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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지고 꽃이 만발하다 외 9편/ 김옥종

이경애 기자 | 입력 : 2021/02/25 [10:38] | 조회수 : 440

 

 

 

 

 

겨울이지고 꽃이 만발하다

 

김옥종



그래 용서하마
쉼표없이 허우적대며 걸어온 길
느낌표 하나 없이 접는다고
더 아쉬울게 어디 겨울뿐이겠는가
뒷뜰에 자리 보전하고 누운
고수 잎에 비가 내리던 날에
내 저무는 사랑의 뒤꿈치에는
서리가 내렸다
잊어야 할 만큼은 아니어도
씻겨 내려 갈 만큼의 빗줄기여야
가슴은 젖어 있을터,
이랑을 타고 흐르는 세월을
담아두진 못하겠지만 여태 가물었으니
한 시절은 녹록친 않아도 견뎌낼듯싶다
지금 내리는 눈은 소멸해가는것들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다
그리운것들을,
누르고 눌러서 화석으로 만들고
굳힌 한 세월 꽃감 빼먹듯 하나하나 해동시켜
어느곳의 멍이 더 깊은지 헤아려볼
시간을 조금 벌어보자
아주 어린시절
매질에 맨발로 달아나던 그 신작로에도
눈꽃은 피어 있었고
오일장에 가신 울 엄니 떨군 해를 등지고
대실 잔등너머 핼쓱해진 붕어빵을 사 오실 때도,
가출해서 돌아오던 그날 읍내,
오십원 어치는 항상 허기졌던
피래네 오뎅집 앞 도로 위에도
녹아서는 안되는 기억 몇 개쯤은 포근히 내렸다
결별한 사랑을 기다리다 맞은 공중 전화 박스 안의
첫눈과
몇해를 헤매이다 맞았던
보성강에 내리던 치유의 눈도 기억한다
지금 내리는 눈은 길을 떠나지 못한것들에 대한
위로의 술이다
지치고 힘들어하는것들에 대한
해장국이다
애써 얼리려 하지 않을것이다
어느 가슴위에 녹은들 어떠하냐
하천에서 강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갯내나는 따뜻한 사람과 만날 것 이니
벌어 놓은 시간은 아무데나 조금씩
청설모처럼 묻어두자.

 

 

 

늙은 호박 감자조림

 

김옥종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고단한 저녁의 혈자리를 풀어주는,
가을 끝자락의 햇볕을 모아
한 철 시퍼런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절망의 밑둥을 잘라내어 그 즙으로 조청을 만들고
끈적끈적한 세월을 맛볼수있게 만드는 요리,
꼭 그런 것만이 아니어도 좋다 적어도,
그 계절의 움푹진 골짜기에서 흐르는
향기만이라도 담아서 덖어주고 쪄내고
네 삶 또한 감자처럼 포근히 익혀줄 것이니
때를 기다려 엉겨 붙어 주시게나
전분이 할수있는 가지런한 사명감에도
한번씩은 우쭐 대고도 싶은 날들도 있으니
늙은 호박과의 친분이 새삼스럽기야 하지만
갈치인들 어떻고 고등어인들 나무라겠는가?
그저 호박과 어우러져 등짝 시린
이 세월의 무게만큼만 허리 깊숙히 지지고 있다보면
뒤척이지 않아도 가슴이 벌써 농익지 않았나
기다림의 끝은 이렇듯 촉촉한 가을비처럼
스며드는 맛이 였음을 오래잊고 살지 않았나

 

 

 

벼락 새비 젓

 

김옥종

 


이제서야
당신을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슬픔이 슬픔을 위로할 때는
안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서로의 생채기가 맞닿아서
덧나기 때문입니다
슬픔이 슬픔에게 다가서고자 할때는
생채기의 반대편을 날이 선 칼로 베어낸 선혈로,
가만히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곤히 잠든
당신의 이른 새벽에
동부콩을 넣어 냄비 밥을 짓습니다
토하젓은 없어
별들을 향해 튀어 오르던
징거미 새우를 데치고
쪽파와 달래와 다진마늘과 간장과
고추가루로,
벼락같이 무쳐낸 새비 젓에서는
당신의 쇄골에서 나던 항유고래의 냄새가 납니다

인연이 저물고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이 발효되지 못하고
골마지 낀 채로 잠들어버린
막걸리 식초처럼 허망한 새벽에
첫 닭이 울기전
쇠구슬같이 내리는 이슬을 어깨로
받아내며 돌아오는 길에 묻습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당신을 짓고
허물어 내야
봄이 오는 것인가요

 

꼬막

김옥종

 


참 꼬막의 주름은 18개 내외.
새 꼬막의 주름은 28개 내외.
피 꼬막의 주름은 38개 내외.
주름이 많은 것일수록 깊은 겨울에 들어서야
맛이 거시기하다

