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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의 얼음띠 같은 영혼”, 천서봉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입력 : 2020/12/22 [20:51] | 조회수 : 236

 

  © 시인뉴스 포엠



〔문단소식〕“목성의 얼음띠 같은 영혼”, 천서봉 시인과의 인터뷰

 

 

 영혼에 관해 말할 때, 우린 자주 발목을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 발목이 사라져간 자명한    어제를 이제 상징이라 부르겠습니다 / 어디선가 물이 끓는데, 돌고 도는 목성의 얼음띠     같은 영혼들 / 낯선 곳에서 잠을 깨는 일은 소멸에 가까워서 아름다웠습니다 / 문턱을 넘   지 못하는 생각은 무너지고 나서도 다시 무너지겠죠 / 깊어지는 모든 것은 철학이 될 테    고 자정은 비밀과 닮아갑니다

 

                                           시인의 시「발목이 없는 사람」에서

 

 

 © 시인뉴스 포엠

 

 

 시인의 대표시를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주방에 부착된 라디오 주파수는 항상 FM  101.9Mhz에 맞추어져 있다.(나는 라디오로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클래식, 쇼팽이든 모차르트든 바흐든 라흐마니노프든, 그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서재의 넓은 창밖으로 정자항의 노랗고 빨갛고 파란(보라에 가까운) 불빛이 황홀하게 반짝였고, 문득 나는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

 

 2018년 유월 어느 날,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몹시 더운 날이었고 나는 뇌동맥류로 머리를 여는 대수술을 받고 부모님 댁에서 요양 중이었다. 첫 시집을 축하하고 건필을 기원한다는, 시인의 문자였다. 그 후 유려한 건축물을 프로필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시인과 카카오 톡에서 나는 함께 거주하게 되었다. 시인의 직업이 건축사라는 것, 시인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왠지 낯선 직함의 시인, 그리고 3년의 세월을 지나 나는 시인에게 인터뷰 요청 전화를 드렸다. 선뜻 아, 그 “ㅇㅇㅇ”시집! 그의 첫마디였다. 그리고 흔쾌히 시인은 인터뷰를 허락했다.

 

 

 누군가가 내가 몇 년 전 출간한 시집을 기억해주는 것, 더구나 시집의 제목까지 정확히 기억해주는 것, 정말 고마운 일이다. 시인은 머리가 비상하여 남다른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나의 졸 시집을 잊지 않고 소환해내는 시인에게 나는 나도 몰래 꾸벅 절 하였다. 그것은 당시의 나의 고통과 나의 그리움과 나의 외로움과 방황, 그 모든 것인 어둠과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그리고 나라는 인간을 완전히 긍정한다는 것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한 존재를 위로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 시인의 시세계를 탐구하는 일은 언제나 매력적인 일이다. 나는 시인의 시를 최대한 잘 조명하여 독자들이 시인의 시에 웃고 울며 시인의 아름다움에 탄복하게 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책무다. 나는 잘할 수 있을까? 흰 눈 펑펑 쏟아져 내리던 날, 먼 길을 걷고 걸어 내게 장미 한 송이 건네던 옛 애인을 기억한다. 그런 정성이라면 나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만난 시인에게 하얀 눈을 닮은 목화 꽃 한 송이 선사하는 마음으로 그와 함께 낯선 눈밭을 또각또각 걸어가 보기로 했다.

 

 

 

《대표시》

 

 

발목이 없는 사람

 

 

영혼에 관해 말할 때, 우린 자주 발목을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발목이 사라져간 자명한 어제를 이제 상징이라 부르겠습니다  

 

어디선가 물이 끓는데, 돌고 도는 목성의 얼음띠 같은 영혼들

 

낯선 곳에서 잠을 깨는 일은 소멸에 가까워서 아름다웠습니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생각은 무너지고 나서도 다시 무너지겠죠

 

깊어지는 모든 것은 철학이 될 테고 자정은 비밀과 닮아갑니다

 

골목이 소매와 닮았습니다 점점 더 소문에 가까워지는 우리들

 

알아보겠습니까, 이제 물은 끓어오르다 못해 넘치고 있습니다

 

 

당신을 설득할 생각이 없는 나는 당신 병이나 함께 앓았으면 했습니다

 

             (『시인동네 』2012년 겨울호 )

 

 

