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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문장외1편 / 홍숙영

정유진기자 | 입력 : 2021/01/13 [11:05] | 조회수 : 74

 

  © 시인뉴스 포엠



 

남겨진 문장  

 

                        홍숙영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숲 없는 도시의 빌딩 숲에 갇혀

절제된 리듬에 따라

끝없이 금속판을 두드리는

너를 찾기 위해  

검은 구름 아래 얼굴을 들이밀며

밤새도록 두리번거리고 있을 터이니

 

오후 산책길에 만난 버즘나무도

커다란 잎을 떨구며 울고 있더라

환하다고 절로 환희가 솟구치는 건 아니다

 

이제 그만 날선 글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어 눈을 맞추라

 

도시의 가장 외딴 섬에

남아 있는 하나의 문장을 위해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구부리고

모질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빛나는 이 그대 앞에 있으니

 

낮게 내려와 투명하게 반짝이는

저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찬찬히

알아보아야 한다.

 

 

 

 

 

마지막 인사  

 

베개에 묻은 외로움을 볕에 말렸어요.

외로움도 가끔씩 비타민 D를 섭취해야 하거든요.  

그래요, 외로움이 아플까봐 더럭 겁이 났어요.

어디론가 떠나 버릴까봐 두려웠어요.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네요.

차례를 기다리는 꽃무릇의 붉은 정열이나

끊임없이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양귀비의 치명적인 독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이기에

옷가지나 세간을 정리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거예요.

투명한 화면에 흐르는 리듬 없는 배경 음악을 들으며  

빈 칸에 불러본 적 없는 이름을 적게 되겠죠.

 

형식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침팬지보다 우등한 생물인가요.

마디풀이나 돌콩처럼 잡초도 이름이 있어요.

구름에도 바람에도 제각기 사연이 있는 법인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려고 했어요.

그건 확실히 어리석은 선택이었던 거죠.

저마다 지갑에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지폐를 챙겨 넣듯

마음도 감당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야 해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바깥을 만날까요.  

그래도 외로운 잠이 괴로운 꿈보다는 나은 걸까요.

마지막으로 펜을 들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글씨를 써요.

 

 

 

 

 

홍숙영 약력

 

2002 현대시문학 등단, 2003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2014 소설문학 단편소설 ‘푸른 잠자리의 환영’ 발표

시집 『슬픈 기차를 타라』 , 에세이집 『매혹도시에 말걸기』, 소설집  『천국을 피하는 법』

저서 『창의력이 배불린 코끼리』, 『스토리텔링 인간을 디자인하다』 『생각의 스위치를 켜라: 창의적인 글쓰기 프로젝트』

프랑스 파리 2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박사

한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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