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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잡는 힘 / 조갑조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9/08 [09:33] | 조회수 : 69

 

  © 시인뉴스 포엠



 

지푸라기 잡는 힘

 

 

 

요양병원 창가 그가 휠체어에 앉아 살아온

순간순간을 손가락으로 꼽는다

보푸라기 이는 삶에는

꽃들이 주위를 맴돌고 있어서

머리가 얽힌다

 

그는 새까맣게 닳은 손톱으로

이름을 하나씩 건드리기만 해도 하이힐들이

혓뿌리를 널름거리며 달려온다

 

배시시 환각이 들어와서 웃을 즈음

 

화사가 생허리를 조이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마른 뼈 소리를 내는 신음이

칸나의 기운을 받는지

드르륵 혀가 이빨을 지나간다

 

불깡통을 놓지 않고, 버리지 않으면

시원한 두피 힘을 모를 거라고

시베리아산 뿔나방이 날아와서 등을 후려친다

 

갑자기 풍요의 뿔이 비어 공명이

운다

이런 삶에 방정식이란 오답 투성이다

 

 

 

 

 

 

 

 

 

 

 

 

 

 

또 그렇게

 

 

약봉지들이 여름을 안고 태양 주변을 돈다

 

상한 간이 섬을 드나드는 유빙처럼

알약을 삼키지 못해 눈빛으로 미루다니

 

지루한 날들이다

 

약을 넘기다 말고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에

입이 약봉지 뒤로 숨는다

 

짙은 밤이 가슴으로 서서히 스며든다

돌아오지 못한 강에 발을 담근 한 인연을 위해

가슴에 돌바위를 얹고서

썩은 감자 도려내듯 떨어지는 대로 눈물을

닦아낸다

일찍이 백합 한 뿌리를 가슴에 심지 않았다면,

 

어둠이 도적처럼 발끝으로 떠나는 새벽에 그가

날개옷을 껴입는다

강 저쪽으로 안개인 듯 흰 실루엣이

엷어지고,

또 그렇게 살다가 떠나가고

 

다음에 강가의 물푸레나무로 우리 만납시다

 

 

 

 

조갑조 시인 약력: 마산 출생, 『문예운동』 등단, 한국 시인협회 회원,

                 강사, 시집 『달개비 보랏꽃도 그리웠다』(용인문협 창작지원금 수혜)

                 『까만 창틀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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