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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복사점 외 1편 / 송유미

정유진기자 | 입력 : 2021/01/06 [17:19] | 조회수 : 261

 

  © 시인뉴스 포엠



햇빛 복사점      2          송유미

 

 

오후 2시가 복사를 한다.

숱하게 많아진 가로수 나뭇잎들

햇빛을 한 장 두 장 복사한다.

찰칵찰칵 나는 경성시절 남대문 시장 사람들 복사한다.

젊은 엄마 스란치마 입고

흑백 사진 찍던 남대문시장이

내 기억을 한 장 두 장 복사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사람은 사람을,

하늘은 하늘을,

바람은 바람을,

생각은 생각 없이 사는

나를 많이도 햇빛 빌려 복사했다.

지하철을 타면 지하철이

성냥알처럼 쏟아지는 사람들을 복사한다.

하루에도 수 천 미터나

파고들어가도 바닥이 나지 않은

하얀 기억 속에서 나는

남대문 시장 사람들을 복사한다.

햇빛가루 듬뿍 넣어서

잔치국수 같이 먹었던

젊은 엄마는 점점 많아진다.

 

 

 

 

 

 

 

 

 

 

 

 

 

 

 

 

훈맹정음2

 

 

 

까칠한 모래알 같은 점자들 철필로 콕콕 눌러 새긴다.

한자 한자 새소리, 바람소리 흩어지지 않게 손끝으로

하얀 허벅지 같은 닥종이에다 꽃씨처럼 눌러 새긴다.

그래야 손끝으로 읽는 환한 세상이 와서 읽고

즐거운 꽃잎 소식 봄날처럼 날릴 것이다.

생애 처음 눈을 뜨는, 첫사랑이 이럴 것이다.

주고받는 감미로운 눈빛, 흥겨운 웃음소리들

운동화 흙먼지며 체육복 땀 냄새까지

살 속 깊이 새겼다가 문득문득 그리움처럼 꺼내 읽으리.

세상 사람들이 눈으로 길을 볼 때

마음으로 세계를 보는 점자도서관에서

한 잎 한 잎 꽃잎 더듬듯

나는 환한 어둠 속에서 봄을 읽는다.

누가 그랬지. 가장 아끼는 말은 가슴에다 품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말은

재를 만들어 강물에 뿌려야 한다고.

 

더듬더듬 눈먼 나의 어머니 촛불 밝혀놓고  

순백(純白)의 눈동자를 더듬듯 점자성경 읽으신다.

날도 밝지 않은데

닭은 새벽을 깨닫고

나보다 먼저 운다

 

 

 

 

약력: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검은 옥수수밭의 동화; 2015 세종도서 문학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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