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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꽃들은 언제 잠이 들었을까외1편 / 허갑순

정유진기자 | 입력 : 2021/01/13 [11:11] | 조회수 : 69

 

  © 시인뉴스 포엠



서 있는 꽃들은 언제 잠이 들었을까

 

                                     허갑순

 

 

 

언니야 꽃구경 가자

가다 가다 가슴에다 작은 꽃씨 심어보자

그 꽃씨 햇빛에 말리고 튼튼한 선반 위에 올려두었지

꿀벌들이 팔을 흔들 때 재빨리 바람이 길을 내고 싹

을 틔울 거야

 

언니야 꽃들이 싹을 틔우면

아무도 몰래 종교놀이 하자

언니가 하느님 하면 나는 부처님 하고

언니가 아멘 하면 나는 나무관세음보살 하고

언니가 꿈없이 잠들면 나는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어

 

언니야

꽃들이 자라 우거지면

꽃집을 짓고 꽃술 거나하게 취할 때 꽃시계도 목에

걸어보자

꽃언덕을 넘고 꽃구름을 밟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

가자

해바라기 봉숭아 분꽃 맨드라미 채송화도 화들짝 잠

이 깨겠지

서 있는 꽃들은 언제 잠이 들었을까

 

언니야 꽃숲에는 꽃엄마가 있데

언니야 꽃숲에는 꽃아빠가 있데

언니야 꽃숲에는 꽃아가가 있데

언니야 꽃숲에는 꽃나라가 있데.

 

 

 

 

 

 

 

 

 

 

 

목숨 하나

 

                       허갑순

 

 

조금씩 조금씩 나서보리라

낮은 머리를 더욱 낮게 숙이고

묵은 겨울을 씨앗처럼 품어보면

마른 풀잎을 우적우적 밀어 올리는

작고 여린 손과 만날 수 있을까

뜰은

역겨움에 몸을 뒤척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느끼지 못하는 해빙과

한 번도 날지 못하는 땅의 자유를

새 풀잎으로는 가릴 수 있을지 몰라

누렇게 뜬 살점 어디에

독하게 붙어 있을 목숨 하나

나 없이도 메마른 땅은 어깨를 세우고

또 다른 대물림이 시작되려나

눈물로는 다 말할 수 없어

슬픔이 떨어져 나간 아픔이 커버려.

 

 

 

 

 

허갑순

전남 순천.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와 산문』(1995)으로 문단에 올랐으며, 2회 서울시인상, 4회 국제한국본부광주펜문학상, 16회 광주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그저 꽃잎으로 번져나갔다」 등 7권과 「현대시의 시간과 공간인식」 등 2권 평론집이 있다. 전 조선대학교 동신대학교 외래교수 현 한국연구재단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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