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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이 내린 겨울 숲이 여자로 보일 때 외 9편 / 김동원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11/06 [10:18] | 조회수 : 359

 

▲     ©시인뉴스 포엠

 

 

흰 눈이 내린 겨울 숲이 여자로 보일 때

 

김동원

 

 

   흰 눈이 내린 겨울 숲이 여자로 보이거나, 하나 둘 켜지는 저녁 도시 불빛이 그 여자들의 어깨 둘레로 보일 때, 붉게 물든 저녁놀 부드럽게 산정에 입맞출 때, 난 으레히 습관처럼 지녀 온 버릇이 있다. 그것은 한 편의 시를 펼쳐 보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속 깊이 움직이게 한 한 줄의 아름다운 시구를 찾아내, 방안을 서성대며 조용히 혼자 소리내어 읊조리는 기분은참 묘한 것이다. 이 소리들은 나직이 방안 귀를 따라 돌며 천장으로 올라갔다 내려온다. 마치, 누군가 이 시어들에 맞춰 피아노의 선율을 소리내어 들려주는 것처럼. 그러면 놀란 사방의 벽들만이 이 우스운 짓을 왜 하는지 몰라, 킥킥킥 돌아서서 비웃고 있는 것이다. 아무러면 어떤가. 어차피 인생은 제 스스로 힘껏 움직이다 가는 것. 저 창 밖 빈 겨울 나무처럼, 추운 모퉁이 한켠에 비켜서 있다가, 봄이 오면 제일 먼저 뛰어나가 푸른 잎사귀의 물관을 타고 올라서, 하늘 위 흐르는 흰구름의 가슴을 뭉클 만져 보면 된다.

 

 

 

 

 

깍지

 

 

   내 손을 나꿔 챈 그녀에게 아내가 있어 안 된다고 했다. 곁에 벗은 예쁜 속옷은 유채 꽃빛이었다. 등 뒤에서 그녀가 오늘 밤만이라도 하늘 물속을 헤엄쳐, 저 샛별까지 갈 수 없냐고 내 허리를 꽉 깍지로 껴안았지만, 나는 두 자식이 있어 진짜, 안 된다고 뿌리쳤다.

 

 

   돌아보지 말걸, 꿈속 그녀는 알몸으로 초승달 위에 웅크려 울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 밤부터 꿈만 꾸면, 구름 위로 떠오르는 달에게 올라타는 연습을 한다. 제멋대로 엉켜버린 두 인연이 천년의 허공 속에 헛돌지라도, 미친 듯 미친 듯 그녀를 위해, 나는 밤마다 꿈속에서 달을 타는 연습을 한다.

 

 

 

 

 

오십천

 

 

   어릴 적 난 홀어머니와 함께, 강가 백로 외발로 선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꽃구경을 갔다 봄 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개울이 생기던, 그 화사한 복사꽃을 처음 보았다 젊은 내 어머니처럼 향기도 곱던 그 복사꽃이 어찌나 좋던지, 그만 깜박 홀려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갓 서른이 넘은 어머닌 울고 계셨다 내 작은 손을 꼭 쥔 채, 부르르 부르르 떨고 계셨다 그 한낮의 막막한 꽃빛의 어지러움, 난 그 후로 꽃을 만지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이 왔다

 

 

   어느새 몸은 바뀌고, 그 옛날 쪽빛 하늘 위엔 흰구름덩이만 서서, 과수원 언덕을 내려다본다 새로 벙근 꽃가지 사이로 한껏 신나 뛰어다니는 저 애들과 아내를, 마치 꿈꾸듯 내려다본다

 

 

*오십천은 청송 주왕산에서 발원해 영덕읍을 가로질러 강구항으로 흘러듬.