• 안녕하세요. 시인님. 잘 지내셨죠!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웃음) 3년 전 제가 200분 넘는 시인님들께 시집을 보냈었어요. 그 뒤 제게 격려의 문자를 보내신 분이 네 분 계셨는데, 신달자 선생님, 이승하 시인님, 박완호 시인님, 그리고 시인님이셨어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 올리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시인님의 이미지는 고독하고 왠지 모를 아련한 슬픔을 간직하신 분이셨어요. 이렇게 실제로 뵙게 되니 제가 사람을 참 잘 본다, 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제가 생각했던 분위기의 모습 그대로세요. 그리고 검정색이 시인님에게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현우 시인의 시 「멍」에 등장하는 천사 같은 느낌, 다른 점이 있다면 검정색이 잘 어울리는 천사, 그래요.“베를린 천사의 시”에 등장하는 그 천사 같은 모습이세요. 제가 비약이 좀 심하고 두서가 없어요.(웃음) 이해바랍니다. 선생님의 대표시 중 한 편인 「발목이 없는 사람」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름다워서요. 특히 마지막 행(“당신을 설득할 생각이 없는 나는 당신 병이나 함께 앓았으면 했습니다”)에 이르러서는 저도 함께 이 세상의 모든 병을 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의“목성의 얼음띠 같은 영혼”에 대해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 목성에 얼음띠가 존재하는 일은 그곳에서도 어떤 흐름이 있는 것이겠지요. 하나하나의 얼음알갱이가 모여서 결국 어떤 띠를 만드는 것일 테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사람 하나하나가 소중한데 우리는 점점 소문에 가까운 얼음띠나 유령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을 설득할 생각이 없는 나는 당신 병이나 함께 앓았으면 했습니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그렇게 오해되는 인간사에서 내가 진정으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미였습니다.

 

 

《대표시》

 

 

나비 운용법

 

#a

 

홀로 나는 부끄러워 몇 번이고 얼굴을 감싸 쥐다 무릎 사이에 귀를 묻다 생각한다 죽고 싶다……, 이것은 다시 사춘思春인가

 

어떤 사랑도 아름답지 않고 어떤 중독도 마침내 시들해질 때, 나는 편견이 없는 연대의 한 마리 나비가 된다 : 그것은 두 치 정도의 생물로 마치 넓은 소매를 펄럭이듯 하늘에서 움직이는……, 이라고 목인에 의해 처음 기록된다 공중에서 누구도 살지 않을 때 나는 기괴한 음악이거나 오염되지 않은 공포다 영어囹에 든 채 당신에게 가거나 혹은 가지 못한다 가는 일이 부끄러워 못 가고 가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 못 가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는 부끄러움으로 마침내 죽고 싶다고…… 나는 여러 번 처음으로 자살한 어떤 연대의 나비가 된다 : 그것의 불가해한 무늬는 문자를 닮았으나 문자 아니고 마치 소리를 붓으로 그려놓은 듯한……, 이라고 당신에게 음각된다

 

 

페이지가 한 번 펄럭일 때마다 백년이 흘러갔다 두 귀는 날개의 퇴행이므로 바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부끄러울 때마다 전생의 무늬가 붉게 떠올라 나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물론 나비는 아무런 죄가 없다

 

 

#b

 

나비는 죄가 없으나

침묵과 놀며 창문을 존경하고 요절을 동경하다가

버스 한 번 타면 갈 수 있던 당신에게 못간 시간을

이제 나비라고 불러야겠다

 

호명하기 어려워 꼭 쥐고 있던 성대와

붙잡을 수 없어 귀가하던 손금의 불안한 무늬조차

이제는 나비라고 하자 나비라 부르면

왼편에서 당신의 월요일이 시작되고

동시에 오른편에서 나의 일요일이 저물 것이므로

갑상甲狀의 아이들이 돌멩이처럼 졸고 있는 사원과

슬픔으로 부풀어가는 사거리 가로등 사이에서

나는 저울 같은 잠으로 오래 경련할 것이니

 

내가 당신에게 못 가던 발작의 시간들을

간단하게 나비라 쓰자

봄의 이곽耳郭을 떠도는 추억의 고요를 나비라 읽자

용서는 바라지도 않을 이번 생엔

영원히 마음의 정처를 얻지 못할 것이므로

 

그러니 나비라 부르자 당신과 나 사이

창궐하던 층계를, 찬란히 피던 실패의 전부를

 

           (『문학과 의식』2013년 봄호 )

 

 

• 시 「나비 운용법」은 참 아프게 읽힙니다. “어떤 사랑도 아름답지 않고 어떤 중독도 마침내 시들해질 때, 나는 편견이 없는 연대의 한 마리 나비가 된다”, “나비는 죄가 없으나 / 침묵과 놀며 창문을 존경하고 요절을 동경하다가 / 버스 한 번 타면 갈 수 있던 당신에게 못간 시간을 / 이제 나비라고 불러야겠다”, “내가 당신에게 못 가던 발작의 시간들을 / 간단하게 나비라 쓰자”, “그러니 나비라 부르자 당신과 나 사이 / 창궐하던 층계를, 찬란히 피던 실패의 전부를”

 

 

  감히 여쭙습니다. 이제는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내가 당신에게 못 가던 발작의 시간들을”, “당신과 나 사이 / 창궐하던 층계를, 찬란히 피던 실패의 전부를”.

