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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어진다는 것 외 1편 / 최소정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9/03 [10:51] | 조회수 : 932

 

  © 시인뉴스 포엠



 

붉어진다는 것 외 1

 

최소정

 

 

 

물 없이 삼켜버린 말들의 되새김질

잊기로 한 추억들의 풀무질이

물안개로 피어 어렴풋 시야를 가리우면

그녀는 매번 허기가 진다

미처 적어두지 못한 일기나

입술에 같혔던 언어들이

구름 뒤에서 저녁으로 다가와 속살거리면

모락모락 가슴에 연기가 난다

까맣게 솟아오른 어제들이

하루 해가 낯설어 갈대처럼 버석거릴 때

그녀는 진한 커피 한 잔 들고

노을 앞에 앉는다

그가 그녀에게 준 상실이나 소멸

그녀가 그에게 보낸 별리의 기억들이

붉게 하나로 물들어

서로 밑지지 않는 지평이 되는 곳

더도 덜도 아니게 숙연해지는 곳

노을 앞에선 모두가 마냥

아름답더라고,

 

-  월간 모던포엠 2020. 4월호

 

 

 

 

 

기점

 

최소정

 

한 계절이 창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새벽녘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

절기마다 이름없는 파장들은

해의 허리를 돌아

작지만 명징한 다음 계절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계절이 짜 놓은 사연들은 습한 대기에

거미줄처럼 널리고

덫에 걸린 먹이에 게임으로 집착할 거미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한 계절이 나간 문으로

다른 계절이 들어오는 때

나는 빛깔 좋은 옷을 입고 창가에 설 것이다

밤을 넘은 해에게 입맞춤 하며

멀리 개 짖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짜여질 사연들을

시간이라는 물레에 올린 채

계절이 익어가는 소리와

초저녘 밥이 끓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늙어가는 것은 어쩌면

계절의 문을 별만큼 무수히

열고 닫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계간 시와 편견 2019. 겨울호

 

 

 

 

 

 

 

▶ 최소정 약력

 

2019. 시집 〈타로카드에 들키다〉로 작품활동 시작

 

2020. 계간 「시와 편견」 으로 등단

 

공저 -  〈돌을 키우다〉 〈내 몸에 글을 써다오〉 〈나비의 짧은 입맞춤〉

 

「시와 편견」 작가회 회원

 

시사모 동인

시사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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