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꽃들의 진화 외1편 / 신지혜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10/05 [10:28] | 조회수 : 83

 

  © 시인뉴스 포엠



꽃들의 진화

뜰에 뿌린 제라늄꽃씨가
어느 날 예서제서 얼굴들 뾰족 내밀더니
그늘 한 장씩 거느린 채 도도하다

꽃들은 지구별 위에서 가장 맹렬하다
천둥 번개 치는 날에도 꽃들은 터진다
안개 자욱해도 꽃잎에 꽃술을 단다

꽃들은 영악스럽고 당차다 너풀거리는 얼굴들
들여다보면 무섭다
얼마나 많은 꽃들이 이 땅을 읽어갔을까
이 세상의 명암을 알아버린 후, 꽃들은
향기를 풀어 한 계절을 포박했다 그리고
꿀벌과 나비 떼 부르고
바람 불러 그들 존재를 널리 알렸다
소문이 번져 절벽 끝 무명초나 사막 선인장까지
그 소식 알아들었고, 열려있는 모든 귀가 알아듣고                              함께 동조했다

꽃의 집단은 입을 모아 말한다
모래 위에, 바람 속에, 안개 속에서도 우린
끝까지 쟁취해요 거저 된 것 아무것도 없어요
내 얼굴화장과 독특한 향기 위해 때때로 공기의 빙벽에
무수히 갈비뼈를 찧으며 파란만장했습니다
우리 꽃빛은 저마다 그 고통의 빛깔입니다

그의 얼굴인 꽃잎 속 암술수술들 보존키 위한
특이한 디자인은 그들만의 대물림 유전인자를 고초 끝에
진화시킨 결과이다

우린 꽃들에게 열광한다 갈채 보내며,                                            꽃 앞에서 V자를 그린다
그럼에도 꽃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래에
이 지구전체를 점령하고 우월한 종이라는                                  정복자의 깃발을 꽂을 것이다
그리하여 함부로 삶을 집적대거나 꺾어대는
오만방자한 사람들을 무릎 꿇리고 싶은 것이다

 

 

 

 

 

 

 

 

 

 

 

 

 

 

물방울 판타지

 

 

 

어느 여름날, 시원한 물 한 대접 받는다

수 천 물방울 차곡차곡 담긴 물이 틈새 없이 빛난다

촘촘히 짜인 물의 교직,

서로 밀착하여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구나

준 것도 받은 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사랑과 증오가 오간 흔적도 없구나

까마득하니, 오간 길 다 한통속으로 뻥 뚫렸구나

네가 앉았던 자리 내가 누웠던 자리 없이 한자리 되고,

어떤 것은 엎어져 떠받치고 어떤 것은 누워서 떠받치고

어떤 것은 꼿꼿이 마주 보며 서로 떠받치고 있다

 

어떤 놈도 물의 얼굴이라 부를 수 없고                                            

라 부를 수 없다

서로 섞이고 나투고 돌아가며 높이 올라간 파도도

다시 한 일자 수평으로 일순 고요해지는                                                                                                                                                            

다 함께 숨 쉬는 법 안다

 

물 한 대접 속, 물의 수면 오래 들여다보는데

 

틈새 없는 저 물방울들 서릿발 번뜩인다

 

넌 무얼 떠받치느냐고

단 한 번도 네가 너 아닌 적 있느냐고

너 허물고 물 되어 이리저리 흘러본 적 있느냐고

 

저 물방울들 속엔

시시때때로 내가 있다고 우격다짐 내세우던

내 부끄러운 주장자가 간 곳이 없다

 

 

 

 

신지혜 약력

 

서울출생

2000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200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밑줄』 『토네이도』(도서출판 상상인)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

미주동포문학상 최우수상

미주시인문학상

윤동주 서시 해외작가상

뉴욕중앙일보, 보스톤코리아신문, 뉴욕일보,

뉴욕코리아, LA코리아, 월드코리안뉴스 및

다수 신문에 좋은시 고정 컬럼연재

세계계관시인협회 (UPLI) United Poets Laureate
International Member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