 

• 솔직히 이 시를 발표한 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좀 의외였어요, 개인적으로는 감정의 과잉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발표하기 직전까지 했었기 때문이었거든요. 저의 ‘의심’이 아마 독자들에게는 ‘솔직’으로 읽혔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저는 ‘발작’의 시간을 겪고 있고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고 그때처럼 후회의 시간을 만들지 않는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되지 싶어요. 단 비틀거리며 날고 있는 나비가 대체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인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거듭 나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져야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대표시》

 

 

목요일 혹은 고등어

 

 

-가령, 사람만한 고등어 두 마리가 카페에 마주 앉아있는 그런 풍경,

사람들은 그 신기한 풍경에 놀라 사진을 찍어대고

둘은 아랑곳없이 서로의 대화를 이어가는, 그런 목요일

 

 

몸에서 물이 흘러 바닥을 적시듯 그렇게 만납시다 사탕이 잔뜩 묻은 궐련을 쥐고

 

수요일은 이르고 금요일은 조금 늦고, 그러니 목요일쯤 만납시다 새벽이 고인 사발을 들고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우리가 너무 늙어있을 터이니, 그러니 목요일쯤 만납시다

 

어제까지의 등푸른 이별 이야기를 나누고 희롱 받은 혀와 살 몇 점을 술잔 두어 개에 나누어 담게

 

반쯤 마시고 또 반쯤은 거기 남겨둘 수 있게, 추분이나 동지 같은 근심의 귀를 이제 열어두게

 

 

수요일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기적에 대해, 그건 거의 마법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의뭉 떨게

 

그렇게 우리 목요일쯤 만납시다 사랑이 아니었거나 혹은 사람이 아니었거나 그러나

 

사랑이거나 사람이어도 괜찮을 목요일에, 마치 월요일인 것처럼, 아니 일요일의 얼굴로

 

흘러내린 표정이 바닥에서 말라가듯, 유통기한이 딱 목요일인 쓸쓸한 통조림처럼 우리,

 

               (『 시인세계 』2012년 겨울호 )

 

 

 

• 이 시는 언젠가 감상한 적이 있는 명화가 떠오릅니다. “가령, 사람만한 고등어 두 마리가 카페에 마주 앉아있는 그런 풍경”의 그림을 본 듯도 합니다. 꿈속에서 보았을까요?(웃음) 저도 직장생활 할 때에 목요일을 좋아했었습니다. “수요일은 이르고 금요일은 조금 늦고”,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우리가 너무 늙어있을 터이니”, 그래요. 목요일은 어리지도 않고 너무 늙지도 않은 시간이에요. 어떤 기다림과 설레임이 있는 시간이죠. 목요일은 아직까진 살아서 펄떡이는 고등어의 시간이기도 하고, “수요일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기적에 대해, 그건 거의 마법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의뭉 떨”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딱 목요일인 쓸쓸한 통조림처럼”에 이르러서는 매일 매일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는, 이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비애가 느껴집니다. 시인님께선 실제로 어떤 요일을 제일 좋아하시는지요? 그리고 이 시의 제목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요?

 

• 참고로 저는 금요일을 가장 좋아합니다.(웃음) 목요일과 고등어는 병치할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 시의 제목이 궁금하셨던 모양입니다. 가령 ‘목요일 혹은 일요일’ 이거나 ‘고등어 혹은 갈치’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죠. 목요일은 우리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날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성격이 급하다고 알려진 고등어는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격하게 말하자면 고등어는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이죠. 그렇게 본다면 ‘목요일’은 우리의 이상에서 너무 멀리 있고 ‘고등어’는 너무 가깝죠. 어느 것 하나가 어느 날 문득 우리에게 다가와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요일 혹은 고등어’라는 제목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어느 목요일에 비로소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사람의 얼굴이 되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운 습격

 

 

파편破片처럼 흩어지네, 사람들

한여름 처마 밑에 고드름으로 박히네. 뚝뚝,

머리카락 끝에서 별이 떨어지네.

흰 비둘기 신호탄처럼 날아오르면

지상엔 금세 팬 웅덩이 몇 개 징검다리를 만드네.

철모도 없이, 사내 하나 용감하게 뛰어가네.

대책 없는 시가전市街戰 속엔 총알도 원두막도 그리운 도 없네.

마음 골라 디딜 부드러운 폐허뿐이네.

 

빵 냄새를 길어 올리던 저녁이

불빛 아래 무장해제 되네. 사람들,

거기 일렬의 문장처럼 서서 처형되네.

교과서 깊이 접어 둔 계집애 하나 반듯하게 피었다

지면 사랑아, 모든 첫사랑은

아름다운 패배였을까.

나는 홀로 건너가는 殘兵처럼 남아,

빵집 앞 사거리 침묵이 침묵을 호명하는 낮은 소리 듣네.

