고 있어요

내 몸의 언어를 터치해 주세요, 당신께 낯선 떨림을 충전해 드릴게요

 

 

 

 

 

 

 

 

 

 

 

 

 

 

 

 

 

 

 

 

 

김현숙 신작 시집 『꽃의 전언』

 

*해설

 

 

 

짧고 선명한 감성적 문장과 독특한 개성,

향토적 아이덴티티가 주는 긍정 에너지

 

이인선(시인, 문학평론가)

 

 

 

김현숙의 시에는 짧고 선명한 감성적 문장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독특한 개성과 시인의 향토적 아이덴티티가 주는 긍정 에너지의 힘이 녹아있다.

김현숙의 시에는 뛰어난 학자와 시인을 배출한 상주의 향토적 순수와 강직함이 문장의 행간에 녹아있다. 시적 배경이 된 고향 상주의 흙의 DNA에서 파생한 언어의 러너 줄기들의 소소한 집합체가 즐거움을 준다.

그의 시는 톡톡 튀는 개성과 고향의 자연과 어머니, 초록색이 희망과 생성 에너지를 분출한다.

 

 

1

 

김현숙의 시는 타고난 시적 감성과 끼를 지니고 있다. 연애 감각이 있어야 시의 이미지가 달콤 쌉싸름한 미각을 풍긴다. 김현숙의「꽃의 전언」은 감성의 요철을 부드럽게, 뜨겁게, 날렵하게 구부린 언어 감각이 이미지의 음각과 양각을 한다.

 

(*)서체

알스트로메리아, 꽃말은 새로운 만남이야

 

농장주들은 봄을 기다리고 꽃집 주인은 졸업 시즌을 기다리고 당신은 나의 숨은 향기를 꺾고 싶어 하지 경매인들은 사랑의 상향가 낙찰을 기다리지만, 간혹 몇 차례씩 유찰되는 봄은 꽃 가위로 잘근잘근 향기를 거세당했어

 

당신은 거짓 유혹을 엉거주춤 못 이기는 척, 눈감고 넘어가다 낭패를 당한 시즌이 있다고 하셨나요?

 

어린 날 이웃집 할머니 꽃상여가 나갈 때, 습자지로 만든 하얀 꽃송이가 목에 가시처럼 걸려 눈물이 났다는 당신 몸이 달아서 꽃들이 향기를 이식하고 싶어 하네요. 사랑이 별건가요? 느낌의 경계에서, 문밖과 문 안의 감정을 희롱당하고 싶은 설렘이지요

 

꽃향기 흩날리며 내 꽃의 중심을 부풀리고 있어요

내 몸의 언어를 터치해 주세요, 당신께 낯선 떨림을 충전해 드릴게요

― 「꽃의 전언」 전문

 

(*)

 

위의 시는 상상력의 비약이 감성 세포의 눈물과 열정을 증폭시킨다. ‘알스트로메리아- 어린 날 이웃집 할머니 꽃상여에 매달린 하얀 습자지 꽃- 내 꽃의 중심- 당신에게 낯선 떨림을 충전해 주고 싶은 욕망’으로 구조화된 변이되는 감수성은 시의 필요충분 요소인 ‘끼와 측은지심, 욕망’을 관통하고 있다.

삶에서 라깡의 욕망이론을 빼면 생의 생명 의지가 거세된다. 욕망은 생산의 근원이며, 예술의 모태다. 김현숙의 시는 젊은 감각과 노인의 감각, 도회스러움과 시골스러움을 동시에 간직한 통합적 경향을 나타낸다.

그 힘을 향토적 순수와 고향의 자연에서 얻은 솔직함과 건강함이 주는 열정이다.

 

아래 시도 욕망을 터치한 문장이 화폭에 그린 그림처럼 현란하다. 화가와 모델의 이상야릇한 감정이 누드화의 하얀 속살처럼 향기롭다.

