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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 외 9편 / 김동욱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10/16 [10:36] | 조회수 : 247

 

  © 시인뉴스 포엠



가을 산 9

 

                                   김동욱

 

 

뭉근한 둔덕을 돌아간다.

손길과 발길이 머물던 곳이라 가볍고 따스한 듯하다.

앞으로 옆으로 물기 머금은 붉고 노란 잎들이 눈에 든다.

그들은 침묵하다간 왁자지껄 웅성거리기도 한다.

엷디엷은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부산스레 날아오른다.

잎 사이로 먼발치 산기슭의 연노란 푸른 숲이 보이더니

이내 시선을 붙잡아 둔다.

그곳은 아련한 봄 초록과 그 깊은 여름 냄새를 담고 있으면서

언제라도 떨어져도 좋을 가을 잎 외침이 빼곡하다.

 

산길은 언제나 어디론가 이어져있다.

목탁 독경소리를 뒤로하고 만난 그 터엔 은행나무가 곱다.

봄 솜털 초록이 아니라도 맑은 창백함은

가슴을 물들이기엔 그만이다.

떠난 여름을 고운 마음으로 보내드린 후

그 아픔을 삭이고 삭여 저 고운 얼굴 창백한가 보다.

곱게 떨어지는 저 맑고도 엷은 미소

겨울 땅 망각을 꿈꾸는가 보다.

 

                     

 

벌 대 벌

—너는 영원을 찰나에 초개같이 던졌다

                                       김동욱

 

딱 한순간이었다

휘잉― 쉬잉― 엉키며

서로 안는 건지 틀어잡는 건지

모를 사이

한 마리가 2미터 허공에서

허우적 빙그르르 땅으로 나뒹군다

이내 몸이 스르르 오그라들더니

웅크리고는 끝이었다

 

그래, 너의 그 강열한 이빨

불꽃은하를 물어뜯었었지

황색몸통 두른 예닐곱 검은 고리들

예닐곱 우주를 둘둘 싣고 있었지

 

오늘 기꺼이 공중 활극 소용돌이 속으로

감연히 돌진해 너의 꽃다운 힘

창연히 쏟다가 님의 독침에

한 잎 꽃으로 떨어졌다니

 

님은 잠시 후 돌아와 그대 위를 세 번 돌더니

휘이 푸른 숲속으로 가버렸지

그대의 주검 앞에 선 나, 응고체凝固體였어

 

이윽고 뒤돌아보니 님 가신 숲 언저리엔

하염없는 황색 실루엣 바탕에

또렷한 검은 고리들 붕붕봉봉 하고 있었다                              

 

갈바람 

                             김동욱

 

창뜰에 촘촘히 깃들기도

휘감아 돌아들기도 하여

들풀 바아삭 말리다간,

제법 큰 도랑물

스치듯 움켜지고는

얼굴에 철벅

비비다간, 이내

이십 자 앞뒤 곳곳에

물수제비로 흩뿌린다

아우성 •••

 

바람 물 벼락 맞은 들풀, 들땅

어리둥절 멀뚱하더니,

금방 낭창낭창 덩실

 

가을 바람 찬 도랑물에

무슨 비밀이 있길래

오뉴월 처녀

치맛자락 올라가듯

들판엔 때 아닌 뜨거운 춤판일까    

 

 

오래된 이야기

                                 김동욱

 

둑 밑동을 파고들어 어둠을 보았죠

파고들어 흰색 모래 자갈 보았어요

 

소년은 소녀의 어둠을 쪼갰어요

두둑 씀바귀, 칼날을 들이켰죠

 

읍내 농약상회 여주인은 기억하죠

흑단 가슴 속 어둠을 가르는 빛의 날을

 

자갈하고 모래는 오래된 이야기 나눕니다

"우리는 바위였어, 그래, 바닷물이었어"

 

용구 아버지는 새엄마 나가시고

바닷물 없어 농약 실컷 드시고 가시옵고

 

 

 

 

 

 

 

 

 

 

 

 

 

 

 

종지 동자승 

                                  김동욱

                      

나흘 전 꽃 처자 살결 입은 나무 종지

결 고와 중 사형 깊은 고랑 파들었나

타드는 냉가슴 종지에 사무쳐서

 

소복한 분 냄새 행자를 사르더니

며칠째 발걸음 어디를 맴도는가

닦아내 쓸어내 사념을 달랠지니

 

꿈결에 고운 살 결결이 보일소냐

행주 마름으로 종지 골 쓸어내어

까만 고랑일랑 희도록 닦으리라

 

 

 

동안거

                                     김동욱

 

밤사이 눈 내린 고즈넉한 암자에

발자국 이어져 싸리문 여는 소리

봇짐 진 시주승 처마끝 바라보나

 

뒤주를 채워주고 빗자루 집어 들어

해우소 오가는 길 말끔히 쓸어낸 뒤

마루에 걸터앉아 동안거를 구도構圖한다

 

십여 년 가부좌로 까맣게 잊었건만

먼 먼 마을길에 님 그림자 어리거든

처마끝 그믐달로 사위어 사위리라

 

고대의 뼈

                              김동욱

 

낮을 받치는 구조물,

밤사이엔 내가 애착하는 꿈의 어깨를 괴는 받침,

오랜 동안 사막에 묻혀온 뼈대, 고대의 신전 서까래였다.

그 연원 알 길 없다.

다만, 뼈는 탈것 모양이라서 올라타고는 시간을 종횡하는게 용이하다.

