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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다리 외1편 / 김미희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9/09 [09:57] | 조회수 : 72

 

  © 시인뉴스 포엠



가죽 다리/김미희

 

 

방바닥에 다리가 구겨져 있다

다리는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달려갈 기세다

 

‘Made in Italy’ 근사한 명함 하나로

반들반들 진짜 가죽인 양

후진은 모르고 앞으로만 달렸던 잘 빠진 다리

조여 채웠던, 앙다물고 있던 지퍼를 열고 숨을 내쉬고 있다

볼기짝 미어지는 줄도 모르고 재고 온

출렁이는 살을 떠받치고 움켜쥔 채

온몸으로 밀고 온 하루를 주름으로 내려놓는다

 

신축성만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살과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라고 믿으며

꽉 조였던 마음

뒤집혀 벗겨진 순간에도 놓을 수 없는지 주춤거리고 있다

가끔은 속도에 밀려 엉켰던 다리

떨어지려 하지 않는 살을 풀고서야 허물어진 가죽 다리

살 냄새 풍기며 꿈틀거리고 있다

 

 

 

 

 

 

멸치 /김미희

 

 

 

바싹 마른 멸치 똥을 떼어낸다

그 넓은 바다에서 누가 던진 그물에 걸렸기에

날 비린내를 끌어안고

꼼짝없이 이민 길에 올랐을까

 

그 어느 그물코에 꿰여 이곳까지 옮겨

머리도 창시도 다 버리고

끓는 냄비 속도 마다치 않고

잡것들과 섞여 온몸 흐무러지게 우려내지만

결국엔 버려지는 몸일 텐데

  

이끼 무성한 틈새라도 좋다

터를 잡아보려고

낮은 잡풀에도 몸을 낮춘 채

똥줄 타게 달렸다

 

허풍인 줄 알면서 은빛 비늘 부서져라 웃어줬다

믿기지 않지만 속아줬다

맨 프라이팬에 볶여 소주 안주가 되고서야

불빛도 없는 방에 들어

두 눈 부릅떠 팔딱이는 지느러미를 재운다

 

 

  

 

 

 

 

김미희

2005년 『미주문학』으로 등단

달라스예술인총연합회 회장 역임

달라스한인문학회 회장 역임

시집 『눈물을 수선하다』(2016),『자오선을 지날 때는 몸살을 앓는다』(2019)

윤동주서시해외작가상(2016), 성호문학상 본상(2017)

편운문학상(2020)

계간 『시마』에 『미희와 선하의 시와 사진』, 지역 신문 KTN에 시와 수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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