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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라는, 에 대하여 / 최지하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9/23 [20:29] | 조회수 : 240

 

  © 시인뉴스 포엠



네모라는, 에 대하여/ 최지하

 

 

노랗게 오려 붙여진 바다 하나가

꾸깃꾸깃 출렁이다 귀퉁이부터 몸져눕기 시작한다

매상 없는 가게 주인의 하품이

파도의 거품 속으로 스밀 때마다

몸이 텅 빈 새가 날아다닐 것 같은 저녁이 태어났다

새의 안광 안으로 들어가 이제 막 돌아서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등이 네모로 굽는다

네모는 형식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들여다보면

더러는 각이 진 발상으로 교묘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모양들 중에서 괴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타인의 손과 발을 봉인하는 방식으로 네모가

소용되곤 하였다

 

지나간 어느 한 시절의 불꽃들은

사각형의 기억을 지녔다

 

창문의 너머는 한 시절의 불빛들은

사각형의 기억을 지녔다

 

창문의 너머는 단애와 가까웠다

서른 개의 태양이 사각형 속으로 떴다가 지고

시트지로 감싼 자동차들이 창문에서만 달리는 일이

목격되는 날들도 있다

가끔은 꽃잎이 끓고 있는

따뜻한 방이 있다는 사실이 근거 없이 유포되기도 했지만

 

수신처가 의심스러워진 오후 끝으로 부치게 될

작문이 미완인 채로 끝을 맺었다

우체국을 향하기 전에 사각봉투로부터 찾아야 한다

 

네모는 내가 버리려고 생각하기 시작한

습벽이거나 비통한 것의 이름이다

 

최지하 시인의 시집 『오렌지 나무를 해답으로 칠게요』중에서

 

 

 

사족)

 

네모는 사전적으로 네 개의 모를 뜻하며 수학적으로는 네 개의 선분으로 둘러싸인 평면 도형을 말한다. 포스트잇과 창문의 연관성, 1연은 포스트잇 속성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냈다. 포스트잇은 메모를 위한 용지, 일반 메모지와 다른 점이라면 한쪽 면은 어디든 접착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제도적 내지는 습관적 의식 때문에 어떤 행위든 구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타인의 손과 발을 봉인하는 방식으로 네모가 소용되곤 하였다/

 

사랑한다는 말, 오늘 중으로 업무 처리할 것, 몇 시까지 와! 라고 적힌 메모는 포스트잇이 가지는 영향력을 말한다. 포스트잇에 적힌 메모를 보고 모른 체 넘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장사가 안 되는 주인의 상점도 사각의 틀에 갇혔다. 하품을 하는 주인의 입도 사각형이 아닐까?

 

포스트잇과 창문이 가지는 네모의 성향을 교묘하게 대치시킨 작품에서 불투명적 관점과 투시적 관점에서 시인은 틀이란 요소를 통해 속박된 현대인의 심리상태를 이야기 한다. 이것은 문명을 등에 지고 사는 현재 우리 모습이 아니겠는가. 바깥이 두려워서 자신을 스스로 가둬버린...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그런 틀을 벗어나 자유를 구가하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를 비롯해 인간적 연대까지도 수긍할 수밖에, 세상과 타협해야 하는 비통한 혹은 비굴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자세, 어쩌면 우리 모두가 희망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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