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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쯤, 무릎담요 외1편 / 양수덕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10/15 [13:59] | 조회수 : 58

 

  © 시인뉴스 포엠




 

그 쯤, 무릎담요

 

                                                                                                양수덕

 

 

 보이는 것으로 지팡이를 삼는 이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별을 심어야 하는 이의 이야기가 무르익어 한 편의 영화가 되었으니 한 이불 안에서 동거해야 하는 물질과 영혼처럼

 

 무릎이 시려와 허벅지가 떨려와 가슴은 냉동고 하얀 김 뿜으며 서로를 겨눠 달려가는 주인공 둘

 

 만나게 되어 즐거운 날 서로의 역할에 심지 박고 칭찬하기 바람꽃의 혀를 빌려 날선 눈초리 감춘 채 살 맛 죽을 맛을 넘나든다

 

 통통한 오렌지나무처럼 무릎이 환해지고 허벅지에 물오르는 상상이라니 서로를 가슴까지 끌어 덮기에는 길이가 짧군 둘이서 혼자일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리지 중얼거림이 새나가지 않도록 진땀 흘리지

 

 이 영화는 막 초입에 들어왔다 누구도 화면을 잘라버릴 수 없다 무릎담요의 길이는 늘어나지 않고 서로는 타고난 얼버무림으로 허허 털털 웃음을 흘린다

 

 

 

 

 

 

                                                           

 

 

 

 

 

 

아침에 대한 예의

 

                                                                                                양수덕

 

 

비둘기들이 보도블록에 풀어진 토사물을 먹고 있는 아침

햇빛이 끊어진 국수 가락들을 뾰족뾰족 건드리고 이어붙이고

국수 가락들이 다시 미끈해질 기회

 

지난 밤 취객이 던져 놓은

냄새의 신화는

맛보는 자의 신선한 독점물

 

그렇더라도,

엎질러진 울분의 흔적들

슬픔에 혼쭐나는 자가 피워 올리는 건더기 냄새

그의 주머니에 넘쳐났던 바람 먹은 소리들

기분 좋게 술 마신 뒤끝이라도 딸려 나올 수밖에 없는 난장판은

 

지난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

미운 놈 안쓰러운 놈 하나 목구멍에 걸리지 않는 냠냠

 

이 아침은 더없이 깨끗해야 한다고

비둘기는 못마땅하게 요리된 식사를 용하게도 냠냠

 

장화 신은 고양이는 오지 않아

분홍 맨발이 시큼하게 토사물에 젖고

 

끊어진 국수 가락들 앞에서 비로소 눈뜬 아침은

부리에 냠냠 노래 소리만 굴리고

고운 깃털을 한 줌 더 올리고

보랏빛 목덜미에 번지는 감사의 인사를 받고

 

>

사람이 밑 빠진 길로 내려가느라 옷깃을 세울 때

냄새 위에 없는 비둘기

냄새 아래 없는 비둘기

                                       

 

 

 

 

 

2009<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신발 신은 물고기><가벼운 집><유리 동물원><, 블랙박스><엄마>

산문집 <나는 빈둥거리고 싶다>

소설집 <그림쟁이 ㅂ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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