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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의 짝 무념이 외1편 / 송연숙

정유진기자 | 입력 : 2021/01/12 [11:30] | 조회수 : 85

 

  © 시인뉴스 포엠



무색의 짝 무념이

- 학저수지*

 

송연숙

 

 

 

11월은 색을 놓아 버렸다

물속에서도 말라가는 연잎들

 

무색無色에는 무념無念이 짝인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저수지 둑길을 걷기로 한다

생각을 놓아야지 생각하면

아무 생각이나 따라와 둑길을 함께 걷는다

아무 생각은 각이 진 경우가 많아서

나를 아프게 찌른다

그럴 때면

머리를 흔들어 각을 털어내고

찔린 내 마음을 내 마음이 쓰다듬곤 한다

 

줄기가 꺾인 연잎들은 쇠기러기 떼 같다

축구공을 따라 운동장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아이들처럼

지는 해를 몰며 물 위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기러기 떼

 

하늘을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하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다 잃어버리고 퇴근하는 날개들

 

저녁의 시간은 초침처럼 혼자 걷는다

 

도피안사의 저녁 종소리가

말줄임표가 되어 허공에 점을 찍는다

허공에 찍힌 점들이 내 안에서 공명되는 시간

 

 

 

 

 

* 학저수지: 철원군 동송읍에 소재한 저수지

 

 

 

주름 잡다

- 송대소*

 

송연숙

 

 

 

물속에 뜬 하늘을 건져냈으나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물속을 오래 들여다보았으나 물고기 없다

겨울 축제가 끝난 계곡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천지인天地人 모두 비어 있는 날, 신들은 송대소의 바위를 주무르며 놀았을 것 같다. 그러니까 송대소는 신들의 놀이터. 계곡을 꽉 채운 주름바위들을 보니 신들은 주름 잡는 걸 참 좋아했나 보다. 주름치마를 입고, 아코디언 주름을 접었다 폈다 하며 흥을 돋우는 신들, 신들의 얼굴 위에 물빛 그림자 반짝거린다. 접이식 부채를 펴서 바람을 만들 때 여신의 머리카락은 나뭇잎처럼 반짝였겠지.

 

주름 잡으며 논다는 건 한 세계를 평정했다는 말

주름 잡는다는 건 부피를 줄였다는 말

 

송대소에 서면

용암처럼 들끓던 마음도

깃털 세우며 애써 몸집을 부풀리던 날들도

물결처럼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주름 없이 가는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도, 물결도 주름 잡으며 흘러간다

 

 

 

 

 

 

 

* 송대소: 철원군 동송읍에 소재한 주상절리 계곡

 

 

 

 

 

 

 

 

송연숙

2016년 월간 <시와표현> 등단. 2019<강원일보> <국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측백나무 울타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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