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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라사 / 김 윤 한

이서빈 시인 | 입력 : 2021/04/13 [09:39] | 조회수 : 59

李書彬 詩人이 읽은 감성

ㅡ영주신문 연재시 재록

 

 

제일라사 / 김 윤 한

 

 

양복점은 기차역 맞은편에 있었다

바람의 존재를 알려주는 수양버들이 서 있었다

유리문 안에 한가한 양복들이 걸려 있었고

키가 큰 주인은 손님이 오면

줄자를 풀어 살아온 이력을 재곤 했다

몸에 꼭 맞는 옷을 위해서

조심조심 가위질을 하고 바느질을 하고

수많은 날을 그렇게 보내곤 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손님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양복을 입고

약혼사진을 찍고 아름다운 드라마를 꿈꾸곤 했다

그러나 주인의 허리가 굽어질 무렵부터

사람의 몸에 옷을 맞추는 대신

기성의 틀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지 못하면

낙오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지은 옷을 입은 신사들도

휠체어를 타고 낡은 시간속으로 들어갔다

창틀에도 먼지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녹슨 세월이 간판 위로 흘러내렸다

소방도로 때문에 수양버드나무가 베어질 무렵

키가 커서 오히려 쓸쓸한 주인도

요양원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후의 소식을 아는 이는 없었다

 

 

 

……………

 

김윤한 시인의 제일라사를 읽으며

우리도 한 번쯤 녹슨 시간을 꺼내 볼 일이다.

키가 큰 주인은 손님이 오면

줄자를 풀어 살아온 이력을 재곤 했던 사라진 시간들을 다시 불러내어

잊혀져가는 녹슨시간을 깨끗한 천으로 닦아 봐야겠다.

태어나고 사라지고 또 태어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는 시간을 헤엄치며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는 현대인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나간 시간을 뒤돌아보며 값진 삶이 무엇인가를 돌이켜보게 하는 시이다.

줄자로 재단하던 시간은 흘러가고 이제

인간의 몸이 옷에게 맞춰야 하는 시대.

지금은 로봇이 인간을 위해 수고를 하지만

머지않아 인간이 로봇에 지배당하는 때가 오리라는 심오한 철학이 들어있는

한 편의 시.

우리 모두 과속으로 속도만 키우지 말고

속도를 세우고 차 한 잔 마시며 제일라사를 흥얼거려보며 삶을 키우자.

 

 

 

 

김윤한 시인

*경북 안동 출생

*안동대 대학원 국문과 수료

*1984시로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 1995자유문학 등림

*시집 세느강 시대’(2005) ‘무용총 벽화를 보며’(2011) ‘무지개 세탁소’(2016)

산문집 ‘6070이야기’(2013), 콩트집 ‘3호차33호석’(2013)

*2011년 제11회 자유문학상

*한국 자유 문인협회·한국 현대 시인협회·한국 경기시인협회 이사

국제PEN한국본부·한국문인협회 회원

*자유문학 편집동인

<글밭>동인, <맑은 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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