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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비탈을 견디다 / 서 대 선 (시인)

서대선의 시평-8

서대선교수 | 입력 : 2020/08/19 [10:52] | 조회수 : 115

 

 

 

삶의 비탈을 견디다

 

               

                                서 대 선 (시인)

 

 

                 ‘사람들이 말하듯, 이 세상에서는 누구나

                   뜨거운 태양과 거센 바람에 고통 받으며 살아간다.

                   누구나 갈증과 배고픔에 시달린다.

                   세상살이가 그렇단다.

                   그러니 잘 들어라, 내 딸아, 귀여운 내 아이야.

                   이 세상은 안락한 곳도 아니요, 즐거운 곳도 아니요,

                   행복한 곳도 아니다.

                   마음 아프지 아니한 즐거움은 없고,

                   가슴 아리지 않은 즐거움도 없는 것이 세상살이란다’

                        -고대 라틴 아메리카의 아스테카 ‘선인이 남긴 이야기’ 중에서

     

 

 

언덕길

 

       권달웅

 

 

쇠똥구리가 소똥을 굴린다.

온 힘을 다하여

소똥을 뭉쳐 안간힘을 쓰다가

 

언덕 아래로 놓쳐버린다.

쇠똥구리는 희망처럼 아득한 길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반겨주고 기다리는 식구들이

살아갈 집 한 채 짓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식식대는 황소가 거품을 물고

싸놓고 지나간 똥이

 

징검다리에 놓인 까만 돌처럼 드문드문한

망초꽃 하얗게 핀 시오리길,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 뿐이리’

 

 얼마나 소박한가, 권 시인의 바램은... 그가 원하는 집은 대리석이나, 철근이나, 유리나, 벽돌집이 아니다. 그저 “식식대는 황소가 거품을 물고/싸놓고 지나간 똥” 속에 집을 짓는 “쇠똥구리”처럼 소박한 집 한 채를 짓고 싶은 것이다. 집의 크기도 그 옛날 권력자들이 욕심 부렸다던 아흔 아홉 간의 고대광실 기와집도 아니고, 오늘날 천민자본주의를 자랑하려 지은 수백 평짜리 집도 아니다. 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치고, 사회적 관계에 지친 채 가족에게 돌아갔을 때, “반겨주고 기다리는 식구들이/살아갈 집 한 채 짓”는 것이 그의 바램 인 것이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집 마련이 “이렇게 힘들다니”.....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Abraham Maslow, 1908-1970)는 인간이 지닌 근본 욕구의 충족 여부가 인간의 가치형성, 학습, 성격형성, 정신적 건강 및 질병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지엽적 문화나 임의적 환경의 힘에 의해 인간으로서 충족 시켜야 할 근본 욕구가 좌절당했을 때, 인간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 아직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만족시키는 만족 요인(satisfier)을 과대평가하거나, 이미 충족된 만족 요인을 과소평가하게 되면 가치의 변화가 초래된다고 보았다.

     

 집은 안전의 욕구를 채워 주는 장소이다. 편하고 즐겁게 자의적인 행동이 가능하며, 생명의 안전과 사생활이 보장되는 곳이어야 한다. 안전의 욕구(safety needs)는 두려움이나 혼란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 평상심과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안전의 욕구가 채워지지 못한다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을 겪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전쟁이나 자연재해, 가정폭력, 유아학대와 같이 개인의 물리적 안전이 보장되지 못할 경우에 발생하게 되는 정신적 트라우마이다.

 

 “반겨주고 기다리는 식구들이/살아갈 집 한 채 짓기가/이렇게 힘들다니,

 

 63일은 ‘무주택자의 날’이다. 무주택자의 날은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 19926월 ‘더 이상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과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민주사회를 위해 노력 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주거약자의 안정적 주거권 확보를 위해 선포한 날이다. 2016년 기준 전체가구 (1980만 가구)44%871만 가구가 무주택 가구로 나타났다. 무주택 가구들은 전월세 형태로 거주하고 있다. 세입자들은 마치 ‘비정규직과 같은 불안한 삶’을 영위하며, 삶의 비탈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쇠똥구리가 소똥을 굴린다./온 힘을 다하여/소똥을 뭉쳐 안간힘을 쓰다가” “언덕 아래로 놓쳐버린다./쇠똥구리는 희망처럼 아득한 길을/우두커니 바라본다.

 

 우리나라 전체가구 중 주택을 2건 이상 보유한 가구는 14%(277)이며, 주택을 10건 이상 소유한 가구는 0.002%(42000가구)이며, 주택을 51건 소유한 가구는 3000가구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집이 부족한 이유 중의 하나로 부유한 소수가 너무 많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권 시인이 시적 제재로 차용한 “쇠똥구리”는 자신과 자손의 안전을 위해 지으려는 집의 재료가 “식식대는 황소가 거품을 물고/싸놓고 지나간 똥이”다. 가난한 서민들이 바라는 주거지는 천민 자본가들이 자기과시를 위해 사용하는 값비싼 재료로 지은 집이 아니라, “쇠똥구리”가 짓는 집의 소재처럼 아주 소박하지만 식구들과 오순도순 살아갈 집 한 채를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소박한 집 한 채 조차도 마련하지 못한 채, 삶의 비탈에서 아슬아슬하게 견디는 서민들의 삶을 전언하는 권 시인의 시가 절절하고도 아프다.

 

‘주거는 투자 수단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 이어야 한다는 전언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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