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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에브리원”, 오민석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입력 : 2021/01/07 [10:15] | 조회수 : 621

 

  © 시인뉴스 포엠



 

[문단소식〕“굿모닝, 에브리원, 오민석 시인과의 인터뷰

 

 

신용카드의 늘어나는 부채만큼 사상의 숲은 우거지고 집에는 가난한 바람이 불었다 내일 아침 무엇을 먹을까(, 포터블 크리스테바는 너무 무거워) 냉동실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꺼내니 얼어붙은 분단의 역사가 낙지처럼 꼬무락거린다 살아있네 굿모닝, 에브리원

 

                                                   시인의 시「굿모닝, 에브리원에서 

 

자작나무 숲에서 길을 잃다. 멀리 눈()에 잠긴 호텔이 보이지만 그곳은 내가 갈 길이 아니다. 눈 덮인 자작나무 숲에 水晶꽃들이 환하게 피었다. , 이 속에서 죽으리라. 그러나 죽음이 마침내 나를 생의 한 가운데로 부를 것을 나는 안다.  

                                                       

시인의 시「자작나무의 거리」에서

 

              

 

 선생님을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속에 쏙 들어갔다 나온 듯한,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조차 읽어내시던 서평이 떠오른다. 나의 경우가 그랬다. 첫 시집 해설을 선생님께서 쓰셨는데, 나는 탄복하여 선생님께 감사의 문자를 드린 듯하다. 그렇게 선생님께서는 나를 훤히 꿰뚫고 계셨던 것이다. 이것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님에 분명할 것이다. 선생님의 평론집을 읽은 분들이라면, 선생님께 서평을 받아보신 분들이라면 공통되게 느끼는 심정일 것이다.

 

 현재 선생님께서는 연구년을 맞아 집필실인 먹실골의 오두막에 기거하고 계신다. 마치 디즈니에서나 본 듯한, 실제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릴 적 동화책에서 저런 통나무집을 본 적이 있다. 그곳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살고 계셨는데, 가여운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누어준다는 뭐 그런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책의 제목이 가물가물하다.

 
 

▲     ©시인뉴스 포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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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뉴스 포엠

 

© 시인뉴스 포엠(먹실골의 사계四季)

 

 

 실제 선생님께서 거주하고 계신 통나무집의 사계(四季)이다. 수령(樹齡) 300살 느티나무가 선생님의 성채를 보호해주고 있는 듯한, 또한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근엄함으로 수호신처럼 선생님을 지켜주고 있는 듯한 선생님의 집필실이다. 이곳에서 하루 종일 창작에 몰두하고 계신 선생님. 나는 이 통나무집을 볼 때면 부러움과 동시에 인간에겐 주변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증거인 인기척, 다른 집의 많은 불빛이 절실한데 선생님께서 혹여 외롭진 않으실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창작과 학구열로 선생님에겐 그런 사치한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을지 모른다. 낮이고 밤이고 반딧불이처럼 스스로 불을 밝혀 주변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계신, 살아 있는 지성이라고 일컬어도 손색없을 선생님의 시세계와 먹실골 생활을 엿보기로 한다.

 

 

 

《대표시 모음》

 

 

먼 행성

 

 

벚꽃 그늘 아래 누우니

꽃과 초저녁달과 먼 행성들이

참 다정히도 날 내려다본다

아무것도 없이 이 정거장에 내렸으나

그새 푸르도록 늙었으니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느냐

아픈 봄마저 거저 준 꽃들

 

연민을 가르쳐준 궁핍의 가시들

오지 않음으로 기다림을 알게 해준 당신

봄이면 꽃이 피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잘린 체게바라의 손에서 지문을 채취하던

CIA 요원 홀리오 가르시아도

지금쯤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날 그 거리에서 내가 던진 돌멩이는

지금쯤 어디로 날아가고 있을까

혁명의 연기가 벚꽃 자욱하게 지는 저녁에

나는 평안하다 미안하다

늦은 밤의 술 약속과

돌아와 써야할 편지들과

잊혀진 무덤들 사이

아직 떠다니는 이쁜 물고기들

벚꽃 아래 누우니

꽃잎마다 그늘이고

그늘마다 상처다

다정한 세월이여

꽃 진 자리에 가서 벌서자

 

                  (시집 『그리운 명륜여인숙』)

 

 

 

빈센트 블루스

 

 

빈센트, 오늘은 하루 종일 라면으로 때우고

날 저물자 삼양시장으로 순대를 먹으러 갔지요

노랗게 저녁이 내리고 이슬이 내리고

푸른 창자들의 골목이 어두워지도록

하늘엔 별도 뜨지 않네요

빈센트, 당신의 뇌가 불꽃처럼 타올라

울먹이는 어깨가 되도록

나는 황금 이삭 하나도 만지지 못했어요

대지극장 간판에 빨간 브라를 한 여자가

껌을 씹으며 발가벗은 하이힐 위에 서 있네요

까까머리 아이들은 공을 따라

우르르 골목으로 사라지고

불안한 청춘들은 자꾸 귀를 잘라요

빈센트, 카페 테라스로 오세요

 

거기에 무거운 외투를 벗어놓고

팔도 버리고 다리도 버린 후

아를 들판으로 까마귀처럼 사라질 순 없는 건가요

검은 부엌에서 검은 감자를 굽는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노동으로 헐거워진 신발은 벗으라고 있는 거죠

마침내 버리라고 있는 거잖아요

빈센트, 우체국에서 마지막 전보를 보낸 후

당신의 수염은 더욱 붉어졌지요

나는 오늘도 알파벳을 가지고 매번 무너지는

바벨탑 위로 올라가요

, , , f, O, fa, , , , ,

건반들을 밟으면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이

무섭게 어두워졌지요

뒤집어진 신발들 날 새도록 주인이 일어나길 기다릴 때

빈센트, 카페 테라스로 오세요

거기에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어요

다만, 귀를 버린 초상화가 골목마다 붙어있는 걸요

당신은 말하자면 수배당한 언어입니다

빈ㅅㄴ트,

비세ᅟᅳᆫㅌ,

 

      (2019년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선정 작품,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자작나무의 거리

 

 

1

쌍문동의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새벽 해장을 하는 40대 부부. 밤새 마신 소주 위에 또 한 병의 참이슬 프레쉬.