하여, 더러는 지구와 태양이 모양 갖출 즈음, 그 미쁜 모양 지켜보던

혼 짝패들이 공간을 타고 다닌 구조물이 저 뼈대라는 이론도 있다.

꿈속에서는 내 양쪽 빗장뼈로 환치되어 날아오르는 것으로 미루어,

원래 용도는 나는 것과 연관된 듯하다.

바라보면 미덥고 어김없이 숨을 열어준다.

낮과 밤은 이 고대의 뼈가 뿜는 숲과 하늘로 채색되곤 한다.

꿈속에선 뼈의 문이 보이기도 하는데,

열고 들면 오동나무 뻗어 오른 정원에 보라 꽃 지천이다.

열 발짝 내디디며 나무기둥에 머릴 대고 꽃내음 맡으면

혼의 결 정밀하게 진동한다.

정원에는 발자국 소리, 속삭이는 소리도 들린다.

그 중에, "뼛속까지 정원"이라는 말이 듣기 좋다.

 

오늘은 문밖에서 밥 먹으라는 아내의 외침이

정원에서는 속삭임으로 치환된 듯하다.  

깨어, 쇄골을 점검하니 딱딱하다.

머쓱하게 나와서는 아내를 힐끗 보며

뼈 모양 밥알만큼은 정밀하게 씹는다.

 

무쇠팔

                                 김동욱

 

무쇠팔 마누라 오늘도 날아다닌다.

내 족적이 닿는 곳엔 어김없다.

사랑스런 주먹 왔다간 곳 그 자취 크다.

막내는 이제 고 2 되는데 큰애는 취업도 못했는데

저 마누라 가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막막했다.

병원에서 전화오길, "암 부위가 10센티쯤 되어서 일단 절제해야 하겠습니다."

저 여편네 나한테 와서 고생하다가 이제 나보다 먼저 가나 하는 생각은 잠시;

막내는 어쩌나, 저 놈들은 누가 수발드나...

웬걸, 퇴원하니 기가 살아서 자못 주먹 날린다.

안 맞아본 사람은 잘 모른다 그 사랑의 승화 맨주먹 맛을.

하루라도 주먹 맛 안보면 심리적 안정은 요원;

죽어 혼이 남는지, 어딜 가는지는 모르나

천수를 누리시게나 마누라.

아이들 독립할 때 까진 살아있어 주시구려.

혹여, 당신이 먼저 가면 창가에 꽃이 되어 주구려.

내 먼저 갈테요. 살아온 30년 고맙구려.

우리가족 꽃지해수욕장 백사장 갔을 때,

큰애 13살 작은애 4, 아이들 바라보오

참 예쁘고 듬직하구려.

그 후로는 가족사진이 없는 것은 나 때문이요.

내 다니던 직장에서 나왔기 때문임은

당신 가슴에 새겨져 있지요.

어렵게 이 자리에 있는 거 아니요.

그 날카로운 어퍼컷 날리는 것은 참 좋은 데,

허리 아래쪽은 당신 잘 모르는 고충이 있으니

돌려차기 할 때 조금만 살살 해주길 바라오.

 

 

마누라한테 오늘 며칠이냐고 묻자, ,

"눈깔 있으면 봐." 아내는 주로 간단명료하다.

눈깔로 확인해보니, 124, 설 사흘 전이다.

오늘은 아내가 유달리 힘이 쎄 보여서 좀 이상하다.

        

 

소묘

                               김동욱

 

광막한 모래밭에 소 한 마리 걸어와

구유에 목을 넣었다 빼고는 걸어간다

이어 직각 방향에서 말 한 마리 달려와

구유에 목을 넣었다 빼고는 달려간다

이어서 고래 한 마리 직각으로 날아와

구유에 몸을 넣었다 빼고는 날아간다

소가 돌아와 구유를 목에 걸고 걸어간다

말이 돌아와 중심 없는 중심으로 달려간다

고래가 돌아와 모래밭 중심에 구유가 된다

 

기억 속으로의 기차여행

                                     김동욱

 

그 산의 우묵한 곳 황토는 그대로 이리,

창가를 쓰는 평택뜰 너머 어스름 노을처럼

들을 스며 흐르는 오랜 물가에 물새들 얼룩지고,

등성을 달리던 소년의 가슴 속 녹아든 황토에

창가를 스치는 산야가 덧씌워 진다.

고대의 광경이 혼까지 속속 물들여 내생來의 길을 채색한다.

빠른 걸음도 느린 발길도 유년의 구릉을 밟는다.

그를 빨아들이던 무지개떡 부슬 황토,

그 기억은 뇌리의 뒤켠에 침잠해 있다가

반백년 지난 물상에 깊은 음영을 투사한다.

새소리와 씀바귀 표정이 논두렁 허벅지살 뚫어

저승의 입구 들녘에도 이미 꽃피고 있것다.

기차는 조치원을 떠나 천안을 핥고는 평택의

편편 대지를 뚫어 수원의 암반지하수 속으로 침강한다.

 

 

 

 

 

 

 

 

 

 

 

 

 

 

김동욱(金東旭): 2016년 계간 《열린시학》 등단. 문학박사(영문학). 공간시낭독회 상임시인. 한국시를 영어로 번역작업 중 (번역시집으로 유태승 시인의 시선집을 번역한 『The Scent of Golden Pines from Maroomoteh』가 있음). 현재 월간시집 《공간시낭독회》에 “김동욱의 <우리시 영어번역>”을 연재 중. dwk53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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