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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외9편 / 임지나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8/20 [09:54] | 조회수 : 334

 

  © 시인뉴스 포엠



만추

 

                임지나

 

 

원한 관계였던 A씨를 B씨가 살해했다

 

 전과가 없는 멍청하게 떠 있는 파란 하늘 같은 그들이 새빨간 침이 나오는 밭은 기침을 사방에 뿌린 이 사건은 A씨가 수확한 과일 열매 씨앗들을 나누어 가진 다음 일어났다 B씨는 정확히 A씨 대퇴부를 가격했고 대동맥이 터졌다

 

 다른 지인 C씨는 그들이 원한 관계가 아닌 여느 애인보다 각별한, 남이면서 공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진술했다 또 뿌리부터 친족이었고, 떡잎같이 생명의 단초인 연둣빛일 때부터 사랑이 굳건했다는 후문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잘 자라주고 있는 식물이고 그 속을 흐르는 색소 같은 존재였었다고

 

 A씨는 피의 빈털터리가 돼도 좋다면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 했다

흔쾌하게 천천히 나직이

 

 날선 칼을 보면 칼이 칼자루에 다가가 박히는지 칼을 향해 칼자루가 먼저 박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칼을 칼로 찌르진 못하겠지

 

 11. 두께가 얇아지는 마지막 햇살이 나무가 둘러쓰고 있는 가체加髢, 나무의 둥치에 예리하게 계속 꽂힌다

 

 마르고 비틀려 붙어 있지 않는 눈썹들 붉은 속눈썹들은 떨어져 더 마른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여간다 아니, 아직까지 두런두런 소리를 내고 있다 착란중인 피곤한 냄새 나는 나무가 지금 눕는다

 

 

 

 

 

 

 

 

 

 

5월 억새에게 내미는 시

 

                              임지나

 

 

할머니들 아직 하늘로 올라가지 마세요

똑똑 분질러져도 자꾸 휘어져도 같이 살아요

저는 꽃의 키만큼도 닿지 않은 걸요

사람이 사람을 뚫고 나오는 걸 알았네요

할머니의 뻣뻣한 발등에서 푸른 순이 올라오는 걸 봤어요

오늘은 밀알만 한 무당벌레가 어디서부터 기어 왔는지

얇고 가는 마른 대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더군요

모든 것들은 꼭대기라는 정자亭子를 향해 나는 걸 좋아하지요

그러다 갑자기 날개를 펼치고 붕붕대네요

늙어서 너무 길어진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넓은 등이 되어 주셨잖아요

쓸쓸한 할머니의 은비녀 사이로 저수지도 보이네요

저수지는 삶이 관통한 듯 여지없이 파랗군요

누런 풀들 사이로 제 눈에 막 들어오고 있어요

그것은 드문드문 보이는, 만질 수 없는 영애令같은 고움

잠겨 있는 옛날이야기 같은 거죠

패물 상자처럼 언제까지나 우리 꽉 끌어안고 있기로 해요

몇 해가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늙수그레한 풀과 호수는

이 계절을 처음 앓는 듯 쑥스러워하네요

, 저 성성한 머릿결 같은 햇빛 약하지만 발걸음 소리 내는 풀

꿀을 머금고 있는 공기 바람과 나부대는 나무는

저를 교란 시켜요 할머니

저는요 조용히 또 임신하고 싶어요

 

 

 

 

 

 

 

 

 

 

 

아몰레드

 

                         임지나

 

 

 

노을이 가라앉을 때 사랑하는 이도

붉은 구덩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늘을 뒤집어 탈탈 털어내면

새로 살고 싶은 날이 쌓여간다

그에게 뱉었던 말들을 넝마 줍듯 줍고

어깨에 기댄 만큼 머리숱을 끊어내고 싶었다

저녁은 비처럼 빨리 떨어진다

저녁엔 무얼 하면 좋을까

날이 바뀌기 전 나의 가면 중

어느 걸 버리고 어느 걸 써야 할까

무덤 속에서 할 일을 저녁에 하는 걸까

그는 떠났지만 내가 보냈지만

진물 흐르는 눈동자로 나는 더듬대며

어둠에서 그의 등신대를 맞춰보고 있다

, 징그러운 갓 잡은 생선 비늘 같이 튀는

밤의 파편들 밤의 기운들

 

아몰레드 아몰레드

술집을 나서면 그는 다시 내 뒤에 있다

 

 

 

 

 

 

 

 

 

 

 

 

 

 

 

 

천재의 휴식

 

임지나

 

 

 

 레논? 아침이었고 넓은 포도 넝쿨에 떨어지는 얌전한 빗소리 같은 누가 섧게 울듯이 그를 호명했다 부드러움에 당황했어야 했다 의심 없이 레논은 돌아봤고 총알이 몸에 박혔다  

 

  우아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척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경찰을 기다렸다는 팬 팬에 의한 죽음 사랑이 사랑을 살생 하는 순간 표범이 표범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어둠이 어둠을 삼킨 순간