어둠이 빵을 굽고 그리움 외등처럼 부푸네.  

 

소나기의 습격을, 누구도 피할 수 없네.

 

          (2005년『작가세계』겨울호 등단작품)

 

 

2005『작가세계』겨울호로 등단하셨습니다. 그리움이란 소나기의 습격은, 사랑이란 소나기의 습격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시인님은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어떤 학생이었으며 어떤 청년이었을까요? 시란 소나기는 언제 시인님을 습격하였을까요?

 

• 저는 무척 활발한 모범생이었습니다.(웃음) 학교에서 탑을 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사실 제 미래는 그렇게 순조로울 줄만 알았어요. 하지만 재수, 삼수를 겪고서도 제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서 저는 극단적으로 변해버렸어요. 활발하던 성격은 내성적으로 바뀌었고 무엇에도 쉽게 재미를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두웠던 이십대를 보낸 것 같아요. 시를 처음 쓴 것이 서른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른다섯에 등단을 했죠. 저는 아직도 제가 시를 쓰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나무 호텔

 

 

그러므로 나는 오늘 지루한 사막을 가득 메운 모래가 아니다

 

 

백자의 비명, 귀가 자라 작년의 소리를 듣는 나는 그러나 로비가 아니다

 

잘 지내느냐고, 차마 물어볼 수 없는 낙엽의 손끝은 나이테가 아니다

 

객실은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둔 무기력이 아니며, 혹은 끝없이 자라나는 허공도 아니다

 

일단 새들은 내가 아니다 바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심정으로 나는

 

나무 꼭대기에 걸린 단 하나의 죄에 대해 읍소했지만, 사실 그것도 는 아니었다

 

그러나 저기서 하룻밤 묵어가는 별이 미쳐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므로

 

너무 작아서 너에게 가 닿지 못한 내 목소리가 내일의 모래는 아니다

 

나무 호텔은 나무도 아니고 호텔도 아니다 아닌 것들의 밤이 넓고 유순하다

 

     (계간『시작』2017년 겨울호,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19 올해의 좋은 시 수상작품)

 

 

 

파한(破閑)

 

 

마음을 씻고 새벽 옆에 누우면 아 가려워, 귀에서 꽃들이 피어나곤 했다

 

그림자가 사라질까 그늘을 피해 걸을 때 우리는 어느새 여럿이 걷고 있었다

 

경력에 대해 물어봤다면 나는 호주머니 속에서 무리의 안개를 꺼내 보였을 텐데

 

한번도 보지 못한 계절을 웃음이라고 말하며 너는 떠나가고 있다

 

자고 나면 손가락에 손가락이 붙어 자랄 거야 선인장은 톡톡 쏘며 말하고

 

귀에서 떨어진 꽃잎의 글귀들을 읽어내느라 내 몸은 아직 前生에 머물고 있다

 

이 한가로운 산책이 아름다운 것은 거듭 이별을 고할 줄 아는 입술 때문이다

 

                  (계간 『문학선』2017년 겨울호)

 

 

 

• 주부가 식탁을 차리는 일, 발코니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꽃 한 송이 피워내는 일, 일터에서 땀 흘리며 고군분투하는 일, 밤을 새워가며 시 한 편 쓰는 일 등, 이 모든 것이 기반을 어떻게 튼튼히 다지고 골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건축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축과 문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인님께서 생각하시는 건축과 문학의 상관관계에 대해 들려주실까요?

 

• 사실 제가 건축사이다 보니 건축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고요 실제로도 문학지에 여러 번 그러한 글들을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 시도 짓고 건물도 짓는 것이지요. 그렇게 유비적인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무척 닮아있음은 명약관화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건축은 건축이고 문학은 문학이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지금도 문학과 건축은 어딘가에서 살을 섞고 있을 것이고 제 몸 어딘가 에서도 건축과 문학이 서로 악수를 하거나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조금 더 겸손해지자면 아직 모르겠다고 쓰고 싶습니다. 제가 일흔쯤 되면 그런 책 한권쯤 내고 싶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A라는 친구와 B라는 친구가 서로 사귀는데 C인 제가 그 둘 모두의 친구라고해서 그들의 잠자리가 어떤지 알 수는 없지 싶어요. 낮에는 건축을 하고 밤에는 시를 씁니다. 당분간 그냥 그렇게만 살고 싶습니다.