 

2

그녀의 담배 냄새 때문에 기러기들이 길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를 떠나는 푸른 연기의 행렬이 슬프다, 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좋게 말할 때, 슬픔을 특권화하지 마.

 

3

새들은 망명정부처럼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 공기 중에 투명한 길을 낸다. 그 길로 한없이 가고 싶다. 가을이 오는데, 내게는 마실 영혼이 없다.

 

 

4

적들은 내 사랑의 증거. 사랑이 없었다면 적들도 없었으리. 나는 그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므로 그들도 더 이상 나의 적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네.

 

5

끈질기게 비가 오더니 날이 개었다. 하늘은 태양을 서쪽으로 서서히 내리고 바야흐로 달의 조명을 들어 올리고 있다. 아름답다. 鬪鷄의 뒷발에 꽂혀 있는 칼날이 달빛에 번쩍인다. 죽은 닭을 들고 닭 주인의 어린 아들이 울고 있다.

 

6

가라, 장엄 미사곡이라도 들려줄게. 생의 모든 핏방울을 기억하지 마라. 가라. 철새들을 따라. 한껏 멋을 부린 남자가 담배를 꼬나물고 스쿠터에 오른다. 달려라. 나는 그의 도발적인 의상이 남대문표 패션임을 알고 있다. 나는 그가 가장한 남성성이 사실은 여성성의 다른 이름임을 알고 있다. 기다려, 오빠가 간다.  

 

7

병석에 누워 있는 그녀, 와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싶지만, 그녀는 일어나 앉을 수도 없다. 창밖으로 길게 누운 臥佛, 미소 지으며 그녀를 들여다본다.

 

8

자작나무 숲에서 길을 잃다. 멀리 눈()에 잠긴 호텔이 보이지만 그곳은 내가 갈 길이 아니다. 눈 덮인 자작나무 숲에 水晶꽃들이 환하게 피었다. , 이 속에서 죽으리라. 그러나 죽음이 마침내 나를 생의 한 가운데로 부를 것을 나는 안다.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제가 살고 있는 곳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곳에 살고 계시네요. 선생님.(웃음)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의 소중함을 새삼 절실히 깨닫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현재 머무르고 계신 먹실골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일까요?

 

• 일단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먹실골 집필실은 제 소유가 아닙니다. 제 소유였다면 그렇게 자랑하지도 않았겠지요. 질투를 유발하는 행동은 좋은 것이 아니니까요. 지인의 소개로 빌려 쓰고 있는데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식구처럼 지내는 이곳 집주인 부자(父子)의 환대와 사랑으로 저는 지상 최고의 집필실을 사용하게 되었지요. 그분들께 늘 감사하며 지냅니다. 이곳은 사람들로부터는 고립되어 있지만 자연과는 끊이지 않는 소통이 있는 공간입니다. 칩거하며 글쓰기에는 최적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니체가 말하는 “멋진 고독”, “경쾌한 고독”을 자주 느낍니다. 가끔 벗들이 자원방래해주니 금상첨화이고요.  

 

 

 

 

쌍계사 벚꽃길의 연어 떼

 

 

죄의 새끼들이 죄의 새끼들을 낳는다

오로라를 스쳐 간 연어 떼가

온 하늘을 붉은 밀키웨이로 만들고

어느새 사라졌다

 

나는 내가 진 죄를 생각하느라 바빠,

오늘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먹고 먹어 오직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이

목적인 것들은 죄가 없다

배도 고프지 않은데 총질하는 것들이 문제다

내게서 빠져나간 무수한 총알들 때문에

나는 아픈 거다

두 달 전에 자식을 앞서 보내고

건강을 위해 오메가 쓰리를 찾는

노인과 나는 타협해야 한다

 

정사를 끝낸 연어 떼가 강물에 즐비하구나

자신도 모르는 욕망을 다 털어낸 저 붉은 죽음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하듯이

나는 나의 죄를 직면할 자신이 없다

다 쏟아낸 저것들은 얼마나 황홀할까

얼마나 위대한가 제대로 쏟지도 못하면서

죄의 시궁창에 있는 것들이 딱한 거야

그래도 생각해보면 꽃들은 그분이 주신 선물이지

쌍계사 벚꽃 십리 길을 머리 텅텅 비운 채

낄낄거리며 걷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어

다 쏟아내고 싶어

 

벚꽃 십리에 내장을 다 털어낸 후

다시 만날까, 우리

 

          (2019년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 선정 작품,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그리운 명륜여인숙

 

 

  잠 안 오는 밤 누워 명륜여인숙을 생각한다 만취의 20대에 당신과 함께 몸을 누이던 곳 플라타너스 이파리 뚝뚝 떨어지는 거리를 겁도 없이 지나 명륜여인숙에 들 때 나는 삭풍의 길을 가고 있음을 몰랐네 사랑도 한 때는 욕이었음을 그래서 침을 뱉으며 쉬발,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말했었지 문학이 지고 철학도 잠든 한밤중 명륜여인숙 30촉 흐린 별빛 아래에서 우린 무엇이 되어도 좋았네 루카치와 헤겔과 김종삼이 나란히 잠든 명륜여인숙 혈관 속으로 알콜이 밤새 유랑할 때 뒤척이는 파도 위로 느닷없이 한파가 몰려오곤 했지 새벽 가로등 눈발에 묻혀갈 때 여인숙을 나오면 한 세상을 접은 듯 유숙의 종소리 멀리서 흩어지고 집 아닌 집을 찾아 우리는 다시 떠났지 푸른 정거장에 지금도 함께 서 있는 당신, 그리고 우리 젊은 날의, 그리운 명륜여인숙

 

                        (단국문학상 수상작품, 시집『그리운 명륜여인숙』)

 

 

 

• 선생님께 시는 언제, 어떤 식으로 찾아왔으며 선생님 시의 근간(根幹)은 무엇일까요?