 

(*)서체

설원의 햇살처럼

눈부신 속살의

부드러운 질감과

절제된 명암을 읽는다

 

여우 꼬리 같은 붓으로

그 여자의 옷을 벗겨내고

그 남자의 옷도 벗겨냈다

 

부드러운 손끝으로

여자의 우윳빛 살결을

남자의 구릿빛 근육을 입혔다

 

여자의 곡선 안으로

붉은 심장을 그렸고

남자의 근육 안으로

단단한 뼈마디를 넣었지

 

모델과 화가

관계의 거리를 가늠해 본다

 

뭉클한 욕정 欲情

도화지 가득

혈흔처럼 스며들고

― 「누드화」 전문

(*)

 

위의 시는 봄의 간지러운 느낌과 여름의 욕정이 넘실댄다. 모딜리아니와 모델 잔느처럼 화가와 모델은 벌거벗은 영혼이 서로 만나 영육의 대화를 나눈다.

불붙든지 냉정해지든지 남녀의 관계는 잠을 자 봐야 결정난다고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 그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각각의 은밀한 상황들은 찰나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2연의 ‘여우 꼬리 같은 붓으로/ 그 여자의 옷을 벗겨내고/ 그 남자의 옷도 벗겨냈다’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화가의 순간의 찰나적 스케치와 채색은 모델의 몸을 새로운 빛과 색으로 싱싱하게 재창조한다. 화가의 숨소리와 손의 떨림은 모델에게도 전달된다.

짧은 시어들은 과감하게 화가와 모델의 욕망을 발굴하고 있다. 김현숙의 열정과 욕망은 화가와 모델에게 투사되었다. 무의식의 의식화 작업이시다. 상상력의 객관화는 문장에 산소를 공급하여 생생하고 신선하게 한다. 시는 시인 자신이다. 프로이드의 방어기제인 투사를 재현한 작품성이 도드라진다.

김현숙의 시에는 솔직함과 자연주의, 건강함이 처녀림처럼 녹아있다.

 

 

2

 

김현숙의 시는 짧고 명쾌함을 지향한다. 시는 더하기가 아니다. 빼기와 삭제를 통하여 문장이 강화된다. 시적 긴장감이 증폭된다. 그 행간에 수많은 이야기를 숨겨 놓고 새로운 해석적 이미지를 생산한다.

 

(*)서체

누가 허공에

등 하나를 달았을까

 

소나무에 걸린 갈바람

 

학이 부리로

등불을 켜는구나

― 「달」 전문

(*)

 

위의 시는 서정주의 「동천」을 연상시키는 함축미가 도드라진 작품이다. 1연에 집중하여 보자. ‘허공에 매달린 등’은 진리와 달관의 경지를 체득한 최고의 경지다. 등은 숭배의 대상이며, 지혜의 극점이며 꼭짓점이다.

‘누구’로 지칭되는 대상은 신이거나 초월자를 상징한다.  

2연 ‘소나무에 걸린 갈바람’은 십장생인 소나무의 푸르고 청정한 생성 이미지와 ‘갈바람’의 사멸이지가 대조적으로 경합적으로 맞선 문장이다. 소나무와 갈바람은 이성과 감성이 대립된 문장이다. 생성하는 사철 이미지와 쇠락하는 가을 이미지의 대조법이다. 짧은 시구가 큰 의미화 영역으로 확장된다. 여러 방향으로 확장되어 해석되는 문장은 좋은 시의 필수조건을 충족시킨 문장표현 기법이다.

3연을 살펴보자 ‘학이 부리로 등불을 켜는’ 상황은 상서로움의 극치를 나타낸다. 학과 소나무는 십장생으로 장수와 고귀함, 선비의 기개와 절개를 표상한다.

위의 시「달」은 35행의 짧은 시로 우주의 삼라만상과 인간의 삶의 의지와 전환점을 상생 이미지로 표상화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게재하여 전시하면, 짧은 시간에 시민들에게 힐링과 감동을 줄 좋은 시다.

 

 

 

3

 

일탈은 시인이 시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유일한 출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의 역할을 ‘카타르시스’라고 정의하였다. 그 일탈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하여 시인은 시를 배설하고 독자들은 시를 함께 향유한다.