 

  정의로운 목소리가 죽었다 후두가 아프다 부드러움은 왜 간곡한 거지? 부드러움이 연거푸 오는 걸 싫어하자! 그를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돌아보는 것은 왜 인간의 익숙한 행동인가 슬픔은 뒤에서부터 진하고 어깨뼈부터 부서진다  

 

  강남 터미널 앞 플라타너스가 몸을 최대한 부풀렸다 가을보다 플라타너스는 높아 나는 존 레논의 imagine을 듣는다 누군가의 이상으로 찢어질듯 가득 차있는 한 하늘은 푸르다 지금 부드럽게 호명 당한다면 기꺼이 머저리가 돼 나도 돌아보겠다 너라면 어쩌겠니, 나무야

 

 

 

 

 

 

 

 

 

 

 

 

 

 

 

 

 

 

나비의 자석

 

             임지나

                   

 

 

활활히 활활히 날아다니는 저 나비

지구 중력에 역행하는 것 같아 어질어질 비척비척

 

그럼에도 잘 보아라 나를, 이게 똑바른 거다

종이비누 같은 날개를 팔랑이며 아무 방향 없이

강건한 움직임을 시위하듯 보이는 나비

 

근심 없어 보이는 저것도

꿈이라는 것이 시련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건 푸른 하늘의 새들처럼 직선을 그어대며 비행하는 것  

그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항로 같은 것일 수도 있겠고

끝내 미로가 되기도 하겠지

 

나비는 삶을 미리 연습할 수 있는 생명체

꽃에 앉는 일은 현기증 때문에

더듬이로 진정제를 복용하는 중요한 일임을

 

꽃밭 속에 자석이 있어 자석이 있어

붙을 듯 하다 날고 날 듯 하다 붙는 훈련을 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라고

 

하나, 봄이라는 형광물질에 먼저 중독될 수 있으니

곳곳에 눈을 심어 두는 게 좋을 거야

웅얼웅얼 귓속말하며 허공에 궤도를 그리는 나비

 

봄을 땅바닥에서 공기 중간까지 오르게

높은 하늘까지 치솟게 하는

 

그러나 아직까지 꽃들의 겸연쩍은 新房에서 하늘거리는

자잘한 커튼의 레이스 같기만 한 연약한 나비일 뿐

 
 
 
 

석류

                임지나

 

 

 으깨어 있어도 우린 파티 중 찬연한 파티 중 이건 붉고 좋은. 미소는 눈물을 삭히고 진땀이 났던 표식, 이미 겪은 웃돌았던 감정들, 정확한 이별 언어를 꼭꼭 씹어 뱉은. 이런 걸 산산이 깨지는 파티라 해야 하나

 

 흩어질 줄 알았지만 아등바등 모였지 모여야 안심이 되는 습성은 이상해 하지만 꽤 괜찮은 느낌 어쨌든 네 속에서 난 끝까지 쌓여 있었으니

 

 네가 생각나는 날이면 예정대로 말간 비가 내려 죽죽 소리 나는 선명한 비, 네가 주문한 이별을 난 결심하는 척 주먹을 쥐어봤어 주먹은 살근살근했어 다른 손으로 그 주먹을 만져봤지 근육이 흐물거렸어 새끼고양이 옆구리 같아 그래서 네가 맡긴 고양이에게서 석류향이 났구나

 

 서로의 몸은 마르며 껍질 같았지 그림자 같은 불투명한 껍질, 석류 안의 막처럼. 우린 넘치기도 했지만 막이 쳐 있었어 언제든 터질 준비가 돼 있는 지뢰 같은, 석류만도 못한 사랑. 불안한 자갈 같이 입 속은 붙잡는 말로 빼곡했어

 

 햇볕 아래서 살았던 만큼만 사랑하자 안은 그늘졌어도 늘 뭉텅이로 네 마음에 침투해 살아보고 싶어 제대로 나 좀 봐줘 햇볕에 가두고 나무에 가둬서라도 더 엉겨서 더 호동그랗게. 신장투석 중인 저 석류나무 아래서 고백한다

 

 

 

 

 

 

 

 

 

 

 

 

 

 

 

불밭 꽃밭

 

                     임지나

 

 

 

그들의 얼굴에는

ㄲ과 ㅌ이 숱하게 너풀거리는

 

끝끝끝끝끝

끝끝끝끝끝

끝끝끝끝끝

 

무릇 꽃무릇 밭은

끝이 모여 사랑을 시작한다

 

끝과 시작은

아무래도 같은 자국

 

이룩할 거 없어도 뜨겁고

영원히 우린 붉을 뿐

 

잠시 잠깐

슬픈 전희前戲의 행렬

 

팽팽한

저 핏줄 밭

 

 

 

 

 

 

 

 

 

 

 

 

 

빗소리

 

                   임지나

 

 

 

-비는 잔소리다

 

