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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시인 외 1편 / 이주희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8/26 [09:49] | 조회수 : 96

 

  © 시인뉴스 포엠



 

대시인 외 1

 

                             이주희

 

냉장고 앞에서 ‘주’ 하면

주스를 달라는 이야기

현관을 가리키면서 ‘주’ 하면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타고 멀리 가자는 말

빨간 토마토도 빨간 꽃도 빨간 차도

전부 ‘빨’이다

대시인은 이런 식으로 행도 연도 만든다

 

할머니를 부를 때도 ‘할’

할아버지를 부를 때도 ‘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앞다투어 달려간다

하지만 귀 기울여 들어보면

딴에는 차이가 있다

할머니를 찾을 때는

무 자르듯이 단호하게 ‘할’ 하고

할아버지를 찾을 때는

한가로이 헤엄치는 물고기마냥

‘하알’ 하며 꼬리를 흔드는 것이다

 

돌이 지난 아가는

한 음절로도 모든 표현이 자유로운 대시인이다

 

 

 

 

 

 

 

 

 

 

 

 

 

         작다리 목도장

 

 

목도장이 지천이라는 엄마의 지청구

아무리 산더미면 뭐하나

원서에 남의 것을 찍을 순 없는데

오빠들은 대학교까지 보내주면서  

 

북극성 같은 도장을 처음 가져보는 친구들은

흥타령하며 어른이 된 듯

교과서마다 꾹꾹 찍어댄다

 

서리 맞은 풀잎처럼 돌아온 집에서

작다리 목도장이 손을 흔든다

 

오빠 언니가 둘씩이나 되면서

중학교도 못 보내겠느냐며

큰오빠가 굴러다니는 도장을 잘라낸 뒤

샌드페이퍼로 문지르고 내 이름을 새겼단다

 

생애 첫 도장

비뚤어진 획 없이 쭉쭉 뻗어나간 것이

당장이라도 중학교로 직행할 기세다

 

 

 

 

 

 

 

 

약력 : 2007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마당 깊은 꽃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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