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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줄 외1편 / 홍경나

정유진기자 | 입력 : 2020/11/19 [10:59] | 조회수 : 168

 

  © 시인뉴스 포엠



 

이음줄                                     홍경나

 

 

보드랍게 접었다가 풀리는 담장

더 보드랍게 펼쳤다가 구부리는 고양이

담장 아래 줄무늬고양이

 

툭 뻗는 자벌레

한껏 끌어당겼다가 까짓것 밀며가는 자벌레

초록에서 초록으로 옮아가는 초록 자벌레

 

지하철 칸과 칸 사이 신도림역과 대림역 사이

떠도는 이런저런 궁리 밖으로 떠도는

늘 그곳, 낡고 낡은 강 같은 평화

 

남자가 긋는 한 획

배웅하는 체온 한 켤레, 뭉근한

 

 

 

 

 

 

 

 

 

 

 

 

 

 

 

 

 

 

 

  벽장                                        홍경나

 

 

  쌍여닫이문에 묵매도가 붙어 있던 상할머니의 벽장 속에는

 

  새실〔辭說〕같은 흰 눈이 내리는 삼동 노고노골 화롯불에 구운 가래떡을 찍어 먹던 조청과 명절날 쓰고 남은 상긋한 사과며 곶감이며 약과 도라지정과 연근정과; 외할아버지가 고령장에 나갈 때마다 품고 오던 상할머니의 오랜 속증을 다스리는 까스활명수 설탕이 희게 범벅된 박하사탕; 외할머니가 밤새 백자 등잔불 아래서 두 무릎에 무명실타래를 걸고 두툼하게 감은 붉은 자개사패(絲覇) 오방색 감투할미 머리카락을 말아 넣은 목단자수 바늘겨레와; 엄마와 이모 외삼촌들의 탯줄을 끊었다는 시커먼 무쇠교두각시 참죽나무 자가 담긴 팔각반짇고리; 그 옆엔 젊어서 근동 사돈지를 도맡아 썼다는 상할머니의 두루마리 한지와 구운몽 사씨남정기 장화홍련전 옥단춘전 오유란전 같은 언문(諺文) 이야기책; 내 손이 안 닿는 맨 위 칸 안팎으로 바른 쪽물장지가 손때로 반질거리는 채롱에는 기미년에 돌아가셨다는 상할아버지의 생원백패와 단계벼루 청화백자 무릎연적 삼동물림 백통연죽과 壽福 은입사 연초합; ‘제성(帝城)을 두루 돌아다니니 천 개의 문이 열린다’‘장안에 삼월이 돌아온 봄빛이 마치 비단과 같다’ 권솔(眷率)의 신수점을 보던 토정비결; 새벽마다 예경을 올리던 명황빛 비단보에 싼 약사여래호신불과 보리수염주 손수 사경했다는 불경이 쟁여 있었는데

 

  가끔 쌍림 큰이모할머니가 상할머니를 모셔갈 때면 나는 박하사탕을 꺼내 먹으려고 벽장 앞에 할머니 베개와 내 베개를 포개놓고 올라서 아등바등 까치발을 했다

 

 

 

 

 

 

약력 및 주소

 

 

이름:  홍경나

 

약력:  <심상> 등단 (200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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