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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비 사이에는 외9편 / 한영숙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7/31 [10:08] | 조회수 : 297

 

▲     ©시인뉴스 포엠

 

 

 

비와 사이에는

 

한영숙

 

 

그날도

속절없이 비가 내렸어

손바닥 안에 가볍게 들어오던 3우산 대신

빗방울은 퍼소나를 쓰고

유리창을 부드럽게 핥고 있었어

바닥은 신음들로 질척거렸어

비와

-------------

-----사이의 세상은

좁고도 넓었어.

뼘이나 되려나 아니 뼘쯤

서로 맞대고 깍지

엉덩이를 슬슬 들이밀면 조금 넓어지려나.

그럴 때면

숨이 목젖까지 차올랐어

기말고사 커닝하듯 몰입하던 순간들은

삼켜도 삼켜도 가득 꿀꺽거렸어

끈적이는 것들은 빗물에 씻겨나가고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한

어둑한 그런 날이면

으레 손등으로 오물거리는 입술을 훔치곤 했어

그런데,

어디 언저리쯤 뭉게뭉게 그가 오고 있을지

 

햇살 저리 난장인데.

 

 

 

 

 

 

 

 

 

접시깨기  

 

한영숙

 

 

스무날 독감으로

목구멍에 약을 털어 넣었지만

목뼈까지 등마루를 이루고 있는 신물 나는 알약들.

기어이 약봉지를 거실 벽에다 내동댕이쳤다

등뼈들이 튕겨져 나와 또르륵 구르고.

봄은 아직 멀었는지

잠시 피다만 4월의 벚나무들이 일제히 밭은기침을 한다.

1이라는 숫자는 1이어야 하고

2라는 숫자는 2여야 하는데

4월의 저들은

1-2저리 분분한가

떼전으로 햇살 덤비던

어느 봄날,

사춘기 여자아이의 박수소리는 들리지 않았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방과사이는

굵은 침묵이 새끼를 치고……,

약발도 받지않은 침묵이

독약으로 돌변하자

손에 잡히는 분노들이 어딘가를 향해 와 장창 내리치고 있었지.

얼마나 힘껏 내리쳤던지

발등에 핏물들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지.

사기파편 더미에 벚꽃들이 환하게 반짝이고있었지.

 

 

 

 

 

 

 바닥

 

한영숙

 

 

 

퍼붓던 지난 겨울눈들이

하늘의 바닥이었다는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

두꺼운 밑바닥을 쓸어내고 나면

뚫린 파란 구멍이 보였어

얼굴 깊이 묻고 엎드려 소리치면

항아리 울음소리 같은 웅웅 귓전을 때렸어

하늘이 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

누군가에게 속을 내보인다는

갈비뼈 떼어준 시린 옆구리 같았을.

발짝 하나 찍히지 않은 세상이

아름답다고 누군가 들뜬 마음으로 환호를 질러댔어

또 다시 눈이 내렸어

하늘 바닥은 어느새 막혀있었어

도무지 속을 수가 없어

거리와 골목은 눈천지로 푹신거렸어

사람들도 슬슬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어

나도 어느 틈에 눈으로 뭉쳐진 돌멩이가 되어 있었어

자동차도 아파트도 거대한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어

그들은 하늘의 두꺼운 바닥을 더욱더 견고하게 다지고

이제 속은 더욱더 깊어졌어

하늘을 삽질할 때마다 삽날에 돌멩이가 걸려 나왔어

나도 걸려 나오고

아는 누군가도 삽날에 이마가 찍혔어

이젠 쟁글쟁글한 하늘이라고,

그런데 두꺼운 바닥이 지금 새고 있어

점점 침몰하는 중이야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여름철엔 헐벗은 복근남들만 설친다

 

한영숙

 

 

 

겨우내 부진했던 음료 업계가

몸만들기에 돌입했나보다

복근남인 벚나무들로

쇼핑홈에 신제품 광고를 한다

봄신상 팝업창

벌어진 어깨 풀어헤친y셔츠 ,

복근 선명한 몸을 드러내며 드링크를 선전하는

그에게

익명의 누리꾼들이 숨죽이며 일제히 클릭!

