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12월 외1편 / 황정순

정유진기자 | 입력 : 2021/01/07 [10:29] | 조회수 : 98

 

  © 시인뉴스 포엠



12

 

 

한 해 저물고 때늦은 첫눈 내린다

 

마음 허물어지는 일 많은 날들이었다

 

잦은 부음에 눈언저리 젖는 날 많고

뜻하지 않게 등을 돌린 사람도 있었으나

애써 그럴 만한 인연이었다 넘긴다

 

갓 혼자된 여자와 마주앉아 서로의 불운을 구경하는

봄 언저리는 어룽어룽 어지러웠고

 

한여름 대낮 속없이 겅중거리다 발을 헛디디고

한 시절 엉금거리며 밥을 안치는

위로의 전화도 위문품도 귀하여

스스로에게 폐 끼치는 날들이 미안하고 지루했다    

 

긴 장마처럼 젖고 바람처럼 소란하고

잎 지는 일에 허둥대다 고요해지기도 하였다

 

목발을 벗으니 마음이 석고처럼 딱딱해져

창가에 앉아 식물처럼 햇빛을 꼴깍거리거나

자주 사람들 이름을 기웃거리곤 하였다

 

눈 그치고 찬 샘 같은 밤하늘에 얹힌 쪽달 아래

꺼칠해진 새들이 시린 발목으로 둥지를 찾아든다

 

새 달력처럼 깨끗한 무를 꺼내 썰고

몇 가지 소소한 반찬을 만들어 우리의 밥상을 차린다

수저처럼 나란히 앉아 저녁밥을 먹을 것이다

 

마음이 눈옷 입은 나뭇가지처럼 잠깐 환해진다

 

 
 
 
 

차를 우리며

 

 

 

 

겹겹 공허의 벽을 허물다

 

금간 잔 하나를 닦아 차를 우린다

 

정적을 풀어 담은 차 주전자에서

 

마른 가을도 연둣빛으로 젖는다

 

산그늘 문밖에 이르고

 

문살 위 내린 어둠살이

 

어수선한 저녁을 베고 눕는다

 

수척한 볼을 가진 달보다

 

어린 별들이 글썽글썽 밤마중을 나온다

 

목젖에 걸린 잎차 부스러기 같은 고단

 

마른 입안에서 졸아들고

 

채 헹궈 두지 못한 가슴 열어

 

찻물을 따른다

 

 

 

 

황정순

 

현대시문학 등단

7회 수주문학상 우수상 수상

2회 교과서 관련 수필 공모 동상 수상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