 

 

 

 

고구마라는 별이

 

 

어느 날 고구마라는 별이 우리 집 가장 가까운 곳을 스치고

 

네모난 집만 그리던 나는 어느 날 네모난 집이 그만 싫어지고

 

구근처럼 골목골목 헤집으며 저녁이 집으로 돌아올 때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정류장에서 찬란을 기다리나

 

솥에는 김이 오르고 생각만으로도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나의 사랑

 

한 입 더 먹을수록 비어가는 각자의 별이,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스치고

 

나는 네모난 창에 붙어 우물우물 적갈색 럭비공의 뾰족한 끝을 

 

 

교회 붉은 십자가의 중앙에 정조준도 하고, 아직 나의 기도는 너무 멀고

 

마침내 집은 사라지고 네모난 창과 네모의 노란 허기만 남을 때

 

캄캄한 서녘, 불빛을 내며 추락하는 기별이, 나에게서 가장 먼 당신

 

을 스치고 다시 어느 날 자궁처럼 나를 가두는 고구마라는 별이

 

                   『공정한 시인의 사회』(2020.12)

 

 

『고구마라는 별이』시제부터 시선을 낚아채는 참 신선한 시라는 생각입니다. 조말선 시인은 특이하게도 시가 되는 예감이 오는 순간에 설거지나 청소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심장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오솔길이 하나 생기는 걸 느끼는 순간 그 길이 수풀 속에 묻히지 않도록 길을 터주는 작업이라고 하였습니다.(김지율 대담집, 침묵, P.192) 허지웅 작가는 글을 쓰기 전 반드시 샤워를 하고 타조깃털로 집안 구석구석 먼지를 털고 깨끗하게 청소를 한 후에야 모니터를 켜더군요. 시인님은 시가 오는 순간에 그냥 쓰시는지요? 아니면 특별한 습관이라도 있으신지요?

 

• 특별한 습관 같은 것은 없습니다. 감기에 걸릴지 모르겠다는 느낌, 이상하게도 저는 시가 올 때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단지 시를 쓰는 모드로 전환되기까지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됩니다. 그러니까 컴퓨터의 커서가 깜박이는 것을 한 시간 정도 쳐다보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한 줄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컴퓨터를 끄기도 하지요. 아마도 저희 집에서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분명 시들이 모여 살고 있나봅니다. 자주 가는데도 그 길을 찾아가기가 매번 어렵기만 합니다.

 

 

• 즐겨듣는 음악과 좋아하는 화가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에릭 사티의 음악들, 화가는 파울 클레를 좋아합니다. 차에서 무한반복되는 서영은의 노래들을 사랑합니다. 아니 서영은씨를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웃음)

 

 

 

과잉들 

 

 

 

  그해 겨울엔 속죄하듯 폭설 내렸고 별처럼 나는 여러 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밤거리, 고깔모자의 가로등을 쓰고 걷다가 어느새 내가 어두워졌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평생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한 겹의 옷을 더 껴입었던 셈입니다

 

  하루는 따뜻한 걱정들을 불러다 거한 저녁을 먹이느라 나는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습니다

 

  길을 잃은 문자들을 수소문하다가 내 마음에도 골목의 무늬 같은 더딘 손금이 여럿 생겼습니다

 

  웃을 때도 울 때도 항상 곁에 살던 수많은 엄마들, 엄마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랑그인 적 없었습니다

 

  망상과 식욕 사이 봄비가 붐빕니다 참 많은 당신인 것을 알겠습니다 아픔이 몰라볼 만큼 나는 살찌겠습니다

 

  몸이 되기를 거부하는 거대한 결핍으로, 당신이 의식하지 않는 소소한 배경으로 천천히, 나를 소멸해 가겠습니다

 

               (계간 『문학동네』 2012년 봄호)

 

   

• 이 “과잉들”에서 우리는 언제쯤 놓여날 수 있을까요? 살아서 놓여날 수 있기는 한 것일까요? 이 무거운 들, , 에서요. 이 시뿐 아니라 「강박들」같은 시에서도 많은 “당신”이 등장합니다. 구체적으로 “당신”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 제 첫 시집의 맨 끝에 실려 있는 “그러니까 당신”이라는 산문에 질문하신 “당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여기서 조금 덧붙이자면 “당신”은 결국 수많은 타자겠지요, 더 큰 의미로 확장한다면 그 타자 속에 저 자신도 포함될지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그 타자는 반드시 살아있는 것에 한정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물체나 물질,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수많은 타자의 폭력성, 익명성 등을 포함하는 동시에 당연히 내가 엿볼 수 없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말을 거는, 혹은 내게 말을 거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플라스틱 나방

 

  

오후와 저녁이 몸 바꾸면 허물 같은 빈 자리로 사람들,
이마 위에 기름진 불을 켜고 모여든다. 솥뚜껑 위에선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어가고
얼굴들을 불판 가까이로 끌어당기며 나는,
오래된 전신주를 이야기한다. 야윈 나무젓가락 같던,
그 위로 어둠이 짙게 우러난 국물 속에 둥둥
떠있던 알등이 어김없이 밤이면 수없는 잔명을 불러 모으던
그 힘에 관하여. 이렇게 선술집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서
무엇이 우리를 파전처럼 한데 부쳐놓았나? 노을 빛
아름다운 분노를 핏물 괸 고기 뒤집듯 뒤집을 수 있나?
당신과 내가 넉넉한 현생의 상추 잎 한 장에 덮여 사라져도 되나?
몸 부딪는 주광성의 술잔들, 사이 불씨처럼 오르는 물음은
닿을 수 없는 공중에서 희부윰한 눈꽃이 되고 있었다.