따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고

모처럼 갈증 끝에 콸콸 빨아들이는 전율로

모니터의 대지는 소름이 돋는다

포털싸이트는 이내 광고빨 받는 모델로 도배질이다

불티나게 흡입하고 있는 미니 마우스들로

그의 육체는 빨판자국들이 파르스름하다

미끈쌔끈한 복근남에게 뭇여성 시선이 단박에 꽂히는.

옆구리살 두루뭉술한 몸꽝 네티즌들이

뻘뻘 흘리며 유산소 운동을 한다

내내 맵싸리한 운동에 드디어 11복근이 파르슴 돋아나고

온몸 근육질인 몸짱 사진을

첨부파일로 붙여 후기담에 속속 올린다

강추의 댓글들이 잡풀 올라오듯 왁자끌 돋는다

 

그의 벗은 몸에 클릭만 하면

너도나도 웃통 벗어젖힌 복근남이 되어 모니터를 후끈 달군다

 

 

 

 

 

 

헐거움에 대하여

 

한영숙

 

 

 

멀리서 보면 나무들로 가득 있는

날리지 못하도록 새순을 돌돌 감으며

원심기 페달을 밟아대는,

가까이 보면 나무와 나무는

서로의 팔과 팔이 겹치지 않는다

동료의 팔이 길다면 다른 각도로 자신의 팔을 벌려

신록 스푼 넣고

헛둘 헛둘 여유롭게 페달을 돌리면

푸른 솜사탕들이 봉글봉글 가지마다 단내를 날린다

땀내 나는 겨드랑이 귀퉁이  

지나가는 어린 새들에게도 통째로 내어준다

편안히 새끼들에게 달콤한 하루를 내어주는 붙살이질도

또한 소소한 재미다

눈도 뜨지 않은 생명이

솜사탕 입가에 묻혀가며 없이 재재재 뜯어 먹는.

빡빡이 조여진 나사처럼 사방이 막혀 있다면

새들도 나무에 둥지를 틀지 않을 것이다

조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참깨 같은 서울 환승역,

어깨와 어깨들이 하루에도 수만 부딪치지만

그가 번지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는 요즘,

녹음 우거진 산을 보면서

바람에 날려 솜사탕 덩이 슬며시 뜯어먹는다

 

 

 

 

 

 

 

 

막혀있는 것들은 오프너로 따주자

 

한영숙

 

 

 

 

공중화장실 변기뚜껑 굳게 닫힌

한번쯤 열어본 적이 있지

누군가 급하게 뒤처리를 하였지만,

오히려 변비 걸린 변기통이 꾸르륵 배앓이를 하고 있지.

변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한번 변비 걸려봐

약도 없지

호탕하게 웃는 입은

한밤중 좌변기 내리는 소리처럼 콸콸하지

말레이곰 꼬마가 탈출을 감행했는지

그가 누린 9일간의 자유가 넌지시 말해주지

청계산을 누비며 여기저기 오프너로 놓은 흔적들

스트레스로 막혀 있던 속을

골짜기 곳곳에 시원하게 방뇨했었지

손톱을 이용해 허술한 곰사문을 따지 않았다면,

청계산으로 가출을 하지 않았다면,

30먹은 할머니 곰말순이와

막힌 변기놀이를 언제까지 하고 있겠지

입술 굳게 닫아버리고.

 

 

 

 

 

 

 

 

간다마빤*으로 피어나다

 
한영숙

 

 

 

아웅산묘소

17명단 앞에 우리는 시계를 거꾸로 감았다.

없는 폭발음이 들리고

수류탄 파편들이

순간 멍게 여드름으로 벌겋게 박혀있다.

마하무니불탑 개금 붙이듯 싯누런 시간들은

이국땅에서 겹겹이 수십 ,

개금과 改金 사이를

해독할 없었던 X파일들이

오늘,선명한 사진 장으로 인화되고 있다.

2015513오후 600분발

오탁번 절기시회 전사들은

그렇게 경건히 예를 올리고 있다.

저리 몸이 었던 있었던가.

 

폭발물 잔해더미 속에서도

찾아온 고즈넉이 반기는

검은 꽃숭어리들,

먄마 뙤약볕,

꽃대마다 뉘엿뉘엿

각혈한 핏물들이 날것으로 피어오른다.