 

 

 

 

처녀와 바다

 

시간의 저편 너머에 묻힌 h에게

 

내 마음속엔 언제나 해당화 꽃처럼 붉게 멈춰 버린

 

처녀의 무덤이 산답니다

 

저 바닷가 물밑에 가라앉아

 

진주가 돼버린 처녀랍니다

 

처녀는 곱고 수줍고 아름다운 머릿결이 물풀 같았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운명처럼 만나

 

아침마다 해가 뜨기 전 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바닷물 위 걸어서

 

해를 만지러 가곤 했습니다

 

해는 출렁이는 우리의 운명 같아

 

잡힐 듯 잡힐 듯 손길에서 멀어졌습니다

 

나는 언제나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처녀는 그 겨울 바다 속 이 잠기고

 

영원히 바닥에 잠겨서 물풀에 가려졌습니다

 

그 후 난, 문득문득 깊은 밤 혼자 잠에서 깨어나 웁니다

 

그토록 그리운 처녀는, 내 바다 위 어디에도 없고

 

백사장 흰 모래알 속에나 등대 불빛 밑으로

 

찾고 또 찾아 헤맸지만,

 

잃어버린 바닷길은 그대로 천 길 물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따금 처녀는 그 처녀는, 저 먼 시간의 저편 너머 수평선에서

 

붉은 해를 타고 올라와,

 

그 새벽 깨어나 우는 내 서러운 등을 두 손길로 따뜻이 어루만져 줍니다

 

 

 

 

 

무중력

 

오너라, 내 가슴 속에, 매정하고 귀먹은 사람아

 

(망각의 강중에서보들레르)

 

 

끝내 저렇게 내린 흰 눈 위에 길이 지워지겠구나

 

 

아들이 올 텐데

 

 

어둠은 자꾸 병원 격자창에 차갑게 들러붙는데

 

 

입술로 흘러든 망각은 물이 찼는데

 

 

아들은 꼭 온다고 했는데,

 

 

쉴 새 없이 웅얼거리다 졸아 붙은 치매 입술

 

 

수북 빠진 머리칼 곁에 헝클어진 늙은 의자 한 개

 

 

아들이 올 텐데, 아들은 꼭 온다고 했는데

 

 

함몰된 기억 뒤쪽엔

 

 

뼈만 앙상한 등 받침만 남은 채

 

 

복도 계단 밑 웅크린 여자의 눈 풀린 동공 속엔

 

 

밤새 녹아내린 흰 눈이 또 길을 지우겠구나

 

 

*참고 : 한 칸씩 띄어 논 것은 꼭 그대로 해 주십시오. (11연입니다.)

 

 

 

 

 

 

보름달

 

시선 이백의월하독작月下獨酌에 답하여

 

 

여자 엉덩이만한 둥근 보름달이 떴다

 

내 오늘, 법이산 위에서 그 엉덩이 밟고 올라

 

-욱 구름장 위로 고개를 내밀면,

 

껄껄껄 시선 이백이

 

하늘 위에서 손을 뻗는다

 

이렇게 우리는 초저녁 북극성에 걸터앉아

 

술상이 나오기 전

 

한 수 시를 짓고,

 

지구로 떨어지는 별똥을 바라보며

 

눈앞에 귀찮게 아른거리는 우주선 파리채로 후리고,

 

참 고운 몸매의 샛별이

 

웃는 듯 ()을 받쳐들고 나오면, 안주론

 

별자리 황소를 굽고

 

술은 북두칠성 국자로 알콜 성단에서 뜨고,

 

어린것들은 조랑말자리 별에 태워

 

성도를 한바퀴 천천히

 

돌게 한다

 

그렇게 한밤중 거나하게 취하면,

 

우리 둘은 어깨를 끼고

 

은하수 강가에 배를 띄우는데,

 

이백은, 뱃머리서 월하독작을 읊고

 

, 취흥에 겨워, 저 이쁜 달 엉덩이를 힘껏

 

'철썩' 때린다

 

그러면, "으응" 하고 잠 덜 깬

 

웬 여자 볼멘소리가

 

방 한구석에 자늑자늑하다

 

 

 

 

 

거짓말

 

 

1

 

비는 퍼붓고, 여름 장대비는 퍼붓고,

 

퀴퀴한 지린 냄새 음습한 골방.

 

부들 부들 부들

 

격렬하게

 

엄마는 내 손 찾고 있었다.

 

아아아악, 아아아악, 단말마,

 

비명 소리 났다.

 

젊은 엄마 손아귀 움켜쥔 내 작은 오른손

 

마구마구 버둥치며 빼내려 해도

 

빠지지 않던 손의 공포.