 

(*)서체

지난봄에 연둣빛 싹이 돋았을 때

얼른 이파리가 자라기를 바랐습니다

그 넓은 잎들이 바람에 일렁일 때

더위에 지친 내 이마의 땀방울을

슬쩍 훔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오고

잎들은 울긋불긋 단장하지요

낙엽이 후드득 떨어지면

내 심장에 사랑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깁니다

빨갛게 물들어서

더욱 간절한 목마름으로

하얀 겨울나무의

떨어지지 않은 잎새처럼

부질없는 미련을 떨고 있습니다

― 「낙엽」 전문

(*)

 

위의 시에서처럼 시인의 감정은 시도 때도 없이 절절한‘주홍글씨를 새깁니다’(10) 그러나 시인의 이성은‘부질없는 미련을 떨고 있습니다’(15) 라고 일탈을 꿈꾸는 자아를 자학하며 냉정한 해석적 시각을 요구한다.

사각의 모니터의 환상의 시 창작 공간에서 시인은 마음껏 시적 자유를 구상하며, 상상력의 비약을 하고, 자폭의 나르시시즘적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냉정한 현 실세계로 회귀하여 자조적으로 환멸을 느끼게 된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이성은 경계경보를 울린다. 상담심리치료의 직면 화 단계를 체험하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시적 화자의 자아는 자학적 마조히즘으로 사랑의 판타지를 억압하고 있다. 시를 쓸 때마다 시인은 이성과 열정 사이에서 과도한 줄다리기를 한다.

김현숙의 문장은 과감하게 직설적이다. 고향의 영강穎江 줄기처럼 전진하고 후퇴가 없다.

 

아래 시「차 한잔하실래요」라는 대표적인 연애 시다. 그러나 시가 품격을 유지하는 것은 김현숙만의 장치를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연애 시다. 자칫 감상주의로 흐르기 쉬운데, 아래 시는 부부 갈등, 가족 갈등, 인간사 갈등을 종교의 힘에 의지하여 해결하려 한다. 문학에서 종교와의 합일은 대부분 심심하거나 싱거운 결말을 만든다. 그러나 아래 시는 마지막에 도발하며 끼를 부린다.

 

(*)서체

비 내리는 명동거리를

쓸쓸히 걷다가

뭐니 뭐니 해도

 

명동성당에 가면

빈 가슴 채울 것 같아서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들으며 가는 길

굳게 닫힌 문을 살며시 열고

성호를 긋는다

가시관을 쓴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생각하며

작은 고통은 지워버린다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 있는

나의 천국을 그리며

또 힘을 얻고 뒤돌아 나온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나는 전화를 걸었다

차 한잔하실래요?

― 「차 한잔하실래요」 전문

(*)

 

시인은 시의 공간에서 어떤 연애질과 끼를 부려도 무죄다. 위의 시 「차 한잔하실래요」는 시적 화자의 심리적 2중 구조를 그리고 있다. 가정적이고 종교적인 현숙한 아내와 연애를 하고 싶고 일탈을 하고 싶은 끼를 발산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시인의 갈등 구조를 한 시에 동시에 그리고 있다. 야릇하고 모호한 시적 감상주의에 빠지고 싶어한다.

시인은 자신의 현실의 아내와 남편을 외롭게 하는 사람들이다. 시 외의 모든 상황을 영원한 관망자로 몰아 내버린다. 그 대가는 부부관계의 단절이다. 비현실적 판타지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시인은 자신의 현실을 비참하게 고립시킨다.

시인들이여, 그대 감정의 죄를 조금만 허용하기 바란다. 플라톤이 말한 시인 추방론을 상기하기 바란다. 허상의 시에 실상인 현실을 매몰시키면 죽음에 이르는 고독한 환상주의자가 된다. 고독은 시적 배경이지만, 슬픔과 거리 두기를 하고 객관화하여야 좋은 시를 생산한다. 라깡이 말한 자아의 타자화 이론이다. 시적 자아가 감상주의에 빠지면 저급한 감상주의 토로 시가 생산된다.

