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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ergency 외9편 /채종국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9/02 [10:49] | 조회수 : 694

  © 시인뉴스 포엠



 

 

Emergency

                            채종국                        

 

지나는 구름이 내 폐를 그리네

바람에 서서히 부서지는 폐

숨을 쉴 수 없네

 

파란 문장 속, CO2

염증처럼 퍼지는 말

 

ㅡ 폐에 구멍을 뚫고 말들을 빼줘야 해

비문非文이 차올라 호흡 곤란이 오네

 

ㅡ 뇌로 호흡해야 해

운율을 살려 호흡기를 꽂지만

정신을 차릴 수 없네

 

병신춤처럼 흩어지는 문장

뒤틀리는 행간에 각혈을 하고

똑바로 누워 하늘을 보지만

부서진 장기들을 모을 수 없네  

 

ㅡ 심장을 만들어 줄까

환영처럼 들리는 말

다시 심장이 생기면

바람이 망가트린 숨결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외딴 섬 몇 개, 뇌수를 떠돌고

전신 마취된 문장 호흡을 멈추네

 

동공이 멈춘 자리

펄떡이는 심장

 

희미한 문장 부호, 파르르 손을 떠는

 

 

수건

ㅡ 불온의 참서

                                     채종국                                      

 

나의 지문과 수없이 악수했던 흔적이

죽은 들짐승 가죽처럼 욕탕에 늘어져 있다

 

밤새 침묵을 지키며

내 지문의 역사를 돌이켰을 쓸쓸한 포효가

또 다른 나의 지문과 대면하며

촘촘히 쓰인 수천 올 활자로 누워

오늘 아침 밤새 묵은 때를 씻는다

 

역사란 지난한 밤이 지어낸 조판에

슬픈 기억들을 닦아내는 것인가

 

살갗에 닿았던 물기가

균열을 이루는 슬픔의 진앙

 

협곡의 봄처럼 찾아온 새벽을 따라

한 계절 슬어놓은 피륙에 새긴 이야기를

샛강에 뿌린다  

 

허리가 반으로 접힌 절망을

마지막 지문을 털어낸 햇볕과 바람의 기억을

칠흑 같은 어둠을 견뎌 온

 

저 불온의 참서를

 

 

 

장미

ㅡ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시간 때문이야*

                                          채종국  

 

흔한 꽃이지만 흔한 아름다움은 아니었어

흔한 이름이지만 흔한 네가 아니었던 거지

 

봄볕을 좋아하는 너는

마른 담벼락 같은 내게 뿌리 내렸어

 

함께 커피를 마시고

함께 밥 먹고

함께 손잡고

함께 살내음 울음을 듣던

깊은 잠행의 소행성

 

네가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너를 위해 내가 공들인 시간 때문일까?

 

그럴 거야, 네가 정말 소중한 건

내 존재에 호흡을 입혀 주었기 때문이야

 

공을 들인다는 건

내가 가꿔온 시간에 너를 꽃피운다는 말

 

흔한 꽃이라 말하지만 이미 넌

내 존재의 완성인 걸

 

네가 소중한 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너의 가시가

내 목에 걸려있기 때문이야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포옹*

 

                                          채종국  

 

그리 탐스럽지도 않아

그런데도 뼈가 으스러지는 날이 많아 보였어

 

탐닉에 탐닉을 더하면 격렬해지는 법

사랑이 이토록 불편할 수 있다니

 

노란 몽환을 덮는 담요 아래

종잇장처럼 구겨진 격렬의 흔적

 

격렬에서 죽음까지의 완성

그때마다 넌 진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했지

 

왜곡된 육체라 말을 하지만

너의 내면의 반듯한 정신은 아니었는지,

나의 시선이 왜곡된 건 아니었는지 몰라

 

사랑과 죽음이 등가의 형태를 입은

숨 멎은 환희이자

엉겨 붙은 죽음의 두 덩어리

 

내 관능과 욕망의 어리석은 포르노그래피

네 관능과 욕망의 절대 구원

 

 

 

*에곤 실레의 그림

 

 

 

 

 

 

 

 

 

편지

                                      채종국  

 

수천 활자가 바다를 기억하고 있다

 

빽빽한 청어목의 슬픔

마른 비린내가 문자가 되기 전

이미 반짝였을 문장

 

햇살을 풀어 놓은 그물 위

펄떡이며 써나간 바다의 힘줄

 

작은 상자에 담겨

수메르 문자처럼 남아 있지만

멀어진 파도가 눈동자에 걸려 있다

 

바다는 은빛 칼을 휘둘러 쓴

수만 킬로를 가로지른

문장을 기억할 것이다

 

문자로 지상에 이르러

햇살과 물결을 엮어

바다를 동여맨 편지

 

우체국 소인 없는 트럭에 실려

누군가의 입속으로 읽혀 들어갈

은빛 레시피,

멸치의 생몰 연대를

 

 

 

 

 

형상기억눈물

                          채종국  

 

햇살을 잘라 만든 나뭇잎 그림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고

버스는 미끄러지듯 남산을 오른다

 

칸칸이 눈앞을 지나는

잎과 가지의 그늘

몸을 감싸 안는 봄볕

 

눈을 덮는 따스함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

 

이런 날의 눈물엔 이유가 없다

 

투명한 겨울이 지나고

가벼운 죽음이 몇 번 있었을 뿐

 