 

• 제게 시는 고등학교 시절 어쭙잖게도 실존적인 문제로 깊은 고뇌에 있을 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때 학교 신문사의 문학상에 시가 당선되면서 제가 시인이라는 자의식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습니다. 제게 시는 재현할 수 없는 것, 견디기 힘든 것, 가까이할 수 없는 것들을 재현하고 견디고 가까이하는 한 가지 수단입니다. 예술 언어는 과학 언어나 철학 언어와 달리 개념이 아니라 감각으로 실재계를 상징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부단한 노력이니까요. 저는 세상에 대하여 할 말이 많고, 시는 개념이나 관념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을 표준문법을 파괴하면서 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입니다.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기념 신인상으로 등단하셨습니다. ‘비평, 관계 혹은 타자성의 수사학’으로 제2회 부석평론상을 수상하셨을 때의 수상소감을 옮기겠습니다.

 

수상소감

(90년대 초, 시와 평론으로 등단해 잠시 활동 후 이십여 년 동안 문단을 떠나 있었다. 오랜방황 끝에 “나는 문학에 불과하며,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없고, 그러기를 바랄 수도 없다”는 청년 카프카의 고백이 자신의 고백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십여 년이란 긴 세월을 문단을 떠나 있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실까요?

 

• 저는 90년대 초반에 문예지 신인상을 통해 시인으로,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으로 등단을 했습니다. 남들처럼 이런 곳에 투고해서 낙방해본 적이 없었고, 어디에고 작품을 내면 당선이 되니까 나도 모르게 문학에 대한 ‘외경심’이 사라졌던 것 같아요. 등단 초기에 문예지의 편집위원을 하면서 자연스레 문단을 기웃거리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불행하게도 문학에 대한 자극이 아니라 지독한 권태를 느끼고 말았습니다. 그 무렵 마침 ‘영미문학연구회’라는 연구 중심의 새로운 영문학 학회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자연스레 그 학회의 비평이론분과 활동에 몰입하면서 ‘창작으로서의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 시간이 무려 20여 년이 되어버렸던 것이지요.

 

 

 

 

당신

 

 

 가끔 혼자 운다. 혼자 겪어야 할 몫을 그때 안다. 멜라니 사프카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당신과 헤어지는 일이라네. 그래, 나도 당신과 헤어지기 싫어. 때로 이미자의 황포 돛대를 타고 서해 바다 언저리를 헤맨다. 혼자 있을 때, 슬픔을 슬픔이라 말하고, 분노를 분노라고 말한다. 절벽처럼 혼자일 때, 당신이 보인다.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 선생님의 시 그리운 명륜여인숙」은 이미 너무 유명한 시여서, 오늘은 다른 시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문학아카데미TV〔시인만세-오민석 시인을 만나다!인터뷰 유투브 방송을 시청하였습니다. 방송 말미에 이정현 시인께서 낭송하신「당신」을 듣고 저도 울컥하였습니다. 이 시를 쓰시게 된 배경을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 많은 독자들이 이 시가 제가 2018년 여름에 아내를 잃고 나서 쓴 시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읽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시는 아내가 생존해 있을 당시에 쓴 것입니다. 가족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늘 혼자인 순간이 있게 마련이고, 그 절대적인 고독의 상태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경우가 있지요. 그것을 연인과의 이별이라는 구도로 쓴 시입니다. 사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유토피아는 연인 중에서도 최고의 연인이지요. 그런 것들과의 작별은 우리의 삶을 ‘무의미’로 내몹니다. 그런 아픔과 슬픔을 그린 시입니다.  

 

 

 

일 포스티노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초록 바다와 가난하고 무식한

우편 배달부를 위하여 를 썼으니

노동대중이여

 

아버지의 바다는 슬프다

밤하늘의 푸른 별은 오직 아픈 자들의 것

그 어떤 유희로도 희망을 말하지 마라

작은 나무들과 풀꽃들의 이야기를 들어라

봄은 멀고 바다는 빛나느니

그 모든 꿈은 가난의 둥지에서 부화된다

, 나의 가여운 섹스여

먼 사랑이여

인민의 집회여

친구여

총칼보다 더 무서운 사랑이여

나 거기에서 죽음을 헌옷처럼 벗었노라

무수한 실패와 실수와 죄의 날들이여

꿈은 머나

는 가깝다

먼 급소를 찌르자

 

                  (시집『그리운 명륜여인숙』)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마치 외국 어느 시인의 시집을 읽는 듯한 그런 자유로운 리듬감과 활달함이 느껴져요. 그것은 시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요, 선생님 시에서 이국의 지명이나 이름이 많이 등장해서 그럴까요? 특히「일 포스티노」에서 그런 경향은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 아, 사실 저는 지구라는 행성이 그리 넓은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지명과 인명은 모든 작가들의 공유물이지요. 제 시에는 외국 지명만이 아니라 국내 지명도 자주 등장합니다. 시인의 상상력에 국경은 없습니다. 오히려 위험한 것은 문화적 국수주의이지요. 이 시는 칠레 시인 파불로 네루다와 우편 배달부의 이야기를 다룬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에 한국 시인인 저의 세계를 겹쳐 쓴 것입니다.