그러나 김현숙은 연애의 배리성과 종교성을 교묘하게 버무려서, 적나라한 연애 감정을 교묘하게 장치하였다. 숨겨진 끼와 진정성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밖으로 분출되고 싶어한다. 시의 내피와 외피의 2중 구조를 실현하여 작품성이 도드라진 시로 재현하였다. 김현숙의 시는 짧고, 솔직하고, 직선적이다.

 

 

4

 

가족과의 갈등과 왜곡, 상처는 시인을 배출하는 시적 배경이다. 유년기의 부모와 형제간의 갈등, 부부 갈등, 자녀와의 갈등은 시인의 정신을 고갈시켜 정서를 불안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스트레스가 배가될수록 시인은 날카롭고 예민해진다. 그 감정은 새로운 시적 이미지와 낯설고 먼 언어들을 결합하여 낯설게 하기를 실현한다. 뇌가 늘 깨어 있게 긴장하지 않으면 작품성 있는 시적 완결 미를 기대하기 어렵다.

 

(*)서체

 

입술 옆에 붙은 밥풀 하나를 보고

당신에게 몹시 화를 냈습니다

앞으로는 밥상머리에서

식사 중 간간이

입술을 훔치라 했지요

그 말이 지금에 와서

내 목구멍에 걸립니다

당신과 내가 견디는 세월이

밥풀떼기 같은 무감각이었음을

이제는 가슴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말을 접고 침묵하는 연습을 합니다

상처 주는 말은

거기까지만

― 「밥풀떼기」 전문

(*)

 

남편과의 거래는 공정하고, 정직하고, 강한 유대로 연결되어 있어야 부부관계가 화기애애한 강한 유대를 갖는다. 부부관계는 ‘주고받기’가 정확하지 않으면 한쪽이 소외감을 느낀다. 그 결과는 소외감과 결핍감을 느끼는 당사자가 손해를 입는 결과를 낳게 된다. 보증을 서든지, 비밀연애를 하든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결과를 만든다.

부부관계는 이기적인 관계다. 그 거래는 2030년 주기로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당한 배우자는 반드시 감정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앙갚음을 한다. 남자는 모르는 척 뒤에서 여자가 관리하여야 한다. 아내는 남편의 보살핌과 보호받는 평안한 느낌이 없으면 외간 남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신혼 때는 다름 때문에 매력을 느끼지만, 부부 권태기에는 그 다름이 싫어 이혼한다. 노년기 부부의 일상이 가감 없이 적나라하다. 김현숙의 시는 미사여구가 없다. 고향 상주처럼 직설적이고 문장이 짧다.

 

「밥풀떼기」는 어느 집에서나 노년기에 만나는 밥상 풍경이다. 김현숙의 시는 따뜻함이 있다.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감동을 주는 대중적인 요소가 있다. 현란한 기교를 이기는 진성성의 힘이 있다.

 

딸은 시집가서 아기를 낳아보면 엄마 마음을 안다고 한다. 아래 시는 늙은 어머니에게 보내는 늙은 딸의 연서다. 딸이 그 어머니의 생을 그대로 겪은 뒤에 철이 들었다는 반증이다.

 

(*)서체

건 우럭을 찜 쪄서 내놓으니

 

때깔만 봐도 눈이 행복하다

 

왼손잡이 젓가락질로

가운데 토막의 살점을 발라내니

쫄깃한 하얀 살결이 뭉텅 올라온다

 

입속엔 군침이 가득 돌고

매콤 짭조름한 양념 냄새가

입맛을 확 당긴다

 

늙은 어머니가 보내온 흰쌀밥을 지어 놓고

숟가락을 뜨지를 못한다

5남매는 모두

어머니의 식객일 뿐이다

 

어머니의 하루는 하루가 아니다

하루를 이어 덧댄 하루가 발효되어 시큼하게 익어간다

 

나의 안녕한 오늘은

어머니가 어제 안녕을 반납한 압축된 공백이다  

― 「식객」전문

(*)

 

늙은 어머니가 고향에서 혼자 쌀농사를 지어 보내주는 쌀은 쌀이 아니다. 무릎이 닳고, 연골이 닳고, 흰 머리털이 만든 노동의 산물이다. 오로지 자식에게 보내주려고 짓는 쌀농사다.