꼬막의 주름은 갯벌을 몸으로 기억하려는
물갈퀴의 흔적,
주름의 횡간에는
달의 공전이 꼬막을 살 찌우는 동안
잠시
별들이 모여 산다

꼬막을 먹는다는것은
달의 뒤편을  맛보는 것,
생과 사가 똑 같이 탱글탱글하게
씹히는것,
서로의 체온을 더듬는 것이다

뻘속에서는 온 힘을 다해
주름을 만들고
뻘 밖에서는 주름을 펴서
피 맛을 혀로 읽어내는 비명소리 가득하다



고등어 구이

 

김옥종



여보게,
내 연인의 굽은 등을
젓가락으로 보듬었더니
바다는 냉골이었으나
물 밑은 얼마나 뜨거웠었던지
화상을 입고 말았다네

 

 

 

상처에 바르는 연고

 

김옥종



눈보라가 울음을 크게 울던 날에도
상처난 갈대가 부러지지 않은것은
바람이 들고나는 통로에서 누군가의 갈대는
시린 등을 내주어 부벼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는 외로움을 방치하지 말일이다
더는 그 쓸쓸함을 묵혀 두진 말일이다
네가 가장 나를 외롭게 한 이 였으니
살면서 다 갚아줄 일이다

생채기는 안으로 내야 더 깊어지는것을,

소리 내어 울지 말일이다 
뒤돌아봐야 하는 것들에게는
아쉬운 세월의 발자국들을
그저 덮어버릴 만큼만 눈꽃이 쌓여
가슴을 헤집고 걸었던 그 길위에서도

상처난 갈대가 부러지지 않는 것은

사람이 들고나는 길목에서
누군가의 갈대는 속대를 비워
네 살을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어 건정 간국

 

김옥종



빨랫줄에 널어 놓은
건정을,
한 객기에 이는 파랑은
농가진 입힌  계절의 끝을 흔들고
바람은 그렇게 젊은 처자의 하얀 속살을
수분기 없이 추려낸다
어디 품어 줄것이 너 뿐이겠느냐?
시월은
어디에 안겨도 시린것을,
어린날 호주머니 가득 깊이 눌러
턱 아프게 씹어 대던
올게쌀의,
목욕물을 받아 놓고
염장질 해놓은 젓새우의
망울이 성욕처럼 도드라지는 날에
투가리 밑에 무시 깔고
대파 이불삼아 헐거워진 밤  엮어서
애린 속을  건져낸다

 

 

침묵

 

김옥종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않던 참새의
통곡소리와 어깨 넓은 봄동의 움츠러드는 가슴을 보고서도
그저 너희들 끼리 잠시 견디어내라고,
사랑하는일 보다 살아가는일이 더 힘겹게 느껴지는날에,
가끔은
나를 침묵속에서 잠방데는
겨울의 맨살밖에
소름으로 방치해두고싶다
돌아올 것 같지 않은 계절도
오후 한때 부서지는 햇살의 파편으로
체온을 끌어 올리고 있고
잊을 수 없을것 만 같은 사람과의
생채기도
덧나지 않기 위해 침묵하고 싶다.
그믐에 살이 차오르던 갯가재가
보름달이 뜨면 왜 살이 빠지는지와
민들레가 홀씨를 척박한 땅으로 왜 날려보내는지,
살점을 저며내며 붉은 심장을 밀어 올리는
동백꽃이 왜 창백한지와
더듬던 네 속살에 박힌 봄이
아직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침묵하고싶다 가끔은.

 

 

복어의 정소

 

김옥종



서시는 어부의 딸이라지
서시(西施)의 젖을 숟가락으로 떠서 
호호 불며 먹는다
물에 데인 상처에 미나리 향이 스며들어
슴슴한
무미의 허기를 식도로 밀어 넣으면
나는 춘추시대의 월나라에 와있다
흉통으로 얼굴을 찢부리면
뭇 사내의 애간장을 녹이던 여인을 만났다
서리맞아 붉은 성애 낀 홍시의 맛,
슬픈 고소함과 변곡점에 서있는
뜨거운 샤벳트.

 

 

 

 

김옥종

 


김발에서
뜯어낼 때 찢긴 상처의 조각이
해우가루다

품어 줄 수 없는 가장 자리의 맛을 보았는가
곱창 김 해우가루에 석화를 넣어 냉국을 낸다
김의 데인 상처의 맛이 푸르다

그리움은 갯것에서 왔으니
검푸르다

 

 

김옥종 시인

 

2015시와경계로 등단
한국인 최초 K-1이종격투기 선수
광주전남 작가회의 회원
시집민어의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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