 

 

 

카페 라블레에서 길을 잃다

 

 

 카페 라블레에서 에스프레소를 시켜놓고 알베르 까뮈의 일기를 읽는다 약속처럼 비가 내리고 나는 마른 먼지들이 빗속에서 갈 곳을 잃고 허둥대는 모습을 바라본다 리페츠크의 간이역 아스타포보에서 톨스토이 백작이 이승과 작별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신열에 떨던 백작이 마지막 정거장에서 마지막 숨을 넘기는 동안 금욕의 세기도 마침내 무너졌다 이길 것을 이기지 못한 한 세계가 죽은 것이다 창밖에 바람 불고 모처럼 그대가 그리운 나는 스마트폰의 액정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본다 Weather information from AccuWeather.com (지난주 금요일 밤, 까페 라블레에 오일램프를 선사했었지) 주인장은 오늘도 19세기의 램프에 21세기의 오일을 채우고 심지를 올린다 호박 빛 등불을 검은 어둠이 감싼다 나, 외롭다, 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절대 외롭지 않은 21세기에 19세기를 그리워하는 것도 죄일 것이다 백작의 죽음을 수습하기 위해 백작부인이 헐레벌떡 달려오지만 그녀는 결혼 20일 만에 모든 육체적 관계를 혐오한다고 고백했다 물론 그녀는 육체를 혐오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혐오한 것이었다 톨스토이 백작이 전 재산을 농노에게 나누어줄 때도 그녀는 관계를 혐오했다 까페 라블레에 밤이 이슥해지면 술 취한 관계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또 다른 불면의 밤들이 취객들을 기다릴 것이다 그대가 부재한 새벽을 나는 혐오한다 나는 관계를 거부하고 싶다, 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 양식 있는 시민이므로 관계를 기다리기로 한다, 어서 오라

 

                         

                          (시집『그리운 명륜여인숙』)

 

 

 

시집『그리운 명륜여인숙』에서는 “카페 라블레”가 자주 등장합니다.

 

• 언젠가 어떤 시인이 이 카페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왔어요. 저는 천연덕스럽게 제가 일하는 단국대학교 앞 카페 거리에 있다고 대답했지요. 실제로 그곳에 이런 이름의 카페가 있고 없고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냥 ‘기표(記標)’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라블레”는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을 쓴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 작가 이름입니다.

 

 

 

백석을 읽다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던 백석을 읽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타샤와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던 백석은 결국 밤 열차를 타지 못했다 그는 주저앉아 ‘한없이 아름다운 공산주의의 노을’을 노래했다 ‘당과 조국의 은혜’를 선물로 받다가 마침내 시를, 세상을 접었다 사회주의가 아름다운 것은 자본주의 안에서야, 사랑을 외치려거든 사랑이 없는 곳에서 외치란 말이야, 쉬발, 시를 버린 백석이 나타샤 대신 웬 군관동무를 데리고 소주를 마시고 있다 침침한 분단의 하늘에 눈이 푹푹 날리고 나타샤는 그를 기다리다 시베리아로 떠났다 가로수길 어디에도 혁명은 없고 웬 술 취한 행인이 지구를 흔들고 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린다던 백석이 버리지 못한 세상에 눈이 푹푹 쌓이는 밤 나는 기껏해야 친구 하나도 불러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삼수관 관평리 국영협동조합에서 양치기를 하는 백석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집『그리운 명륜여인숙』)

 

 

 

 

나의 로자

 

 

밤이 깊을 게다 밤이 깊고

나는 당신에게 전화를 걸 게다

당신은 통화중이고

나는 끝없이 다이얼을 돌릴 게다

밤의 잎새들을 세며

풀의 칼날에 베인 상처들을 생각할 것이다

저물녘에 시작된 물수제비가 밤 이슥하도록

호수 위를 퐁 퐁 퐁 달릴 때에도

당신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달의 여자도 아니므로

늑대처럼 울지도 않을 것이다

꽃들이 수증기 같은 향으로 늪을 적실 때에도

나는 오직 새벽을 두려워할 게다

당신이 부재한 새벽을 원치 않으므로

나는 계속 내 심장의 다이얼을 돌리며

꽃잎이 피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하여 붉은 음표는

가로등처럼 나의 밤을 지킬 것이다

꽃 속의 그대

나의 로자여

 

                (시집『그리운 명륜여인숙』) 

 

 

 

20대 후반의 어느 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을 때, 저를 붙들고 있었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허탈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시대는 낭만을 잃고 좀스러운 일상이 우리들을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일상신이 지배하는 세상 말이에요. 선생님의 “로자”는 안녕하신지요?

 

• ‘로자’는 제 가슴 속에 늘 살아있지요. 로자는 영원한 혁명의 에너지이고, 불변의 유토피아이고, 만족을 모르는 무정부주의자이니까요. 이 세계에 완성이라는 것은 없으며, 우리가 하는 일은 유토피아를 현실화하고 역사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먼 옛날 유토피아였던 수많은 것들이 지금은 ‘현실’이 되었지요. ‘로자’는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에서 빌려온 이름인데, 이런 영구 혁명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기표입니다.

 

 

 

 

음주가무에 능 하시다고 들었습니다.(웃음) 저는 모든 예술인은 무당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들은 연예인이라는 생각 또한 하고 있고요. 다만, 무대가 다를 뿐인 거죠. 제 애창곡은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입니다. 노랫말처럼 그토록 끝내 이기리라를 열창하곤 했었는데, 그것은 세상에 지지 않겠다는 제 절실함의 표현이자 다짐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세상에 이겼는지는 미지수입니다. 현재는 제 자신에게 지지 않겠다로 바꾸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막춤을 즐겨 추곤 해요. 선생님의 애창곡은 무엇이며, 어떤 춤을 즐겨 추시는지요?(웃음)

 

• 저는 주로 1세대 뽕짝과 정태춘, 한 대수, 밥 딜런의 노래를 주로 부릅니다. 춤은 흥이 나는 대로 몸을 흔드는 거지요, (웃음). 대학 시절엔 많이들 그랬지만 장엄하고 슬픈 민중가요들을 많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악과 싸워 이기고 싶었지요. 대중가요는 그 특유의 저속성으로 우리를 매혹합니다. 저는 그 저속성의 직접성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저속하고 직접적이기를 수시로 원하니까요.

 

 

• 저는 시인과 평론가는 한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로서 시를 읽으실 때와 시인으로서 시를 읽으실 때의 차이점이 있으실까요? 선생님께는 많은 직함이 있습니다. 우문 같지만, 영문학교수, 평론가, 시인 등등 이 중에서 가장 아끼시는 직함은 무엇일까요?