흰쌀밥은 사랑이다. 뭉클 감동이 밀려온다. 늙은 어머니가 살아있음은 축복이다. 요즘 캥거루 부모가 늘었다. 한 자녀를 두면서 손자녀 양육까지 도맡아서 한다. 자신의 노년기를 반납하고, 여행과 행복을 반납한 희생의 전후 세대다. 부모에게 최대의 효도는 ‘자녀의 얼굴 보여주기’다. 자녀의 웃는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어머니에겐 흰쌀밥이다.

위의 시에는 김현숙 시인의 고향을 향한 내면의 아이덴티티가 살아있다.

 

어머니의 손은 죄를 저질러도 밉지가 않고 용서된다. 그 이유는 어머니는 가족의 희생제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밀주를 담그는 행위는 위법 행위라서 불시에 행정관청에서 조사를 나왔다. 예외 없이 여러 집들이 밀주를 숨기고 온 마을이 난리가 났다.

 

(*)서체

밀주를 담그는 어머니의 손이 재빠르다

 

고두밥을 쪄야 하고

누룩도 빻아서 넣어야 하고

항아리에 물을 붓고

 

아랫목에 모셔 놓아야 한다

 

세무서에서 밀주 조사를 나오기 전에

얼른 술을 익혀야 한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술의 발효 소리

어머니의 애끓는 마음이 익어 간다

 

나의 시가 잠복기를 거쳐 발화하고 있다

발각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온몸으로 얼굴을 붉히며

숨겨가며

― 「밀주」 전문

(*)

 

위의 시는 어머니의 밀주가 익어가는 과정과 숨기는 행위를, 시인이 시를 쓰고 발효시키는 과정으로 치환하고 있다.

‘고두밥을 쪄야 하고/ 누룩도 빻아서 넣어야 하고/ 항아리에 물을 붓고/ 아랫목에 모셔 놓아야’(11-4) 진하고 맛있는 밀주가 만들어진다. 밀주를 만드는 과정의 정성처럼 시를 쓰는 과정도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밀주는 발효되는 동안 발각되고 싶어서 뽀록, 뽀록 소리를 내고 냄새를 피운다. 시적 긴장감과 일맥상통하는 과정이다. 시도 일기장에서 비밀스럽게 쓸 부끄러운 연애 이야기, 가족사를 발각당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술이 익는 과정처럼 얼굴을 붉히며 애를 끓여야 한 편의 좋은 시가 탄생한다.

 김현숙의 시「밀주」는 부드러운 발효 과정을 거친 작품이다. 설익은 맛이 없다. 어머니의 깊은 손맛이 우러난 밀주의 맛이 난다. 힐링과 공감을 유도하는 작품이다.

 

 

5

 

예전 신춘문예 시는 사회화 시가 주종을 이루었다. 사회고발과 증언으로 약자의 억울함과 부당함을 고발하였다. 그러나 재택근무가 늘고, 컴퓨터로 회사업무를 총괄하는 21세기 정보화시대가 도래하면서 개인의 감정이 전체를 대별하게 되었다.

김현숙의 아래 시는 사회화와 역사성, 개별성을 강조한다. 개인의 다양하고 다각적인 여러 관심사가 동물사랑, 자연사랑, 독특한 자기계발이 독특한 시의 향미를 풍긴다.  

 

(*)서체

바닷바람에 소금간이 밴 햇살이

해변의 소나무 숲을 어루만진다

나는 한낮의 구름을 벗겨낸 바람의 잔해를 몰고

문무대왕의 왕비, 뼈대가 묻힌 대왕암으로 간다

 

 

파도에 부딪히는 고래 대가리와 해초에 걸린 꼬리

포경을 하고 난 그날처럼 바다의 살갗이 파닥거린다

 

죽은 자들이 죽지 않고

바다를 지키는 밤의 쌍곡선

 

범선들이 항해할 때 만난 고래의 등은

지구의 원형을 복원하고 있는가?