식어가는 둥근 불판에 이마 부딪히며
새벽까지 파닥거리는 슬픈 날개들의 힘을 지켜본 적 있다.
그러니까 가장자리로 몰려가는 눈발은 뜨겁고, 나는
오래 전 녹아내린 어떤 전신주에 관해 이야기 한 것뿐이다.

 

            (『현대시 』200611월호)

 

• 시인님 시에 자주 등장하는‌“나방(나비) 이미지가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새벽까지 파닥거리는 슬픈 날개들”이야말로 현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런 우리들에게 구원은 없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들 모두가 오래 전 녹아내린 어떤 전신주가 아니기를 희망합니다.

 

• 시 한편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성복이나 송재학, 허수경의 시들은 한때의 저를 구원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구원이 실재한다고 해도 아마도 대부분의 좌절을 겪는 사람에게 구원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구원 같은 것을 믿을 나이도 지났고요. 적어도 제게 삶은 그렇게 어두운 좌절의 시간을 이기고 다시 살고 또 고통하는 연속일 뿐입니다. 화자가 “오래 전 녹아내린 어떤 전신주에 관해 이야기한 것 뿐이다”라고 짐짓 의뭉을 떠는 것은 지나간 고통의 시간은 그 고통의 시간으로 묻어두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뿐입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두가 그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에겐 절망을 이겨내는 키 몇 개쯤 주어지는 세상이었으면 해요.

 

 

 

• 코로나 시대에 여행 이야기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시인님께서는 여행을 자주 하시는 편이신지요? 모 시인은 돈만 모이면 여행을 떠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디였으며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 여행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진을 좋아하다보니 출사여행도 많이 했던 편입니다. 당연히 혼자 다니는 여행이 더 많았지요. 함께 가는 여행은 상대방을 고려해야해서 영 불편합니다. 물론 그 불편을 즐기려면 온전히 그와 함께하면 됩니다. 그러니 제가 생각하는 여행은 두 가지인 셈이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과 혼자 하는 여행. 직장동료와 둘이서 여행을 간적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이 많은 친구와 한곳에 오래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그 친구가 가고 싶다는 곳을 그 친구 혼자 보내고 오후 내내 카를교 아래에서 몰다우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대로 오후6시 시계탑 광장에서 다시 만나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른 봄의 그 체코여행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제게 여행은 이색적인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발현되지 않은 더 이색적인 것들에 대한 탐색이 아닐까 합니다.

 

 

• 시인들은 남들과 다른 생각과 다른 표현을 하기 위해서 뼈를 깎는 고통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시면서 항상 찾으려고 했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무엇에 대해 쓰느냐보다는 어떤 호흡과 어떤 문체로 쓰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같은 재제와 주제로 시를 쓰더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시는 완전히 다르게 탄생합니다. 길지 않은 동인생활을 통해 배운 것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개개인에 따라 다른 수사적 능력을 가졌다면 결국 그 레토릭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고 나는 나만의 어떤 레토릭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많이 고민합니다. 물론 레토릭의 범주에 문체가 포함되어야하는가 등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요, 아 물론 저는 문체 또한 레토릭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문체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흡 또한 중요하다고 보죠. 여전히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이십년쯤 더 지나면 저만의 수사법을 찾게 될까요? 여전히 삶은 계속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서봉의 가방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을 넣어야 한다,

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거리는

 

더 커다란 가방을 사주거나

사물을 차곡차곡 접어 넣는 인내를 가르쳤으나

바람이 불 때마다 기억은 집을 놓치고

어느 날, 가방을 뒤집어 보면

낡은 공허가 쏟아져, 서봉 는 잔돌처럼 쓸쓸해졌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가령 흐르는 물이나 한 떼의 구름 따위,

망상에 가득 찬 머리통을 담을 수 있는, 그러니까

서봉 와 서봉 의 바깥으로 규정된 실체를

통째로 넣고 다닐 만한 가방을 사러 다녔지만

노을 밑에 진열된 햇살은 너무 구체적이고

한정된 연민을 담아 팔고 있었다.

 

넣을 수 없는 것을 휴대하려는 관념과

찾는 것은 이미 분실한 시간

거기, 서봉 의 쓸쓸한 가죽 가방이 있다.

오래 노출된 서봉 는 풍화되거나 낡아가기 쉬워서

바람이나 빗속에선 늘 비린 살내가 풍겼다.