 

• 저는 무엇보다도 시인이기를 원합니다. 나머지 직함들은 시를 쓰는 과정에서 파생된 노동의 다양한 형식들을 지칭하는 것이지요. 저는 시인이지만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다양한 장르를 섭렵할 수 있다면 그럴수록 좋은 것이지요. 사실 시를 평론가로서 읽는 작업은 다소 힘들고 불편한 과정입니다.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개념화해야 하니까요. 아웃풋을 강요받지 않으면서 편하게 시를 읽는 것이 제일 낫지요. 그런 의미에서의 평론가는 일반 독자들보다 불행합니다.

 

 

 

 

 푸른 잎새 사이로 태양은 지고  

 

  미장이 아버지가 일곱 식구를 먹여 살리는 동안, 나는 골방에 쑤셔 박혀 헤겔을 읽거나 화창한 봄날이면 김수영과 함께 고궁古宮을 나왔다. 김종삼의 시인학교詩人學校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술 취해 쓰러져 있는 어떤 시인의 뺨을 때리며 소설가 천 아무개는 시인들이여 항상 깨어있으라고 외쳤다. 시인들은 침을 뱉지 않았다. 루카치의『'소설의 이론』을 읽다가 밤 이슥히 멀리 삼남三南에 눈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여름의 끝이 와도 아버지는 새벽에 일을 나가셨다. 뒹구는 돌이 언제 잠깨는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새벽이 왔고 마음 약한 베드로처럼 나는 자꾸 부인했다. 서양경제사를 공부했지만 나는 경제를 몰랐고 곰브리치의『서양미술사』처럼 나는 서가書架에 꽂혀 있었다.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서가에서 쫓겨났다. 대신 작은 경제와 작은 정치가 나를 적셨다. 포플러 푸른 잎새 사이로 해는 졌고 나는 점점 사라졌다. 시인학교에는 죽은 시인들이 둥둥 떠다녔고 시인 김관식이 주정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태양은 다시 떠오를 것 같지 않았다. 엘리엇이 황무지荒蕪地에서 꺼이꺼이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 기차는 정확히 7시에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가고 갈 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가까이서 작은 경제와 작은 정치가 내 뼈를 말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그리운 나의 수도원   

 

  내가 세상에 들어와 세상을 살 때, 나의 수도원도 나를 따라 들어왔다. , 악인惡人들이여 나를 쓰러뜨리라. 나는 한번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십자로十字路에서 대지에 키스할 때, 그 옆에 서서 잠시 떨었을 뿐, 나의 죄여. 천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오직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개처럼 사람들이 하루 종일 빠삐 움직일 때, 나의 수도원도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 개 떼들이 섹스와 권력과 돈의 사당에 경배할 때 나의 수도원은 먹을 것이 없어서 쓸쓸했다. 때아닌 눈발이 동해안을 덮고 또 덮었다. 푸른 바다가 눈 덮인 해안을 자꾸 핥았다. 도망갈 곳을 잃은 자들은 산으로 자꾸 올라갔다. 더 올라갈 곳이 없는 곳에서도 개 떼들이 짖어댔다. 어디선가 눈 더미가 자꾸 무너졌고 개들은 트럼펫을 불어댔다. 그렇다, 일시적이라도 세상은 개들의 것이다. 나는 자꾸 뒤돌아보며 나의 수도원을 찾았다. , 그리운 그리운 나의 수도원.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독일의 시인 휠덜린은 시인의 사명을 신의 빗살을 제 손으로 잡아 그 천상의 선물을 노래로 감싸 백성들에게 건네주는 것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또 철학자 하이데거는 시인은 시 짓기를 통해 은폐된 존재의 진리를  열어 밝힘으로써 신이 없는 세계, 신이 사라져버린 세계, 이 궁핍한 세상에 신성한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심보선 시인과 김용규 철학자와의 대담 중에서 발췌) 선생님께서는 세계 창조자로서 시인의 책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시인에게 책무 같은 것이 있다면, 제게 있어서 그것은 세계의 근본적인 악을 끄집어내서 그것과 대척점에 있는 신 혹은 인간의 선과 마주 대하게 하는 것이지요. 무한한 사랑이라는 것의 존재를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태생적 악의 존재를 저는 확신합니다. 사실 모든 문화라는 것은 궁극적 선의 실현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악과 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과 선은 늘 악으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지요. 다만 선악의 이분법은 위험한 것이고, 문학은 “선악의 저편이라는 위험한 형식”(니체)을 응시하며, 궁극적인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신성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외로운 작업이지요.

 

 

 

 

지옥의 묵시록1

 

 

봄이 온다

산천에 흐드러질 꽃들의 싸움이여

너는 어디에 있는가, 너는 아직 봄인가, 지옥이여

내 맘에 눈 내리고 또 내리니

나를 저 언 땅 아래 내려다오

그리하여 망각의 늪으로 새 한 마리 지나가도

푸른 힘줄이 나무의 모세혈관을 뚫고 지나가도

지옥이여, 나는 아직 봄이 아니다

나를 지나가 다오

오랜 벗, 지옥이여

하여, 나는 너를 잊고 싶다

봄은 오나 너마저 찔레꽃으로 떠나다오

연산홍 붉은 하늘로 사라져다오

그리하여 돌아갈 모든 것들 다 돌아간 후에

아카시아 꽃잎 지는 저 한적한 길을

혼자 뒤늦게 걷고 싶다

지나가 다오

나의 오랜 벗이여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지옥의 묵시록」시편들에서는 세상의 어둠을 가감 없이 드러내십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어둠의 왕들에게 침을 뱉으시고 억울하게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혼령들을 위로하는 씻김 굿 같은 시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핏 김수영 시인을 본 듯한 착각이 들 만큼요.(김수영 시인, 「시여 침을 뱉어라!) 저는 다른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이상과 백석과 김수영 시인을 정말 좋아합니다. 시를 쓰는 시인이라면 이 시인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시「지옥의 묵시록」은 어떤 의미들을 담고 있나요? 

 

• 이 시는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제목을 빌려왔습니다. 바로 앞에서 제가 이야기한바, 어떤 근본적인 악, 구조적인 악에 대하며 계시적인 형식으로 쓴 연작시 중의 한 편이지요. 사실 그런 악이 없다면 이 세상이 이토록 고통스럽지는 않겠지요. 악은 매우 집요하고, 끔찍하며, 반복적입니다. 우리는 마치 악의 사냥꾼에 멱살을 잡힌 채 바둥대는 토끼 같습니다.

