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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신앙/ 유진

전선용 시인의 그림으로 읽는 詩

전선용시인 | 입력 : 2020/12/16 [10:35] | 조회수 : 395

 

  © 시인뉴스 포엠



다국적 신앙/ 유진

 

 

지금은 익명의 시간

그대는 편도를 먹고 나는 아몬드를 먹어요

 

장미과든 핵과든 골똘하지 말아요

좁고 어두운 그늘에선

헛것들 썩는 냄새가 나요

 

살가운 이들은 저마다 천국을 만들고 있군요

아론의 지팡이가 편도의 단맛과 쓴맛을 결정해도

수만별 이름 없이 빛나네요

 

지중해의 겨울잠 깨우는 편도꽃

잘 익은 열매가 스스로

껍질을 젖히고 나오기를 기다려요

갈라진 뒤편 씨앗이 씨방까지 내어줄 때까지

함부로 따지 마세요

 

우리는 글로벌리즘

그대는 편도를 먹고 나는 아몬드를 먹어요

 

 

유진 시인의 시집 『척』중에서.

 

 

사족)

 

제목이 참 재미있다. <다국적 신앙> 이라니, 각자 믿는 의지대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각박한 삶을 표현해낸 이 시편은 독자가 상상할 여지를 많이 남겨 두어서 흥미롭기까지 하다. 비유의 발상이 그것인데, 편도, 아몬드, 장미과, 핵과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신앙이라 함은, 믿고 의지하는 자기중심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사기시대가 그런 것인데, 각자의 의지와 판단대로 살아가는 혼돈의 시대를 말함이다. 신앙적 사고가 원심력을 일으켜 자기합리화를 만들고 그것을 추종하는 세력과 연대하여 권력을 이룬다. 그래서 시인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헛것들’에 대한 시인의 눈초리는 부정적 빛을 발하면서 편을 만들어가는 속물들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 ‘저마다 천국’을 만드는 붕당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온 인간의 속물근성이다. 이런 면은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군단을 이루며 몰려다니는 모리배 같은 문단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는 장면을 성경에서 보게 되는데 시인은 이 지팡이를 통해, 옳고 그름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인정하고 배려해주는 방법을 선택한다. 다시 말해 유행가 가사처럼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잘 난 놈은 잘 난 대로 사는 방식이다.

 

 

한 편의 시로 현재의 시대상을 일갈하고 있는 시인은, 이 시편을 읽는 우리에게 선택적 연대냐, 아니면 절대적 동질감이냐를 묻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것에 대한 신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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