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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있는 행성 외1편 / 김미정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9/09 [10:05] | 조회수 : 157

 

  © 시인뉴스 포엠



 

장미가 있는 행성

 

 

 

비가 그친 그때

시들어버린 장미꽃에

이미 스며있는 향기는 아직 시들지 않았다

누군가 조용히 비늘을 말리고 있다

 

어둠이 등을 미는 그때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날 때였지

나란히 걷고 있었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하필이면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을까

옆집 춘자 언니가 찔렸지

검은 고무줄로 칭칭 감아

피도 눈물도 자전거 바퀴도 멈췄지

발은 점점 푸른 탱자가 되어가고

일그러진 얼굴도 스르르 말라버린 하얀 탱자꽃이 되었지

살려달라고

아니, 죽어도 좋다고

제발 종아리를 묶은 고무줄만 풀어 달라고

아우성쳤지

열십자가 열리고

춘자 언니 복숭아뼈에서 검붉은 꽃 한 송이 피어났지

 

비가 그친 그때

한 송이의 장미를 다시 만나기 위해 뱀에게 물린 어린 왕자가

나란히 비늘을 말리고 있다

 
 
 
 
 
 

아득한 풍경

 

 

 

사거리 빈터에 새 건물이 들어섰다

자동차 흠집 제거 외형복원

모서리에는 거울이 한쪽 발을 올려놓고

오가는 사람들을 포섭한다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면 오른손이 대꾸하는

어제의 주인공이 오늘은 관객이 되기도 한다

 

나를 보고 있는 나

그런 나 뒤에서 내일에서 온 나를 만나기도 한다

 

나를 보고 있는 너

어쩌면 너이고 싶었던 나, 인지도 모른다

 

남겨진 빛 속에서 소란스러운 침묵이 들끓고

그 길을 따라가면 사라지는 순간들

순간으로 들어가면

거울 속의 거울을 만질 수 있을까

 

건널목 앞에서 신호대기 중

거울이 나를 읽는 시간은 삼분

그 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고

뒤돌아 나간다

 

닦지 않은 거울 속에서

그대로인 자체로 아득하게 바래어 간다

 

흠집 제거 외형복원

나의 주저함을 자꾸만 받아 읽으려는 너

 

나의 변심을 변형으로 착각하는,

 

* 2020. 모던포엠 8월호 게재

 

 

 

 

김미정

- 약력 : 2020《시현실》등단, 시산맥 영남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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