 

 

 

 (모든 새로움은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이런 점에서 시인의 언어는 '꼬장'의 언어,'심술'의 언어이며, '난센스'의 언어이다.“모든 형식은 고갈되었다”는 모더니스트들의 고백은 일탈의 끝에서 새로운 일탈을 만들어내야 하는 모든 예술가들의 비명이다.) 라고, 작년 12월 출간하신 평론집 『몸-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시인은 하늘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 절망적인 어조로 탄식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쩜 낡은 것이 가장 새로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요즈음입니다. 저도 젊었을 적엔 형식 파괴적이고 산문에 가까운 시, 실험적인 시를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짙은 서정의 시가 다시 좋아졌습니다. 결국은 시의 본령에 맞닿아 있는 시가 가장 새로운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새로움’이 꼭 ‘실험성’이나 ‘난해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적인 서정시 중에서도 훌륭한 시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시들입니다. 새롭지 않은 좋은 시는 없습니다. 새로움은 표현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실험적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 진부한 표현, 유사한 것의 반복들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적이지요.

 

 

• “인간은 덧없음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한다.” 고 괴테는 말하였습니다. 모든 예술이 이런 연유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시를 쓰시는지요? 시를 쓰실 때에 어떤 주제의식, 즉 주제를 정해놓고 시를 쓰시는 편이신지요? 질문이 한꺼번에 많이 쏟아져요.(웃음) 그리고 선생님 시의 시작법을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제 안의 어떤 결핍 때문에 시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제가 말하는 ‘결핍’은 모든 유한자들의 결핍이지요. 결핍은 보편적 인간 존재 안에도 있고, 세계의 결핍도 있습니다. 무엇 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세계에서 온전한 것을 꿈꾸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불온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토피아 욕망이 없이 세계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나 철학자는 이렇게 늘 ‘도래할 미래’를 꿈꾸는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별한 주제를 미리 정하고 시를 쓰지는 않습니다. 어떤 ‘시적인 것(the poetic)’이 저를 건드리는 특별한 순간에 시가 발화되지요.  

 

 

 

배꽃 쏟아지는 언덕

 

 

배꽃 하얗게 쏟아지는 언덕

저 꽃들 다 멸망할 때까지

따라 쓰러지고 싶다

 

(또 병이 돋았구나)

배꽃이 다 쓸려 간 푸른 정거장

쓰러지지 못한 설움이

초생달로 떠도 내 죄 아니다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미안해라

 

 

내가 상처 입힌 나무들

눈물 흘린다

미안해라

잠 안 오는 밤

나를 보며 눈물 흘리는

저 잎사귀들

저 이쁜 꽃잎들

오직 죄와 무능을 이루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온 것처럼

나는 아프다

미안해라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 선생님의 시집 도처에서 미안해하시고 아파하시는 “죄와 무능”, 원죄 의식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요? 「굿모닝, 에브리원」하지 못한 세상 때문일까요?

 

• 저는 제가 늘 부족한 인간이고, 철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생활에서도 많은 실수를 저질러왔고 또 번번이 무능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것이 늘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데,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존재 같아요. 그래서 절망합니다. 다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라고 생각하고, 없는 물질과 부족한 사랑을 억지로라도 나누려고 합니다.

 

 

 

 강연도 많이 다니시고 여러 가지 일로 선생님께서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것 같아요.(웃음) 시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강연하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짤막하게 강의 내용을 들을 수 있을 런지요?

 

1. 시에 주제(하나의 고정된 의미 single fixed meaning)가 있고, 그것을 찾아내야 시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 선다형 평가 위주 교육의 잘못된 산물임. 1)기표/기의 관계의 자의성 2) 다의성(multiplicity) ---> 제를 찾지 말고 ‘시적인 것(the poetic)을 충분히 느끼는 것으로 족함.

 

2.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가 좋은 시라는 생각을 버려라. 좋은 시의 여부는 난해성의 정도가 아니라 1) ‘표현의 새로움’: 시에 어떤 정해진 형식이 있다고 가정하지 마라. 시를 포함한 모든 예술의 적은 ‘반복’, ‘클리셰(cliche)’이다. 시는 늘 사라지며 새로 태어난다. 2) 사유에 있어서 도전이 되거나 자극을 주는 시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이런 시가 아니면 시를 읽는 것은 값싼 위로이거나 시간 낭비임. 쉬운 시만 찾으면 시의 참맛을 영원히 볼 수가 없음. 시를 보는 수위를 점점 높혀가야 함.

 

3. 시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혹은 반복해서 읽어야 함. 니체의 ‘천천히 읽기(slow reading)& 오민석의 ‘버텨 읽기(resistant reading)’ 개념 참조. 이는 물론 시 읽기에만 해당이 되는 것은 아니나, 시 장르에서는 각별히 더 필요한 덕목임. *평론가들이 작품론을 쓸 때도 위의 두 가지 독법을 이용해 최소 3번 이상 읽어야 텍스트의 전체 그림이 머릿속에 들어옴.

 

4. 인문학 정신과 상통하는 시인 정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는 대답의 언어가 아니라 질문의 언어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음. 세계에 대하여 의심하고 지속적으로 따지고 딴지 거는 작업임. 최상의 것, 도달하지 못한 것, 궁극적인 것, 이상적인 것을 꿈꾸지 않으면 시인이 아님. 그러므로 시인이 보는 것은 세계의 결핍, 구멍, 아픔, 슬픔, 절망임.

 

5. 시의 소재는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 시인들만 아는 어떤 비밀의 세계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모든 것이다. 다만, 시는 그 모든 일상적인 것들을 소재로 하되, 비일상적인 표현의 옷을 입어야 한다.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만, 강연은 현장에서 말로 해야 실감이 나고 재미있지요. 위 강연용 요약문은 사실 제대로 된 글도 말도 아니기 때문에 사실 보여드리기가 좀 쑥스럽습니다.