 

살기 위해서 힘차게 뿜어대는, 물줄기

고래의 황홀한 고집이 파도를 탄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의 유적이 남아있다

장생포 앞바다를 누비던 고래의 무한 질주

 

수천 개의 빛의 혀들이

고래의 DNA를 희롱하며 반짝인다

벌거벗은 고래 지느러미의 뿌리가 흔들린다

― 「포경 금지령」전문

(*)

 

「포경 금지령」은 고래사냥 금지령을 발표한 현 시국에 빠르게 대응한 작품이다. 오래전 바닷가 어시장에서 공공연히 고래고기를 부위별로 팔았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금은 상황이 어떤지 궁금하다.

인간에게 학대받는 동물과 지구에서 사라지는 나무와 꽃에 대한 관심과 연민은 시인이 간과해서는 안 될 시의 주제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은 잔인한 살인자의 기질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 작고 여린 ‘봄맞이꽃’이 피면 봄이 지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시인은 다른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치는 것을 클로즈업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강자만 살아남는 세상은 재미가 없다. 공포와 위기의식으로 세상은 단절되고, 사람들은 불행해진다.

나무와 꽃, 동물, 사람들이 부당하게 학대당하는 세상은 슬픈 세상이다. 시는 사람들 가슴에 작은 등불을 켜고, 그 슬픔을 녹여주는 역할을 한다. 시인은 부당하게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가난한 자가 억압받을 때 시로써 증언하고 고발하는 시대의 파수병이다.

김현숙은 세상에 질문한다. 돌고래, 검은 혹등고래, 범고래가 바다를 자유롭게 질주하는 꿈을 실현하는 데 당신들은 어떤 기여를 할 것이냐? 그 일을 알고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요즘 개인의 가치가 우주만큼 커졌다. 요즘 점차 사회고발 시에서 자연고발 시로 시의 경향이 바뀌고 있다.

 

 

아래 시는 튀고 개성 있는 김현숙 시인의 성격이 드러나는 시다. 4차원적인 시인의 면모가 묘한 매력을 준다. 각자 따로 살아내는 인생이다. 쌍둥이의 삶도 각각 다른 데, 개인의 자유가 존중받고 지나친 관심과 간섭은 배제되어야 마땅하다.

시기 질투는 무지한 자의 콤플렉스의 발현이다. 모든 인간은 각각 같은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그 능력과 개성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사실은 각각 다른 우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다. 여러 갈래에서 잠깐씩 만남이 이루어지지만, 삶도 죽음도 따로 간다. 별일도 아닌 구차스러운 이유로 시샘과 질투로 생산성을 낮추는 일은 손해 보는 행위다. 그 시간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을 하면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한다. 사람은 모여 살지만, 각각 다른 개별적인 길을 가고 있다. 남에게 향한 시선을 자신에게로 향하여, 발전을 추구하면 후회가 적다.

 

(*)서체

어떤 이에겐 고물로 보이는 것이

나에겐 유물로 보여

골동품이라고 아낀다

 

어떤 이에겐 별 볼 일 없어 보일 테지만

나에겐 작품으로 보인다

신줏단지 모시듯이 깍듯하게

닦고 광을 낸다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어떤 사람은 가격을 매길 것이고

어떤 이는 작품의 품격을 매길 것이다

 

골동품을 모으는 일은

고상한 취미이면서

고부가가치를 형성하니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있으랴

 

고물은 고물상으로 가지만

유물은 고물상에서도

사람의 품으로 온다

― 「골동품에 관한 단상」 전문

(*)

 

고물과 유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흔하고 많은 것은 고물 취급을 받고, 유일하게 한 개밖에 없는 것은 유물로 분류된다. 고물을 귀히 여기다 보면 언젠가 유물로 격상될 날이 올 것 같다.