이렇게 큰 볕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지나는 봄의 객차마다

싱그런 초록의 죽음

 

저 꽃,

다시 볼 수 있을까

 

ㅡ 이 봄이 네겐 전부야

 

이런 날의 눈물엔 정말 이유가 없을까

 

 

양말

                       채종국  

 

 

저녁 무렵 벗어 던져 구겨진 모습이

노동에 척추가 무너져 내린 사람 같다

 

무릎 꿇고 무사한 날이 지나간 것에 대한

감사 기도를 올리는 것 같다

향기로울 수 없는 향을 가지고

거룩한 하루의 마지막 번제를

올리고 있는 것처럼 저녁을 향하고 있다

 

하루 치 노동에 대하여

감사해 본 적 언제던가

경건하게 목을 내밀고

하루를 견뎌온 그 무사함에

밤 기도를 올리는 것 같은 저 양말처럼

무릎이 저리도록 밤새 오늘을 돌아본 적 있었던가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노동요를 곱게 불러오는 밤

무너져 가는 일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신어야 할

저 경건한 노동을 위한 하루 치 품삯

 

엎드려 있는 양말의 등허리가 좁고도 가난하다

 

 

 

 

 

 

 

 

A 씨 이야기

 

                        채종국  

                                 

 

 

이를 악물고 일하는 동안

가슴은 늘 비어 있었어

길게 뻗은 빨랫줄을 따라

반듯하게 살아온 듯하지만

실상은 위태로웠어

 

매달려서 생긴 직업병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잇몸 사이 통증이 몰려오곤 해

 

젖은 것들만 물고 있어야 했어

함께 많이 울었어

이 일을 하기에는 너무 쉽게 흔들렸어

 

슬픔도 전염이 되나 봐

자꾸 눈물이 나

참새 떼처럼 매달려 있지만

혼자인 걸 알게 되었어

불화한 허공에서

밤마다 나를 물었어

불면이 어깨 위로 내려앉을 땐

저물녘 강물의 비늘로 반짝이고 싶었어

 

잇몸 사이 통증이 심해져 가

이곳에서 곧 버려지겠지

 

이제 어디로 갈까

 

밤마다 등 뒤에서

낯선 슬픔이

울고 있어

 

정작 내 슬픔은

돌보지 못했던 거야

 

슬픔을 말리는 일

거기엔 내가 없었던 거야

 

 

 

 

 

 

 

 

 

 

 

 

 

 

 

 

 

 

 

 

 

먼지의 공전

                             채종국  

 

유리창에 비친 햇살에

먼지가 눈에 띈다

 

행성처럼 떠 있다

공전을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태양계 행성처럼

방안이라는 우주를 질서 있게 떠돌고 있다

 

우주의 먼지로 돌아간다기에

별은 거대한 먼짓덩어리라기에

오늘 저 먼지가 내가 돌아갈 곳이라기에

 

죽어 먼지처럼 방안을

내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것일까

 

죽어 저 떠도는 눈으로

광활한 신의 사유를 바라보는 것일까

 

햇살이 시선을 거두면

이내 사라지고 말겠지만

먼지 같은 행성

먼지 같은 방안에서 먼지로 공전하는

아름다운 별들의 향연에

발을 내디딜 수 있다니

 

,

놀라운 죽음이여

별이여

 

이름이여

사랑이여

나여

그리하여 먼지의 공전이여

 

 

 

 

 

 

 

 

 

 

 

 

 

 

 

 

 

 

 

 

 

 

 

 

 

 

 

 

 

 

 

 

 

 

 

피오르드에서

 ㅡ 죽을 것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핏덩이처럼 걸려 있는 구름,

     검푸른 협만과 마을 위에 칼처럼 걸려 있는 구름 너머를 멍하니 쳐다봤다*

                           

                                     채종국  

 

얼굴의 형체를 자세히 그릴 수 없었어

윤곽을 뚜렷이 그렸다면

칼로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거야

 

석양이 피오르드를 통째로 삼키고 있었어

죽음에 대한 묘사는  

어릴 적 꿈에 보았던

행성의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었어

(죽음에 가장 가까운 기억이었을 거야)

 

저마다 소용돌이치고 있었어

붉은색 가까운 하늘과

하늘을 닮은 사람들 얼굴

 

모두 숨을 쉴 수 없었어

 

침대에서도

병원에서도

다리 위에서도

 

우리를 기다리는 건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릴 수 없는

소용돌이치는 낯선 얼굴

 

 

 

그림을 그릴 때면

붓 속 광기가 털을 곧추세워

물감에서 죽음이 묻어나와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불안은 싹을 틔우고

엄마에게 배운 죽음이

너무 일찍 그림을 물들였어

 

밤이 눈을 크게 뜨는 날이면

곁을 떠난 사람들이 그림 속으로 찾아오곤 했어

 

공허한 듯

조문을 오는 사람들

 

나를 삼키는 저녁

 

피오르드의 붉은 눈 내리는 저마다의 붉은 눈

 

 

* 뭉크의 일기 에서

 

 

 

 

 

 

 

 

 

 

 

 

 

 

 

약력

    성명: 채 종 국

      1970년 광주 출생

      2016년 신라문학대상 수상 (시조)

      2019년 『시와 경계』 등단
    시와 의미 동인, 대중서사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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