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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지나간 자리 외1편 / 최선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10/08 [11:56] | 조회수 : 132

 

  © 시인뉴스 포엠



기차가 지나간 자리

 최선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말뚝에 묶인 짐승처럼 앉아있는 폐역 능내역

뒤꼍에 무궁화 세 그루 키우며 살고 있다

몇 송이 보랏빛 꽃이 머리핀처럼 꽂혔다

 

그가 하는 일은

모래알처럼 역을 빠져 나간

지난 시간을 들춰 보는 것

 

도착할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지

세시 방향으로 몸을 열어두었다

 

마지막 지나간 열차의 초상화를

회색 앞가슴에 영정처럼 걸어두고

대합실을 참배하는 관람객들

조문객처럼 맞는다

 

모퉁이 돌아 떠나간 마지막 기차

노선과 시간표를 놓치고

어느 외진 산길을 돌고 있을까

 

치사량의 기다림을 삼킨 역사(驛舍)

아무런 미동이 없고

역사 안은 공복이 잡초처럼 자랐다

 

마당귀에 쌓이는 환청이

나이테처럼 돌아 나오는

늙은 간이역

짓무른 눈가 한낮의 적요에 든다

 

떠난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기차가 지나간 빈 철로에

오후의 플러그를 꽂자

기차의 괴성이 달려 나왔다

 

 

 

 

골목은 공사 중입니다

 

최선

 

이곳은 골목의 늪

졸고 있던 늙은 골목으로

숨죽인 어둠이 몰려온다

 

수만의 혈족을 거느린 길들

등 굽은 골목에 누워있다

 

수 년 전 매끈하게 포장한 위장술에 깜빡 속아

발자국을 떨어뜨리고 도망친 여자가 있었다

 

발목을 먹어치운다는 경고판

바닥공사중이라는 쪽지를 날려 보낸 것은

골목이 사주한 바람이었다

 

빳빳하게 굳은 오래된 발자국

밀대로 밀어 장판처럼 편편하게 보수해야 한다

 

어둠이 깔린 골목

짜증 섞인 외마디가 들리면

골목이 발을 낚아챘다는 신호음이다

 

골목에 남은 깊게 파인 발자국들

비틀거리며 뒤를 쫒는다

 

그날 밤

황급하게 도망친 그 여자의 흔적이

낙관처럼 남아있다

 

 

 

 

 

 

 

충남 청양 출생

 

2014년 화백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 꽃들의 발목 (2020년 )

 

사진작가 / 사진집 / 블루트리 ( 2007년 )

 

시산맥 특별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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