 

 

 

 

 

 

 

 *간다마빤;국화꽃

 

 

 

방백

 

한영숙

 

 

 

노숙자 몸에서 노숙자냄새 나고

샐러리맨 몸에서 월급쟁이 냄새가 난다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퀴퀴한 쉰탁배기 냄새나고

화장기 없는 닭치는 아줌마 몸에선 닭똥냄새가 난다

 

땀내 가득한 만원전철 ,

때아닌 양계장냄새로 소란스럽다

삶은 계란 역하게 트림하는 냄새에

일시에 볼트 시선들이 꽂혀지고

 

방금 승차한 그녀,

탁구공만한 대여섯 꾸러미에 얼기설기 엮어

양손에 양양히 치켜들고 있는.

니들 이런 토종닭 낳아봤어?

-당당한傍白  

 

전철 안은 어느새 닭들이 시끄럽게 쪼아 대는 양계장

철로에 닭똥들이 수북수북 쌓이고.

 

 

 

 

 

 

 

 어느 유곽에서

 
한영숙

 

 

 

씨암탉하려고 아껴둔

토종 중병아리 마리,

멀건 대낮에

때아닌 군홧발 들이닥친 투계족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보쌈당했다.

비밀요새에 진을 치고 있는 비닐하우스 막사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를

끌어내 내동이 친다.

턱주가리벼슬 길게 늘어진 소대장 투계가

찢어진 살기 도는 눈으로

욕정에 굶주린 웅성대는 소대원들을 단숨에 제압한다.

볏이 돋지도 않은 그녀의 정수리를

날카로운 부리로 물고

육중한 몸집을 짐짝처럼 털썩털썩 싣는다

하루에도 수백,

뱃속 묵은 찌꺼기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시원하게 욕심을 내깔긴다

군표軍票지급받은 졸개들,

얼마 만에 보는 암평아리에

서로 차지하려고 계급장 떼고 난투극이다

막사 안은 포격당한 꼴리는 쌈닭들 투계장이다.

 

토종 중병아리, 오전 내내 힘겹게 품은

묻은 초란을 낳고

정수리 짓이겨진 엉거주춤 걷는 그녀 뒤로

소대장중대장분대장병장상병일병이병 완전 무장한 투계족들이

일사분란 줄서서 경배한다.

 

 

 

 

 

 

 

 

 

 

집으로

 
한영숙

 

 

 

밤늦은 전철

봄비 가저벅저벅 검은 장화발로 들어선다

피로에 젖은 하루들이 무릎과 무릎을 맞댄다

좌석에 앉은

늙은 사내의 깊게 패인미간에서

그간 군중 고독 깊이 살라낸

니코틴 고뇌들이

젖은 몸에서 빗발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다

무엇이 저리도 꽁초 비벼대도록 자욱한 하루들이었는지

온몸 용고뚜리로 쿨럭이고 있다

매캐하게 빠져나간 어느 역에서

중년 향수남이 이미 흠뻑 젖어버린 무릎을 타고

빈자리를 채운다

은은히 발효되지 않은 싸구려 향수들이

우산꼬챙이에서 빗물처럼 똑똑 떨어지고

순간순간 노출된 그의 사생활 일부가

봄비와 뒤섞여 철로에 간간이 뿌려진다.

연일 고된 하루 일과에 절어있는

나는,

‘잠시 어느 누군가의 기댈 어깨가……’

‘들어갈 집이 없다는……’

문자 한통을 서로 주고받는다.

얼마 남지 않은 기지국을 향해

마지막 전동차는

미끄러지듯 빗속을 질주하고.

꼬박꼬박 들어가야 집은 있지만

언제나 그녀 마음속은 빈집.

거기엔 용귀돌이도

싸구려 향수남도 일절 기거할 없는

오직 일급수만 수십 년째 유유히 흐르는 빈집.

전철 비어있는 좌석들에(凹凹凹凹凹……)

등짝 들썩이며 봄비에 젖어있는  

고요 하나()

홀로 웅크리고 있다.

 

 

한영숙:2004년『문학선』등단.시집『푸른눈』등.2014발견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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