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화(北向花)
그늘 방향으로 꽃이 피어나고 발이 저절로 북쪽으로 나아갔다
누군가 물었다 왜 북쪽을 향해 사느냐고 방향을 막을 방법이 없느냐고
대답 대신 꽃이 활짝 피었다
햐얀 꽃잎을 북쪽에 덧대 한장씩 햇살을 등지고 피워내는 봄, 목련처럼 북쪽으로 가고 있네 어느 신발에 신겨질 수 있을까 오늘을 거슬러 걸어들어가
귀가 후 밤이면, 신발을 벗어 진열장에 넣고 꺼내지 않았다 어둠을 펴서 흩어진 재료를 넣고 웅크린 허기를 발 없는 신발 속에 꾹꾹 구겨 넣다가 굴려보면, 색과 향기가 도르르 말릴 것 같아
무릎을 세운 몸이 접혀졌네 하루를 폈다 접는 장치가 있으면 좋겠네, 싶은 순간
북쪽으로 저절로 몸이 말렸다 발이 북쪽으로 접히고 있다
눈총 맞는 여자
열린 대문과 넝쿨 장미와 발자국 가득한 골목길 늘 이 골목을 지나다니는 그 얼굴 그 얼굴 속에 오늘도 팔다리와 옷가지가 바람개비처럼 도는 여자가 있다 염소뿔이 제 그림자를 치받듯 엉덩이를 이 뿔 저 뿔 좌우로 튕기며
걸음이 모인 쪽으로 향한다, 지나다니는 얼굴들의 시선은 늘 그 여자 쪽으로 돌아간다
끝없이 벗어나고 싶은 것들을 불러보지만 재산과 자식도 포기하고 바람만 일으키는 여자
눈총을 그렇게 맞고도 피 흘리거나 쓰러지지 않는 떠돌다 우연히 들어온 남자를 한자리에 붙박아 놓은 여자 얼른 일 마치고 가서 남자의 그림들과 함께 잠드는 여자
모든 골목길의 바람은 흔들림을 가졌다
어둡게 겹쳐지는 얼굴에서 읽는 밤의 부피가 점점 짙어진다 골목 끝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신발의 리듬이 경쾌해진다 세 번째로 찾아온 사랑을 위해 칠십 세까지는 벌어 먹일 자신 있다며
일회용 음식과 과일들을 실어나르는 여자 남자 입으로 빨려들어 가는 음식을 보며 행복이라 믿는 여자는 바람의 피를 나누어 가졌는지 모르는 일
비웃음과 부러움으로 가는 시선의 경계에서 대문 밖은 정지된 화면 여자와 남자, 바람과 바람개비가 만드는 얼굴을 보는 순간 네 번째 사랑을 기다리는 여자가 나였나?
매연, 비명, 비웃음, 담배연기가 빠져나간 골목은 그림 그리는 거친 손과 꽁지예술머리를 꽁꽁 감추고 사랑이란 말조차 귀찮은 종종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황정숙 시인 인천광역시 강화 출생 2008년 <시로여는 세상>으로 등단 2012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로 시집 <엄마들이 쑥쑥 자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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