무겁고 질긴 관념을 담고 다니느라

서봉 의 몸은 자주 아프고

반쯤 벌어진 입은 늘 소문을 향해 슬프게 열려있다.

 

           (시집『서봉의 가방』)

 

 

「서봉의 가방」은 시인님의 슬픈 자화상이자 우리 모두의 아픈 자화상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명퇴를 하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삶의 반경이 좁아지고 삶이 어느 정도 평화로워지니, 예전처럼 저를 들끓게 하던 시의 동력 또한 퇴화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치열한 삶이 없으면 치열한 시도 없는 것 같습니다. 시인님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를 쓰시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 치열한 삶이 없으면 치열한 시도 없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동력이 있어야 계속 어떤 일을 추진할 수 있을 겁니다. 외적 동력은 제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니 논외로 두는 것이 좋겠고요, 내적 동력은 역시 “읽기”가 아닐까 합니다. 다행히도 저는 읽는 것을 즐깁니다. 책을 사는 일도 좋아하고요 단지 그것들이 바로 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어떤 비의가 밝혀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요. 그때 그 일이 그런 것이었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시도 그런 것이다 싶어요. 어떤 깨달음이 그 본질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유비의 형식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니 애초에 다작은 저와 인연이 없는 일인 듯도 합니다. 언제 시로 현현될지 모르지만 그저 늘 읽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와 소설들을요.

 

 

    

• 시인을 꿈꾸는 많은 문청들에게 시인님께서 겪은 시행착오나 시를 잘 쓸 수 있는 꿀 팁을 방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웃음) 그런 게 있을까요? 애초에 시를 잘 쓰지도 못하니 그런 방법이 있다면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시인을 꿈꾸는 분들이 계시다면, 결국 시인이 되실 겁니다. 아주 오래전 시를 함께 공부하던 문청들은 결국 모두 시인이 되었으니까요. 조금 늦거나 조금 빠를 뿐, 중요한 건 등단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언제까지 쓸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입니다. 오래 쓸 수 없다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면 더 잘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하는 일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15년 전의 저를 만날 수 있다면 들려주고 싶은 이야깁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시인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리기를 희망합니다. 새해 시인님께서 하고 싶거나 가지고 싶은 세 가지를 든다면 어떤 것일까요? 저는 책을 많이 읽고 싶고, 저를 더 많이 사랑하고 싶고, 헛된 욕망으로부터 놓여나 저 자신을 긍정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접속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나는 세상에 맞서 일어서고야 말겠다. ~~함에도 불구하고(웃음) 이것은 제가 한이 많거나 아니면 허점투성이의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합니다.

 

• 버킷리스트인가요? 일단, 내년에는 첫 번째 시집 이후 십여 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게 되어 있으니 그 시집이 무사히 잘 나왔으면 좋겠고요, 시국이 이러하니 두 번째는 저와 제 주위의 가족, 지인들이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하루 빨리 만들어지길 바라겠습니다. 세 번째는 빈 바구니로 비워두겠습니다 갑자기 담고 싶은 것이 생길 때까지요(웃음)

 

 

 

행성 관측 

 

 

불행이 따라오지 못할 거라 했다.

지나친 속도로 바람이 지나갔고 야윈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겨울, 겨울,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일찍 생을 마친 너를 생각했다.

대개 너는 아름다웠고 밤은 자리끼처럼 쓸쓸했다.

 

실비식당에서 저녁을 비우다말고 나는

기다릴 것 없는 따스한 불행들을 다시 한 번 기다렸다.

하모니카 소리 삼키며 저기 하심(河心)을 건너가는 열차.

왜 입맛을 잃고 네 행불의 궤도를 떠도는지.

콩나물처럼 긴 꼬리의 형용사는 버려야겠어,

말하던 네 입술은 영영 검은 여백 속으로 졌다.

 

그래도 살자, 그래도 살자.

국밥 그릇 속엔 늘 같은 종류의 내재율이 흐르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건 여전히 사람이지만

나는 더 이상 사람을 믿지 않는다.

 

               (시집『서봉 의 가방』)

 

시인은 어떤 존재일까요?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과 확장하고 싶은 시세계가 있다면요?

 

• 끊임없이 무언가 세우고 허무는 사람이겠죠, 그러니 끝없는 성공과 끝없는 실패를 반복해 갈 것입니다. 아마도 조금 특이하다면 그건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 아닐까요? 아무리 파란만장한 한 생도, 절정의 한 시절도 결국 저물 것이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한 생과 한 시절을 이토록 노래로 남기려하지 않겠죠. 거창하게 확장하고 싶은 시세계가 있지는 않습니다. 첫 시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두 번째 시집을 내게 되어 다행이고요. 바람이 있다면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유비의 숲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가령 첫 시집 끝머리에 언급한 ‘시를 파는 가게’ 같은 곳, 그런 가게의 주인장이 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시인님의 시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실까요?

