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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카메론 외1편 / 고 경 숙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10/12 [08:59] | 조회수 : 118

 

  © 시인뉴스 포엠



신데카메론

 

 

                        고 경 숙

 

 

 

첫째 날 – Corona

개기일식이다 맨눈으로 태양을 올려다봐도 좋으리

욕심 많은 침략자는 태양의 왕관을 뜯어내 머리에 썼다

힘없는 나무들은 길섶에 주저앉아 허옇게 시들시들 말라갔다

 

둘째 날 – 광장

텅 비었다 당신이 떠나간 시간은 허공에 길을 내고 향기와 색과 모양을 기억하는 그림자가 오래 그리고 길게 광장을 지켰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듯 고양이 몇 마리 뒤따라가고 광장은 열린 채로 닫혀있다

 

셋째 날 – 금화 몇 닢

원행에서 돌아온 지방관리가 흰 천으로 얼굴을 둘둘 감싸고 나왔다

대장장이는 금화 네 닢, 빵 굽는 여자와 딸은 여섯 닢, 외과의사네 가족은 금화 열 닢을 받았다 보모는 아이를 데리고 온실로 들어가 딸기를 따 먹였다

 

넷째 날 – 가족 식사

얼굴과 얼굴, 손과 손, 입과 입, 이야기와 잔소리가 만난 식탁은 서로를 알아간다 당신의 기호가 무엇이었는지 오후 네 시엔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알아야 할 책무가 있다 빠진 사람이 궁금했다 엄마는 이게 가족이라고 했다

 

다섯째 날 – 굿모닝 아가야

가방 안에 들어있던 아이가 기억하는 하늘과 고양이처럼 박공지붕을 기어가던 아이의 배경은 같다 강물 보다 먼 곳에 있는 엄마와 아이와 아빠 사이에는 ‘와’ ‘와’, 와이어보다 더 아슬아슬한 안부, 여자는 이것도 가족이라고 했다

 

여섯째 날 – 날개 없는 천사

모두 입을 틀어막았다 네 뒤에 선 나는 양팔 간격으로 다시 그 옆에 당신의 어제와 오늘이 웃다가 운다 백 일 동안 비가 오고 백 일 동안 치성을 드리면 우린 온전할 수 있는 걸까 천사는 얼굴에 십자가처럼 반창고를 붙이고 지상에 머물고 있다

 

일곱째 날 – 숨을 쉴 수가 없다

조력자는 없었다 방관자는 색과 색을 확인해 줄 뿐이다 여전히 살아있는 것들은 헐떡거린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죽은 사람들에게 일련번호가 매겨지는 그 서열에도 끼지 못한 남자 눈동자는 차가운 바퀴 밑을 응시한다

 

 

여덟째 날 – 침묵

나뭇가지 새장에 들어있는 앵무가 고장이 났다 말을 따라 하지 않는다 따라 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깃털 속에 부리를 묻고 있다 사람들의 입도 고장 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가리고, 코를 가리고, 가끔은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사람들도 있다

 

아홉째 날 – 춤

하늘에 제를 지내자는 얘기가 돌았다 역병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어두운 하늘의 별 보다 더 반짝이는 옷을 입고 춤을 춘다 허공을 지탱하는 사지는 오늘 밤 자유다 역신이 물러갈 때까지 그들은 죽을 것처럼 춤을 추기로 했다

 

열째 날 – reset

우리 사랑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밤이 새면 벽은 벽을 향해 물러가고, 시간은 멀리 뒷걸음칠 것이다 남으로 난 문을 오래 열어 바람을 들이고, 빗방울 그득 먹고 자란 풀을 따러 염소 몇 마리 산비탈을 내려올 것이다 나는 찬란했던 너를 기억하리라

 

 

 

 

 

 

 

 

 

 

 

 

 

 

 

 

 

 

 

 

 

 

 

울면 (  )

 

 

           고 경 숙

 

 

 

시험에서 낙방하고

버스 기점에서 종점까지

하염없이 타고 앉은 청년의 빨간 눈은,

 

시장 언저리 장난감 사달라고 발 비비다

체득한 어린아이의 인생 진리를 굳이 (  )라고

말하지 않지만,

 

지금 기억해보는 한 가지

우리는 그때 명사 밖에 넣을 줄 몰랐다는 것

 

많은 시간이 지나고 많은 것을 내려놓던 시절,

순한 사람은 바보와 통한다고 믿으며

대개는 괄호 한 구석에 조용히 서있다

(   )벽에 기대 쪽눈으로 내다보는 세상은

허다하게 불합리하고 숱하게 저리다

 

못된 동사를 대입하면서 어쩌면 한 번도 참지 않았을

저들의 현란한 성공사는 과연 행복했을까

여태도 정답을 못 찾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는 생각한다

울면 (  )다 대신,

울어도 소용없더라

 

 

 

 

 

 

 

 

 

 

 

 

[고경숙]

 

2001년 계간 <시현실>로 등단

수주문학상,두레문학상,경기예술인상 수상

희망대상(문화예술부문)수상

한국예총 예술문화공로상 수상.

부천시문화상 수상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공로패 수상

부천시 문화예술위원,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운영위원,

부천펄벅기념관 운영위원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시집 <모텔 캘리포니아>(2004), <달의 뒤편>(2008),

     <혈을 짚다>(2013), <유령이 사랑한 저녁>(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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