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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이줄기 외1편 /이 혜민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9/14 [09:51] | 조회수 : 76

 

  © 시인뉴스 포엠



 

1.덩이줄기/이 혜민



 
눈을 감으면 뛰노는 발자국 소리나 가랑잎 굴러가는 웃음소리 들린다

싹 트기도 전에 눈알 빠진 씨감자가 되는 운명
누군가를 위해 태어난 나도 외딴집 담장 밑에 버려진 건 아닌지


가난을 때 국물로 묻힌 눈 속에는 허기진 등가죽이 보인다
남몰래 물배를 채우던 그림자가 깊다

감자를 캐는 일은 가난 속에 박혀 있던 시간을 만나는 일이지만
구석쟁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나의 나를 찾아 헤매는 일이기도 하다

별을 헤며

이슬을 받아먹고
돌작밭에 박혀

가느다란 핏줄에 겨우 생명을 부지하던 그 집 맏이


한 뼘 땅 속 풍경은 어둠을 뒤엎고 밖으로 나와서야 완성되는 걸까
물퉁인 채 줄기로 남아 여물지 않는 덩이를 품는다

아프다 


 밭이랑에 모여 앉은 감자를 보며 파헤친 추억 속에서 상처가 울 때
 어린 씨감자도 눈알을 비비며 바짝 안겨온다
 맺힌 덩이들이 속울음을 캐는 밭이랑 끝에 있는 외딴 집

 

 

 

 

 

 

 

 

 

 

 

 

2.뒷골목/이 혜민

 

 


돼지 피 붉은 살을 맨 손으로 썬다
저울에 올린  살 한점  살짝 빼서 훌쭉 가방에 채워 넣는 나는 그런 사람
신장개업 하자마자 폐업하는 가게를 인수 해 붉은 강을 내고 지폐가 넘치도록 손익계산서를 생각 한다
불법 건축물 체납자인 주인은 집착력이 강한  찔레 넝쿨 같고 날카로운 가시를 온 몸에 달고 금 수저라며 으스댄다

한사코 남의 발을  밟으며 떡잎 노란 것들이 꽃이라고 우긴다
주먹으로 말하는 어깨들이 무섭고 혐오스럽듯  뒷골목 사람들은 빛과 그림자가 주먹이 된다

근수가 빠진 만큼 살을 붙이는 돼지들과 사람의 혼을 끌고 다니는 거리에서 나는 동물의 신분증을 갖고 산다

먹어도 늘 허기진 구멍에서 살 빼 먹기를 하는 여자

털어도  나오는 게 없는 빈 가슴
오색 별빛을 병따개로 따 동전만 채워 넣는다
때때로 호흡이 뜨는 응급실에서 죽음을 들이 받는 멧돼지로 산다

여긴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뒷골목

사람들 피 흘리는 비명 때문에 나는 신장개업  삼 개월 만에 가방을 싼다

호로 씌운 트럭에 상표도 떼지 못한 금고를 숨기면서

 

 

 

 

 

 

 

 

 

 

 

 

 

 

 

 

* 약력

 

경기도 여주출생

2003년도 문학과 비평 신인상으로 등단

2006년 경기문화재단창작기금과 2018년 성남문화발전기금 수혜로

토마토가 치마끈을 풀었다, 나를 깁다, 전자책 봄봄 클럽 출간

2019년 제 2회 안정복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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