 

 

•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과 인터뷰하면서 왠지 모르게 긴장이 풀리지가 않네요. 제가 인터뷰를 통해서 선생님께 많이 배우려고 하는 학생의 자세로 인터뷰에 임하기 때문인 것도 같아요.(웃음) 작년 12『이제, 문학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의 평론으로 제4회 시와경계 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문학은 어디로 가야만 할까요?

 

 

이 평론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여 이제 문학이 ‘골방’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섹스의 골방, 무의식의 골방, 그 모든 주관성의 골방이 ‘바깥’을 사유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 저의 진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섹슈앨러티, 무의식 등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깥과의 ‘관계’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근대성의 산물인 개인주의(individualism)는 이제 새로운 형식의 개인주의 혹은 관계주의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된 것이지요.  

 

 

• 선생님께서는 따르시는 분들도 많고 많은 시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계십니다. 다른 시인님들과의 브로맨스도 브로맨스지만 특히 박완호 시인님, 백인덕 시인님과의 브로맨스가 각별하고 애틋하게 느껴져요.

 

• 아, 박완호, 백인덕 시인과의 관계는 매우 우연히 맺어진 것입니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백인덕 시인이 제 시집 <<그리운 명륜여인숙>>의 해설을 썼고, 저는 박완호 시집의 해설을 썼으며, 다시 박완호 시인이 제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의 해설을 썼습니다. 저는 또 우연히 백인덕 시인론을 어느 문예지에 썼고요. 이러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의 관계가 되었는데요, 우리의 우정은 이것보다는 서로가 지향하는 문학의 결이 유사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완호 시인은 나중에 보니 같은 마을에 사는 ‘동네 시인’이기도 했고요. 아픔과 환희와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작가를 친구로 둔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그대 눈물이 흐르면

 

 

그대 눈물이 흐르면

정선에서 기차를 타고

동해로 가라

그대의 죄는

지상 어디에도 없는

나라를 꿈꾼 것

그대 눈물이 흐르면

청진항의 눈발을 뚫고

시베리아로 갈 일이다

그대의 죄는

사랑을 잃고

다시 찾지 않은 것

거기 눈 내리는 벌판에서

 

카츄샤에게 거절당한 네흘류도프처럼

반나절을 더 울 일이다

그대 눈물이 흐르면

사라진 피맛골의 해장국집을 찾지 말고

와사등 흔들리던 목포 항구로 가라

그대의 죄는

사람들의 양심을 아프게 찌른 것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이제는 사라진 옛 페리호를 타고

열두 시간을 먼 바다에서 떠돌 일이다

그래도 눈물이 흐르면

돌아오라 탕자처럼 돌아오라

그대의 죄는

늘 불가능을 꿈꾼 것

돌이와 더 이상 나갈 곳 없는 유배의 삶을 살라

이곳은 눈물마저 유배시키는 겨울의 나라

그러나 이 겨울 강의 어디쯤에서

눈발 그치고 그쳐

슬픈 그대

마침내 닻을 내리리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초록의 힘

 

 

초록의 힘은 자라는 것

초록의 힘은

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손을 내미는 것

노란, 빨간, 하얀

도화선에 마구 불을 붙이는 것

행성들 다 폭발한 후

황홀한 색동으로 과감히 쓰러져주는 것

결빙의 때에 아주 잊혀져주는 것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허공을 향해

푸른 화살을 다시 쏘아 올리는 것

불의 행성들을 일제히 터뜨리는 것

 

폭죽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때 되면 번개의 입술을 다시 쑤욱 내미는 것

자라는 것

참는 것

또 오는 것

 

              (시집『그리운 명륜여인숙』)

 

 

 

선생님의 집필실인 인피니튜드에서 집필하실 때 말고,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일까요?

 

• 가족을 포함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가 가장 행복하지요. 저는 집필 때문에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않지만, 사실은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일을 아주 좋아합니다. 약속 장소를 향해 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흥분되기까지 하니까요. (웃음)

 

 

코로나시대, 비 대면시대에 인터뷰를 통하여 온라인 시작 강의를 하신다고 생각하시고, 문청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부탁드려도 될 런지요?

 

•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하나만으로도 긴 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면상 간단히 하자면,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항상 새로운 글쓰기를 하고, 절대적인 것에 도전하고, 이룰 수 없는 것을 꿈꾸는 작가가 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과 확장하고 싶은 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 기존에 나온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의 자매서인 <<문학비평의 실제-신비평에서 페미니즘까지>>, <<문예사조로 본 인간과 세계-길가메쉬 신화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와 새 시집, 그리고 현재 편집 중인 산문집 <<먹실골 일기>>, 문학이론에 관한 번역서 한 권이 올해 출판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올해말까지  <<한국 현대 시문학사>>(공저)를 집필해서 내년에 출판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 시집은 이 세계의 고통과 불행과 난감한 희망에 대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푸른 연기의 세월

 

 

*

 

 

잠 안오는 밤

페이스북 들어가니 나처럼

잠 못 이루는 중생들 여럿 있다

내 서재에는 온통 죽은 시인들

네루다, 김종삼, 말라르메, 김관식, 베를렌

엘뤼아르, 로르까, 신동엽, 백석, 발레리, 김남주,

들과 떠들썩하게 한잔 하는 밤

18851116일 월요일

아폴리네르는 왜 그의 시에서

구두점을 버렸을까

마리 로랑생 때문일까

그러나 그의 사랑은 미라보 다리를 건너

마들렌에게로 이사 갔다

 

**

 

석탄불 꺼질 무렵의

유목민 헤밍웨이의 지친 얼굴

킬리만자로의 흰 바람

 

***

 

절대 노인이 되지 않겠다던 자신의 약속을 지킨 제레미아 생타무르

그는 예순이 되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잖아, 견딜 수 없었던 거야

그러면 끝이라고 생각한 거지, 그런데 만일 그게 끝이 아니라면?

