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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새 외1편 / 이희국

정유진기자 | 입력 : 2021/01/11 [11:20] | 조회수 : 53

 

  © 시인뉴스 포엠



겨울철새     

 

 

 

혹한에도 호수를 유유히 떠다니는 새들의 언 발을 보며

꽁꽁 얼었던 유년의 맨발을 생각한다

70년대 초 서울 안암천을 끼고 살던 사람들

모두 맨발이었다

밤새 잠을 뒤집던 거센 비는

어느 집 옷가지와 책상과 바가지와 솥단지를 떠밀고

그 사이로 떠내려가던 닭과 돼지의 비명이 새벽을 흔들곤 했다

머리를 풀어헤친 물살은 제방을 넘어 낡은 천막촌 시장터를 헤집었다

배꼽까지 물이 고인 방 안에는 젖은 베개가 떠오르고

몸을 누일 한 뼘의 땅조차 없었다

뻘을 덮어쓴 채 꾸역꾸역 기어 나오던 사람들

그때 나는 그 물살을 거슬러오를 힘이 없었다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침 해가 뜨면

줄 서 있던 공중화장실에서 발가벗고 튀어나오던  

머리에 꽃 꽂은 스무 살 금순이

무너진 사람들에게 잠깐의 웃음을 던져주었다

표류하다가 닿은 곳 금호동 언덕

까치집들은 바람이 불때마다 아슬아슬 너풀거렸고

거센 바람은 문짝과 지붕을 새의 깃털처럼 날려버리기도 했다

안암천의 슬픈 울음은 이곳까지 따라왔다

얼어터지던 수도관, 빙벽을 등반하듯 미끄러운 산비탈

연탄재를 밟으며 언덕아래 급수차의 물을 받아 나르며

열한 살은 단단하게 여물어갔다

추운 강물에 떠다니는 새들처럼 우리는

가난을 끼고 고만고만한 크기로 살아갈 수 있었다

얼음이 서걱거리는 안암천변

아직도 어느 반지하방 어린 울음이 그때처럼 들리고

틈새로 보이는 아이는 똥오줌을 뭉개며 놀고 있다

골목 끝에는 소주병 서넛 변함없이 뒹굴고

간간이 휘도는 바람도 예전 그대로인데

땅따먹기하며 까르륵대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노인 한 사람만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격랑에 젖은 날개가 널브러진 골목

아직도 이 도시 구석구석에는 맨발의 새들이 모여 산다

강가에 얼음 녹고 새 순환의 봄이 와도

비상하는 법을 잊어버린 새들

날개 잃어 생의 끝자리에 몰린 사람들

 

그 사이에서

후드득 까치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아버지   

 

 

아버지는 언제나 돌아서 있었다

명문가의 고학력 아버지

하수들 설치는 꼴 보기 싫어 시대의 뒤편만 찾아다녔다

세월의 회오리에 청운의 꿈 부서지고

무너진 권투선수처럼 퍼렇게 멍든 채

 

역사의 태풍은 모질어

등록금 없어 어머니가 사방으로 뛰어다닐 때

배워봐야 쓸모없는 책 다 태워버린다고 소리치고 나가던 아버지  

멀리서 귀뚜라미소리보다 작은 울음이 들려오곤 했다

 

쌀독이 바닥을 드러내면

친구 같은 라디오를 들고 나갔고  

한계까지 볼륨을 올린 듯 라디오가 울었다

골목이 떠나가도록 울리던 광복20년 연속극

여보시오 백범 제발 나를 도와주시오······ 성우 구민의 목소리

다섯 식구가 귀로 먹는 밥이었다

 

독립문표 메리아스 둑방 아래 단칸방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백열등이 불안으로 깜빡거렸다

 

아버님 이름으로 아들이 첫 집을 사자

35년 만에 가장 화난 얼굴로 뛰어오신 아버지

  

너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무슨 억한 마음이냐!

아니요, 아버지니까요

부모님 집 사드리는 게 소원이었다고

아버지와 얼굴을 맞대고 한참이나 울었는데····

 

15년이 지나 영정으로 마주한 아버지

활짝 웃고 계신다.

 

 

 

 

 

 

서울 출생. 〈문예사조〉, 〈시문학〉 등단

시집: 『자작나무 풍경』, 『다리』, 『파랑새는 떠났다』

공저: 『씨앗의 노래』외 다수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작가상 수상

월간〈문예사조〉편집위원회회장, 국제PEN한국본부회원

약사 (가톨릭대학교 약학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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