시도 그렇다. 시인 개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유물이다. 광을 내고 닦아서 고이 간직할 일이다. 시집은 가장 오래 자손에게 남길 수 있는 정신 유산이다. 특히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천지개벽을 하여 세상에서 컴퓨터가 없어지지 않는 한, 수천 년, 수억 년 동안 시는 남아있어 역사학과 언어학, 시학의 자료로써 언어연구 유물이 될 것이다.

 

예언컨대 시의 시대가 도래하면, 각 나라의 고향에 대한 추억은 각 도시의 이름만큼 많은 시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옛 고향 마을에도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었다. 누구나 추억을 펼치면 캔버스 한 페이지를 채색하고도 남을 추억이 있다.

 

 

(*)서체

어릴 적 동네 어귀에는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습니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들은 살구를 주우러 몰려듭니다

 

욕심을 부리는 날에는 살구나무 가지에 올라가서

마구 흔들어 살구를 후드득 떨어뜨립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나무는 맞기를 반복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살구나무의 아픈 상처를 만났습니다

해마다 아픔을 겪으면서도 살구가 열리게 하고

곯은 배를 채워주던 살구나무에는

어머니의 자궁만 한 상처가 아물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상처에다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어제의 꿈은 무엇이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살구나무는 대답 대신

긴긴 아픔을 꿀꺽 삼켜 버리고

흐린 눈빛으로 먼 하늘을 바라봅니다

― 「이상한 나무」 전문

(*)

 

고향과 고향에 대한 추억은 지나간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상처다. 김현숙 시인에게도 고향은 저 살구나무에 걸린 저녁노을처럼 아름다운 보랏빛 추억일 것이다.  

우리나라 가요에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라는 노래가 있다. 독일 가곡에는 슈베르트가 작곡한 ‘보리수’가 있다.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지에 사랑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가사를 살펴보자.

두 노래를 비교해 보면 공통점이 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키가 작은 유실수를 심었던 것 같다. 샘터에 유실수를 심으면 늘 물이 있으니 고사할 염려도 없고, 누군가 물을 길으러 왔다가 꽃과 열매를 즐기며 행복할 것이다.

또한, 우물가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밀회 장소였던 것 같다. 지금은 공원이 그 역할을 대신하지만, 딱히 예전 시골 마을에는 놀이터가 없었으니 우물가가 그래도 가장 찾기 쉽고 달밤에 밝은 장소였을 것이다.

 

동네 어귀나 마을 중심가에 있던 느티나무나 살구나무는 동네 놀이터였다. 특히 살구는 어른이나 아이나 좋아했던 맛있는 과일이다. 시인은 노년기에 다시 고향을 찾아가서 그 나무를 살펴보고 온갖 풍상을 겪은 나무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김현숙 시인이 늙은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노년기에 고향을 찾아가서 그 살구나무를 만난 것은 축복이다. 효도하면 부모가 오래 살고, 자녀는 과거를 추억하며 정서적 안정을 누린다.

 

 

시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예술이다. 시 창작 과정은 정신과 자가치료 과정이다. 전기료와 인터넷 연결비만 내고 직접 고백록을 쓰는 자가 상담심리치료 과정이다. 보통 첫 시집은 과거의 장사 지내기 과정이다. 과거에 대하여 할 이야기가 아직도 많다는 것은 추억과 상처를 아직 다 쏟아내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김현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짧고 선명한 감성적 문장과 독특한 개성, 향토적 아이덴티티가 주는 긍정 에너지가 독자들에게 모두 전달되기를 바란다.

 

문향 널리 퍼져, 문운이 활짝 열리기를 기원한다. 김현숙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읽고 독자들이 그 향토적 순수와 다정을 느끼고 정서 해소를 하여 코로나를 극복할 힘을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현숙 / 시인

 

* 약력

 

한국문인협회 이사

강서문인협회 전)재정국장

한국예총 서울지부 대의원

한국문화예술 저작권협회 회원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사무차장

 

* 저서

 

시집 – 내 마음의 꽃 등불 되어/꽃의 전언

 

* 수상경력

 

후백 황금찬 문학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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