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의 감정 외 1편
김건화
잡념의 온상인 머리카락은 생각 부스러기를 먹고 자란다 매일 윤기 나게 쓸고 닦아도 잡동사니로 쌓여가는 집안 같다 망상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무의식의 밑바닥에 자리한 거미줄처럼 얽힌 갈등의 관계망 급기야 잘라낼 가위를 찾는다 뒤엉킨 실타래 매듭을 풀 수 없을 땐 칼보다 가위는 더 요긴한 물건 엄지와 검지에 감정이 실린 가위일수록 상대를 겨냥하는 무기를 닮았다 단호한 결심 두 손가락을 오므리면 먹먹한 주먹 절제의 감정이 펼치면 무장해제의 보자기가 된다 반복되는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나, 무엇인가 어쩔 수 없이 잘라내야 할 때 두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운다 한 가닥 기대와 후회마저 없이 미련 없이 싹둑 잘라 달라고
그 남자가 사는 법
세 개의 성을 가진 남자는 세 사람의 몫을 살아야 하지
종일 새장 속에 갇혀서 방언들과 씨름하느라 자기가 새라는 것조차 잊었지
언젠가 깃을 치며 날아오르리라는 낙관적인 관망에 헛배만 부른 남자
사랑할 땐 최선을 다하기에 지나간 사랑은 미련조차 없는 오늘 만난 여자가 이상형인 사랑꾼
가두리 양식장의 눈먼 고기에겐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를 주는 남자
젖은 영혼 상처를 어루만지며 우산이 되어주는 남자
필요충분조건의 세 명의 여자쯤 거뜬히 품고도 남을 남자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며 불 꺼진 잿더미를 뒤적여 사리 같은 詩를 찾는다
약력 경북 상주 출생 2016《시와경계》신인상 등단 동서문학상, 산림문화 공모 등에서 수상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회원 시집 『손톱의 진화 』 <저작권자 ⓒ 시인뉴스 포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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