 

놀라 달려온 동네 어른들

 

죽은 엄마 손가락 부러뜨려 빼내 주었다.

 

흐늘흐늘 늘어진 손가락 보며,

 

밤새 죽은 엄마 관옆에 붙어 있었다.

 

 

 

2

 

차마, 발길 안 떨어졌으리.

 

11살 어린 날 두고 차마, 숨 안 떨어졌으리.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송천강 흘러흘러 밤바다 안기는데,

 

천지간 내 엄마 묻어 줄 사람도 땅도 없어,

 

광목 한 필 죽은 엄마 둘둘 말아 리어카에 실었다.

 

방문 앞 기둥, 매달린 석유병 들고,

 

한밤중 관어대 뒷산 공터 엄마를 내렸다.

 

내 나이 그때 11,

 

나무껍질 모아 죽은 엄마 곁에 모아

 

기름 붓고 성냥불 그었다.

 

~, 불길 치솟아, 너울너울 불길 치솟아,

 

어머니 마지막 가실 모습 차마 볼 수 없어

 

한달음 언덕을 뛰어 내려온 난,

 

한 점 불빛 없는 외딴집 혼자 남아

 

죽은 엄마 베개 끌어안고 엉엉 무서웠다.

 

 

 

 

3

 

그때 내 나이 11.

 

온밤 꼬박 뜬눈 새우고

 

그 새벽 어머니 마지막 수습하려고

 

관어대 언덕으로 살금살금 되올라갔다.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뼈만 남아야 할 어머닌,

 

빈 공터 오도카니 홀로 앉아 계셨다.

 

나무는 다 타고

 

아랫도리만 잃은 채,

 

젊은 어머닌 반쯤 불탄 모습으로

 

날 보고 계셨다.

 

번개 꽂힌 듯, 번개 꽂힌 듯

 

, , , , 턱 굳었다.

 

나무 다시 긁어모아 반쪽 어머니 또 눕혔다.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그렁그렁

 

내 두 눈 그득, 불 고였다.

 

 

*손경찬의 수필 거짓말을 읽고.

 

 

 

 

그 애의 손

 

 

복사꽃 그림자 두 손은 돌에 묶인 채

 

 

연못 속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꽂힌 칼끝에 고인 핏물이 번질 때

 

 

찢긴 꽃잎은 눈이 풀리어

 

 

물 밖 세상의 노을을 보고 있었지만,

 

 

간밤 물속 잠긴 구름이 검은 머리카락을

 

 

건져 올리는 동안,

 

 

그 복사꽃 그림자 엄마는

 

 

물풀 속 거꾸로 목이 감긴 채

 

 

울컥울컥 분홍 피를 내뱉고 있었다

 

 

 

 

귓속 물이 차

 

 

 

띠풀은 귀를 허공에 넣고

 

비가 빗소리 몰고 오는 짓을 다 듣고 있었다

 

그 아랫도리 벌쭘한 새 무덤 위에서

 

참 희한도 하지

 

비가 빗소리 몰고 가는 짓을 다 알고나 있었다는 듯

 

띠풀은 귓속 물이 차

 

자꾸 자꾸 왼쪽 귀를 털고 있었다

 

 

 

 

 

국화꽃밭 문 옆엔 가을비가 울고 있었어요

 

 

국화꽃밭 문 옆엔 가을비가 울고 있었어요

 

빗물이 하늘을 물고 내려와

 

꽃밭에 흘러내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저녁 앞발을 괸 채 죽어있던 어미 고양이

 

새끼는 빗속에 젖어 날 쳐다보고 있었는데,

 

국화 꽃밭 속엔 어미가 어둠 속 웅크리고 죽어 있었어요

  

*참고 : 한 칸씩 띄어 논 것은 꼭 그대로 해 주십시오. (11연입니다.)

 

 

 

 

 

 

김동원 / 약력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문학세계로 등단. 시집깍지외 다수.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태양 셰프출간. 시 에세이집,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시 대담 평론집저녁의 편저. 시선집고흐의 시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8년 제10회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문장21). 2018년 대구문학상 수상. 2020년 계간지문장21봄호 평론 당선. 2020년 제4회 영남문문학상 수상.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 한국시인협회원.텃밭시인학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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