말하자면 그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사는 게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거지

이제 곧 춥고 따뜻한 겨울이 올 것이다

 

푸른 연기의 세월이

또 지나간다

나 이렇게

잠 못 이루니

시간의 기차여

천천히 가자

 

                 (시집『굿모닝, 에브리원』)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선생님의 문학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실까요?

 

 

•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무한한 감사와 사랑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더 깨지고, 더 바닥을 길 것입니다. “극도로 해롭고 위험할지언정, 진리가 될 수도 있는 것”(니체)에서 떠나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10월부터「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코너에 소개하신 국내외 명시들과 선생님의 해설을 더한 저서 <<아침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에 게재하신 두 번째 시와 선생님의 해설을 옮긴다.

 

 

()  

 

 

그리고 그 나이 때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르지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겨울에서 아니면 강에서.

어떻게, 언제 왔는지, 나는 모른다,

아니야, 그것은 목소리도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고,

침묵도 아니었어,

어떤 거리에서 시가 나를 불렀던 거야

밤의 나뭇가지들로부터

불쑥 다른 사람들로부터,

성난 불길 가운데

혹은 혼자 집으로 돌아올 때,

거기에 얼굴 없는 내가 있었고

그것이 나를 건드렸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어, 내 입은

부를 이름도 없었고,

내 눈은 멀었으며,

무언가가 내 영혼 속에서 움직였지,

열기(熱氣) 혹은 잊어버린 날개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의 길을 찾았지,

그 불길의 암호를

해독하며,

나는 그 희미한 첫줄을 썼어,

실체도 없이 어렴풋한, 순수한

허튼소리를,

아무것도 모르는 누군가의

 

순수한 지혜를,

그리고 갑자기 나는 보았지

하늘들의 족쇄가 풀리고

열리는 것을,

행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들로

온통

구멍이 난 그림자를,

휘감아 도는 밤을,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너무나 작은 존재는,

별이 빛나는 위대한 허공,

닮음, 신비의 이미지에

취해,

내 자신 그 심연의

순수한 일부임을 느꼈지,

나는 별들과 함께 선회(旋回)하였고,

내 심장은 바람 위에서 자유로웠지.

 

                     (파블로 네루다, 오민석 옮김)

 

 

 

해설

(네루다의 이름을 들으면, 이탈리아의 작은 어촌을 배경으로 그와 한 우편배달부 사이의 우정을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가 생각난다. 어느 해 여름, 나는 숲 속의 한 캠프장에서 그의 회고록을 읽었다. 거기 97쪽에 쓰여 있으되, “잉크보다 삶의 피에 더 가까이 갈 것”. 시가 그를 건드린 것은 삶의 현장인 “어떤 거리” 에서다. 삶을 피하는 자, 수사(修辭)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 삶을 피하는 자는 수사를 얻을 수 없다. 선생님의 시「굿모닝, 에브리원」처럼 모두가 진정으로 굿모닝할 수 있는 날까지 선생님의 시는 굿모닝하지 못한 우리들의 삶을 몸소 살아내실 것이다. 영혼을 위로하는 자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여 당신과 나를 울어주고 세상을 울어주는 진정한 곡비가 되실 것이다. 세상은 선생님과 함께「굿모닝, 에브리원」 하라! 우리들은 선생님의 시와 함께 매일「굿모닝, 에브리원」하라! 진실로 선생님께서 소망하시는「굿모닝, 에브리원」하는 날까지......

 

 

 

 

굿모닝, 에브리원

 

 

 원주민 출신 시인인 마릴린 듀몬트의 A Really Good Brown Girl을 푸른 호수의 나라에 $14에 주문했다 원주민 캠프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백인 기숙학교에서 자식들을 빼앗긴 원주민들은 돈으로도 아이들을 데려올 수 없었다 신용카드의 늘어나는 부채만큼 사상의 숲은 우거지고 집에는 가난한 바람이 불었다 내일 아침 무엇을 먹을까(, 포터블 크리스테바는 너무 무거워) 냉동실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꺼내니 얼어붙은 분단의 역사가 낙지처럼 꼬무락거린다 살아있네 굿모닝, 에브리원

 

 

 

  <생의 지도는 스스로 갈증이 되어 갈증을 견디는 낙타의 발자국들로 어지럽다. 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자들이 내뱉는 한숨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백석) 정신에게 세계는 그 자체 ‘견딜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이다. 세계는 용납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있으며, 세계로부터 자신에게로 눈을 돌릴 때 주체는 자신의 내부 역시 용납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지각이란, 견딜 수 없는 주체가 견딜 수 없는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낙타에게 세계는 출구가 없는 사막이다. 낙타는 길 없는 사막을 그저 인내하고 걸을 뿐이다.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낙타가 갈증의 ‘끝’에 도달했을 때, 낙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내의 목록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낙타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구성된’것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낙타는 인내의 사전에 각인된 목록들이 (사막의) 권력이 ‘만들어낸’ 담론들, 즉 공리公理와 규범들임을 눈치챈다. 그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먼 과거로부터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강제해 온 것임을 깨닫는 순간, 낙타는 사자로 변한다. 정신이 이렇게 낙타의 인내를 버리고 사자의 자유를 선택할 때, 규범과 공리의 감옥들이 무너지는 굉음이 들린다. 시는 이런 점에서 (모든 형태의) 규범과 공리를 의심하고 그것에 도전하며 ‘자유’를 꿈꾸는 사자의 언어이다. 사자의 정신은 오로지 세계의 복잡성을 인내하며 그것과 고통스레 분투한 존재에게만 주어진다.> - 오민석

 

 

 

《오민석 시인》

충남 공주 출생.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현재 단국대학교 영미인문학과 교수로 문학 이론, 현대사상, 대중문화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기념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93<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며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그리운 명륜여인숙>>, <<기차는 오늘 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평론집 <<-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 문학이론 연구서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문학 연구서 <<저항의 방식: 캐나다 현대 원주민 문학의 지평>>, 대중문화 연구서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서 <<아침 시: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산문집 <<경계에서의 글쓰기>>,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등을 냈다. <단국문학상>, <부석 평론상>, <시와경계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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