 

• 뭐 제 시를 좋아하는 독자가 그리 많겠습니까만은, 몇 몇 기억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친히 부르셔서 진심의 격려를 해주셨던 정진규 선생님, 어느 지하철역에서 저를 시인이라고 알아봐 주셨던 어떤 분, 첫 시집 발간 후에 장문의 편지를 주셨던 분, 절친도 아닌데 시집을 열권이나 사서 위로해주셨던 분, 그런 많은 분들 덕에 두 번째 시집을 내게 되는 것 같아서 마음 짠합니다. 글쎄요, 먹고사는 일에 지치다보면 또 얼마나 많은 시를 쓰게 될지, 또 다음 시집을 묶을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다만, 제 목소리를 찾는다는 미명으로 같은 목소리를 계속내고 싶지는 않아요, 또 다른 어떤 목소리와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용기가 저와 함께 한다면 좋겠습니다. 설문지를 만들고 시를 고르시느라 고생하신 홍 선생님께 건강과 문운이 함께 하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무서운 아이스크림

 

 

녹아있다, 라는 말 아시죠? 사상이 주체에 역사가 책 속에 웃음이 삶 속에 내 안에 당신이

 

추억은 방울방울, 한 주검 속의 세계사와 한 그루 나무에 배어있는 수 천 년의 손금 같은,

 

가령 작은 세포 속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나를 배후조종하는 우주(宇宙) 말입니다

 

차갑게 공생한 불안의 빙하는 언제든 녹아 이 작은 지구와 지구의 감정을 덮칠 것만 같아요

 

부온탈렌티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온해지고 몸은 자꾸만 더워져요

 

스트로베리 블루베리 블랙베리 수많은 베리 베리들, 숨겨진 배리(背理)의 온도가 두렵습니다

 

얼굴이 녹아내리고 가면 위의 웃음만, 부지불식 아무도 구분 못할 부드러움만 여기 남을까봐

아시겠지만 아이스크림은 폭발하지 않아요 조금씩 녹을 뿐, 그래서 유령보다 더 무섭습니다

 

                 (『현대문학』201310월호)

 

 

 무서운 아이스크림이다. “얼굴이 녹아내리고 가면 위의 웃음만, 부지불식 아무도 구분 못할 부드러움만 여기 남을까봐”시인처럼 나도 두렵다. “아시겠지만 아이스크림은 폭발하지 않아요 조금씩 녹을 뿐, 그래서 유령보다 더 무섭습니다”, 조금씩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야곰야곰 우리들을 잠식하는 “배리의 온도(背理)”가,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지구가 무섭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이 시에 덧붙여진 시인의 단상을 소개한다.

 

 

단상

 

 

겨우 한 고비를 넘겼다

 

 

왜 시를 놓지 못할까. 내 정신은 점점 망가지고 있는데 어떤 위안이나 치료가 되지 못하는 시를 나는 무엇때문에 쓰고 있는가. 단 한 명이라도 내 시를 진심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계속 쓸 수 있을 거라던 마음은 이런 순간에 어디에 놓일 수 있을까

 

되도록 누구든 만나지 않으며 살고 있다. 일에 관계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어떤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다.

 

, 우리는 왜 모두 변하고 모두 잊혀지는가. 이런 공식들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나는 어떤 얼굴로 그것들을 맞고 보내야 하는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시인은 나하고 비슷한 면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모든 시인들의 공통된 성향인 걸까? 나 또한 되도록 누구도 만나지 않고 살고 있다.  만나서 의례적으로 나누는 인사, 의례적이고 위선적인 대화들, 함께 있으면서 함께 있지 못하는 형식적인 만남, 그 모든‌“배리의 온도”가 나는 두렵다.

 

 단상에서 시인은 자문한다. 왜 시를 놓지 못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단 한 명이라도 내 시를 진심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계속 쓸 수 있을 거라던 마음은 이런 순간에 어디에 놓일 수 있을까”라고 자책한다. 우리는 모두 변하고 모두 잊혀지겠지만, 시인의 시는 영원히 독자들의 가슴에 간직될 것이다. 그 첫 번째 증거가 나다. 그의 시를 읽는 내내 그의 아름다움에 나는 그에게 단숨에 매료되고 말았다. 어떤 시를 읽고서는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단숨에 나는 그의 독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시인이여! 우리는 세상에 떼밀려 어쩔 수 없이 그 빛을 잃고 말겠지만, 시인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열심히, 세월에 지치지 말고 계속 쓰시고 쓰시라.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세상의 빛이 되시라. 불변하는 별이 되시라!

 

 

《천서봉 시인》

1971년 서울 삼청동 출생

2005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서봉의 가방』문학동네

포토에세이 『있는 힘껏, 당신』호미

현재 ㈜ 이마 건축사사무소 대표 /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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