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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등에 업힌 바보 새 외1편 / 김찬옥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9/14 [09:56] | 조회수 : 104

 

  © 시인뉴스 포엠



바람의 등에 업힌 바보 새  

 

 

 

소녀의 손엔 책가방 대신 주전자가 들렸지

 

아버지의 혀끝으로 흘러나오는 말이 지렁이처럼 구불거렸지

 

누룩 냄새에 취한 날개는 제 몸통보다 더 크게 자라났지

 

살구꽃이 지천인 날도 평지조차 뒤뚱거리며 걸었지

 

동진강 다리 밑에서는 오리 알도 품을 수 없었지  

 

하루에도 수십 번 밀물과 썰물 차는 부녀 사이를 확인했지

 

바닷물은 철썩이며 사철 밤낮으로 울었지

 

그 무렵 서해바다는 보이지 않는 두 개의 섬을 더 품을 수 있었지,

 

피부색이 검은 소녀는 꼬챙이처럼 말라만 갔지

 

가족의 도란거리는 불빛은 울타리 너머로나 볼 수 있었지

 

그날 밤 이별의 전야곡에 눈시울이 붉어진 건 고샅길이었지

   

소녀는 변산반도를 돌아 나올 때 아버지의 허파를 뚫고 나왔지

 

낯선 도시가 캄캄할 때면 태평양을 건너는 알바트로스*의 날개를 읽었지

 

‘좋은 날엔 날 수 없는 무거운 날개가 바람만 잘 타면 하늘도 등에 질 수 있다지’

 

종이비행기를 접다가도 늙은 소녀의 히스토리는 실타래처럼 풀려 나오지

 

어쩌다 들춰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리얼하게 펼쳐 놓을 수 있지

 

여린 가슴에 새겼던 상처가 고서로 남은 줄 아버지는 모르지  

 

 

제 살이 파이는 줄도 모르고 잘 익은 슬픔 한 덩이 수박처럼 파먹지    

   

 

뒤늦게 고통의 뒷면을 쓸 수 있는 찬스를 내밀어준 이 누구신지?  

 

 

 

 

 

 

 

 

 

 

 

 

 

 

 

 

 

 

 

 

 

 

 

 

 

 

 

 

 

 

 

 

 

G선상의 아리아

 

 

 

 

가을배추가 해산달을 조율하며 몸통을 부풀리는 소리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물고 오솔길로 숨어 걷는 소리

 

코스모스 꽃들이 바람의 사다리 위에서 오색 무지개를 띄우는 소리

 

밤이 가시 동굴을 등에 지고 거꾸로 날아오르는 소리

 

녹두밭에 녹두 알갱이가 톡톡 튀며 광명을 부르짖는 소리

 

감나무가 노을보다 붉게 허공을 물들이는 소리

 

촛대 위에 앉은 수탉처럼 수수의 벼슬이 붉어지는 소리  

 

가을 붓이 황금빛을 덧칠할수록 들판이 머리 숙이는 소리

 

나뭇잎들이 갈바람의 초대장을 받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 소리

 

밭두렁에서 늙은 호박이 스스로 제 무덤을 단장하는 소리

 

억새꽃이 하얀 새털구름이 될 때까지 허공을 쓸고 닦는 소리

 

 

 

 

 

 

 

 

 

 

 

 

 

 

약력

 

 

 

김찬옥

전북 부안 출생

96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가끔은 몸살을 앓고 싶다 물의 지붕』『벚꽃 고양이』『웃음을 굽는 빵집』

수필집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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