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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팬티 외1편 / 황주현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09/29 [10:37] | 조회수 : 107

  © 시인뉴스 포엠



 

 

목련꽃 팬티 / 황주현

                           

 

 

열흘 낮밤 목련 꽃잔치는 끝났다

 

몸살처럼 무더기로 꽃잎 떨어지자

나무 그림자마저 수척해 지던 어느 날

막차를 타고 도착한 목련 한 송이

바람의 뒷덜미를 잡고 안간힘 다해 버티고 있었다

 

먼발치서 그 질긴 목숨 대견해 쳐다보기를 몇날 며칠

도무지 지지 않는 그 꽃잎 궁금해 가까이 가보니

이런 제기랄

몇 층에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목련꽃 속살처럼 희디 흰 여자 팬티가

가지 끝에 간신히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잠시나마 행복한 꽃이었던 팬티를

어찌 할까 하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그냥 모른 척 눈감아 주기로 작정했는데

 

참 이상하다

그래도 꽃일 거라고 우기는

끝까지 지지 않을 거라고 우기는

목련과 팬티의 경계를 허물고 말겠다는

내 속의 그 무엇이 나를 우격다짐하는

 

목련보다 더 환한

속살을 들켜버린 부끄런 여자가

자꾸 나를 보고 웃어 보이는 환시를

어쩌란 말인가

늦은 밤 취중 귀갓길에

외로운 달빛처럼 나를 부르는 환청을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연신 마른 군침만 삼켜지는 봄날

지금이 고비다

 

 

 

 

 

 

 

못을 박는 일

 

 

 

못을 박는다는 것은

못의 집을 짓는 일이라는 걸

못 빼면서 알았다

 

무심결에 행한 못 하나로

집을 짓고 허무는 일이라니

 

세상 밖으로 단 한 번도 머리 굽히지 않은

짧은 수직의 안간힘으로 버틴

오래 고인 녹물 흥건한 걸 보고서야

벽 속의 어떤 기억까지

허물어 졌다는 걸 알았다

 

수십 년 한결같이 바라보았을

인색한 가족의 저녁까지

한순간 송두리째 뽑아버렸다는 것도

그 좁고 긴 어둠의 집을 보고서야 알았다

 

나에게도 오래 박아 둔 채 빼내지 못한

아득한 집이 있다

세상의 빛조차 기억해내지 못한

콘크리트 내벽속의 숨겨진 집

 

어쩌면

누군가 지었는지 이미 까무룩해지고

다시 돌아와

녹물이 꽃물로 번졌는지 도무지 알 길 없지만

 

눅눅한 저녁으로 혼자 돌아와

그저 옷 한 벌 고요히 걸어 두면 좋을

작은 못 하나

다시 박고 싶어지는

 

 

 

 

 

 

황주현 시인 : 2020년 계간 <시인시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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