뼈가 붙어 있는, 하늘에서 선사하는

숱한 갈등을 하다 머리숱처럼 머리말처럼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피하려고 경고 부저를 놓친 구름들은 울먹거린다

 

-심연이다

 

온몸이 찬물에 천천히 박힌다

약하게 울고 있는 바다 소리가 난다

거대한 바닥을 더듬다가 빗소리는

자기 면적을 찾아냈다

 

-맹렬이다

 

근면하고 목표가 있다 그걸 알아챘지만 가버린다

손끝이라도 잡으려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그리워하는 걸 돌출시켰다가 감춘다

 

-튄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비의 껍질까지 위로 솟았다

넓은 나뭇잎들은 가는 멸치와 마른 새우를 체로 턴다

젖는 건 현실이고 예고했던 주문이다

집의 지붕과 새떼도 축축해진 말들이 무거워

이따금 깃을 흔들었다

 

 

 

 

 

 

 

십만 원

 

                         임지나

 

 

 

어머니, 슬퍼하지 마세요

어머니 탓이 아니에요 저는 그냥 무정 속에서 살았을 뿐

 

노모 모시고 결혼도 않고 살았던 68세의 최씨. 기초수급자였던 그는 집이 팔려서 나가야된다는 집주인 얘기에 곧 집을 비우겠다했고 다음 날 죽었다 노모가 죽은 지도 3개월. 시신을 거두러 온 사람에게 전하는 듯 국밥이나 사먹으라고 써 놓은 흰 봉투엔 10만원이 있었다한다 그리고 좀 더 큰 글씨로 쓴, 저릿한 한마디 “개의치 마시고” 관리비며 공과금도 새 돈으로 바꿔 집주인에게 남겼다고

 

그가 겪었을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자살을 결심하기까지의 연상聯들 그 괴로운 시점에 국밥값이라니 폐 끼치지 않을 후일의 도모라니 깊은 죽음. 풀 먹인 광목천 같은 빳빳한, 없던 일로 하고픈 그의 몸에 들어가서 이미 반성하고 있는 죽음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겨울과 여름, 고독의 무게, 고독의 강도로 낡은 골목들이 운다 이 골목 능소화는 유난히 더 뒤집혀 피고 슬픔으로 배부른* 독거의 옆자리에 떠드는 입 몇 개, 살내 나는 후덕한 복숭아나무 두 어 그루, 돗자리만한 꽃밭과 텃밭이 있길 바라는 멍청한 나의 바람, 웹진의 뉴스는 답답하고 자주 틀틀대는 6월의 후텁한 바람, 또 불고

 

 

 

 

*함민복

 

 

 

 

 

 

 

 

 

 

 

파쿠르하는 사람

 

                   임지나

 

 

 조금만 가면 낙원이다 낙원을 향해 온몸은 생채기지만 오로지 헤맬 뿐이다 장비 없이 맨몸으로 쇳소리 나게 뼈를 던지고 살갗을 던지고 그림자마저 던진다 턱 떨어지다 다시 몸을 치솟게 하는 저들의 숨은 수호신처럼 극적이다 낙원의 정체를 모르는 구경꾼 심장은 위태롭게 뛴다 그림자보다 빠르게 구르는 몸 그림자가 먼저 지치지만 스치는 바람의 함성은 엄청나다 아무 것도 없는데 팔과 다리는 짚을 곳을 찾아내고 우툴두툴하던 청춘의 모퉁이를 더듬듯 돈다 바람을 잡아먹고 표범을 잡아먹은 그림자는 바람이었다가 표범도 되어 난다 뛰다 지치면 나는, 숱한 찰과상에 뼈가 으깨져도 투명한 피 흘리며 펄럭이는 깃발 같은. 암벽을 타는 산악인이 미련 없이 자일을 떨어뜨리는 것 같이 건물 사이에 저들은 심장과 간을 조각내어 떨어뜨린다 성격 밝은 타란툴라들. 누구도 공격하지 않는 혼자의 수련, 흥미로운 내 몸의 역사, 찰나의 구원과 부활, 삶이란 극복이 아닌 즐기는 고통의 자세. 연주해야 할 나만의 골짜기들. 앞발가락이 간신히 딛고 있는 건 난간의 끝, 끝을 잡고 시작한다 잠깐 쉬어도 소매 보풀은 뜨겁게 너덜대고 뜯겨나가는 허벅지를 가졌지만 쾌락은 더 환해진다 죽음에 안겨야 되는 순간 죽음도 밟고 춤추듯 주술처럼 움직이며 벽과 뼈 난간과 난관 가쁜 호흡과 맥박사이를 튀어 다니는 저들, 그러니 내일아 각오해라 좋은 날이 될 테니

 

 

 

 

 

 

2015 《시와 소금》 동시,

2017 영주일보 신춘문예와 2019 《시와 경계》 시 등단.

동시집 《머그컵 엄마》를 냈음.

2020 충남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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