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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받다 외1편 / 홍경나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8/27 [10:04] | 조회수 : 113

 

  © 시인뉴스 포엠



사과를 받다                        홍경나  

 

 

사과를 받으면

사과의 기분이 떠오른다

사과를 두 손으로 받으면

사각사각 사과의 기분이 되어

사과 생각만 한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

사과즙이 입안에 흥건해진다

사과의 맛이 흥건해지는 것을 느낀다

사과는 늘 사과의 표정을 짓고

사과는 사과의 발음을 한다

사하고 소리를 내다가 과하고 빠르게 입술을 움직이면

사과의 향기가 맹렬해진다

사과하고 탁 트인 소리를 내면

어느새 사과의 은유는 새콤달콤해진다

사과는 둥글어 굴리기 좋다

사과는 둥글어 굴러다닌다

사과를 받으면 둥그런 용서의 감정이 된다

사과는 껍질에 싸여있다

얇고 질긴

멍을 숨기고 움푹 파인 사과의 굴곡을 숨기고

불룩하고 매끄러운 사과를 보여준다

울긋불긋 더할 나위 없는 감정

감정적이지 않은 선 기분 같은

빨강이랄지 우물우물 노랑이랄지 혹은 육삭의 싯푸름

이런 것들

사과를 받을 땐 사과 생각만 한다

진진한 사과의 맛이 고이는

사과의 편이 된다

문득 그가 내게 사과를 주었다

나는 두 손으로

사과 한 알을 받았다

 

 

 

 

도그지어(Dog's ear)                 홍경나                 

 

 

접어둔 페이지를 펼쳤다

처음 보는 페이지처럼 펼쳤다

 

오래 전 그때 페이지를 접었다

미련이 많아 뒤돌아보는 사람처럼

주머니 속에서 또 주먹을 쥔 사람처럼

또 나를 접었다

함부로 접힌 페이지

 

나는 그를 잊었다

벽 위의 정물화 같은

유월의 나비물 같은

페이지 대신 나를 잊었다

 

성큼성큼 들여놓은 가장 안쪽의 안

더 확장되는 한쪽 귀퉁이, 페이지의 귀

 

책을 펼쳐들 때마다  

접힌 페이지가 나타났다

나는 겁 많은 짐승처럼

되돌아오기만 하는 내선순환열차처럼

페이지를 다시 접고 책을 덮었다

 

다시는 네가 떠오르지 않을까봐

 

 

 

 

 

 

이름:  홍경나

 

약력:  <심상> 등단 (200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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