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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이야기 외1편 / 권상진

정유진기자 | 입력 : 2021/01/13 [11:17] | 조회수 : 98

 

  © 시인뉴스 포엠

 



들은 이야기

 

 

어둠이 어떻게 빛을 적시는지

시간이 하루에 어떤 명암을 그려넣는지

그는 모른다

들은 이야기로 잠을 청하고

들은 이야기로 아침을 맞을 때

시계는 하루를 잘게 쪼개는 소리로 혼자 분주할 뿐

 

눈이 온다고, 별빛이 투명하다고, 꽃이 지천이라고 말하면

테이크아웃 커피가 다 식을 때 즈음에야

눈 오는 소리가, 별빛의 마찰음이,

꽃이 향기와 이별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대답하던 사람

 

우리의 대화는 자주 간격을 가졌다

그에게 소리 없는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가끔 슬픈 표정만 지어보이거나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힘껏 오므릴 때도 있지만

 

우린 서로 괜찮았다

나는 보고, 그는 듣는 일이 퀴즈처럼

정답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우린 아무렇지도 않았다

 

또각또각 질문들을 흘리며 그가 앞서 걷는다

물끄러미 소리의 흔적들에 귀 기울이는 그에게

'한 걸음만 오른쪽으로'

우린 이 정도의 간섭만이 다만 필요한 사이였다

 

 

 

 

 

 

 

 

이모

  

 

혼밥이 지겨운 날은 식당으로

되도록이면 외진 골목 허름한 식당으로

그곳에서는 아무나 이모

 

이모 물, 이모 소주, 이모 김치 이모이모이모

우린 서로 타향이니까

찡그리지 않고 우린 가족이니까

 

엊저녁엔 고시원 준이와 실습나간 혁이가 

점심엔 기간제 숙이가 명찰에 고개를 묻으며

이모이모를 수없이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갔는데 

엄마엄마 불러보고 싶은 것을

이모이모만 수도 없이 부르다 갔는데

 

괜스레 빈자리 서성이다가

깍두기 콩나물만 고봉으로 밀어 놓고 가는

골목 식당에는 이모가, 엄마 같은 이모들이

웃으며 조카들을 기다리는데

 

혼밥에 혼술이 미치도록 서럽거든 식당으로

빈 수저 앞에 놓고 엄마엄마 부르고 싶은 날엔 

공기밥 한 그릇 꾹꾹 눌러 엄마처럼 기다리는

이모네 식당으로

 

 

 

 

[ 권상진 약력 ]

 

1972년 경북 경주 출생

2013년 전태일문학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2015년 복숭아문학상 대상 수상

2018년 경주문학상 수상

저서 『사람의 얼굴』(사회평론사, 2013, 공저)

     시집 『눈물 이후』(시산맥사, 2018,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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