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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곳, 낯선 곳, 먼 곳의 상처와 자전적 고백

채인숙의 시

이화영 시인 | 입력 : 2021/04/15 [09:39] | 조회수 : 73

 

넓은 곳, 낯선 곳, 먼 곳의 상처와 자전적 고백

 

채인숙의 시

 

 

이화영

 

  

 

1. 사랑 이면의 죽음과 침묵하는 글쓰기

 

시에서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어떤 의미로든 인간의 삶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 상상력에 있어 공간은 추상적이고 현실적인 공간과 차별성을 갖는다. 하이데거는 집에 거주한다는 것은 실존의 기본적인 원리라 했고, 바슐라르는 집은 기하학적인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인간과 집은 역동적인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집은 실존적인 자의식이 출발하고 확대된다는 점에서 자아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며, 시의식의 행보를 추적하는 중요한 재료를 제공한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서로 다른 공간, 다른 민족들의 시선과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공간은 거기 있으며 해석과 관계없이 무엇인가 찾아보지 않을 수 없으며, 공간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전적으로 주관적이거나 아니면 객관적인 기준들이 있다. 인간은 중심점의 자리에 확장된 나만의 고유영역이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처소에 들고 싶어 하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한국여성시사에서 여성주의적 고백시의 대표적 시인으로는 김승희· 최승자· 김혜순· 이연주· 박서원 등을 언급한다. 위 시인들은 1970~80년대에 등단하였으며 이연주와 박서원시인은 작고하였으며, 몇 시인은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위 시인들은 시 속에서 일상 구어체를 사용하고 기존의 서정적 형태를 벗어나 산문체를 사용하는 등 과감한 시도를 보였다.

채인숙 시인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교포이다. 시인에게 자카르타는 무한한 공간 감각이며 무생물적인 물질의 세계에 실재성을 불어 넣는 장소이며 그녀만의 방으로서 글쓰기의 욕동을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하다. 채인숙 시인은 오브제의 공간들로부터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오브제를 응시하며 시적인 사유와 연결시키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자신의 상처와 치부를 과감히 드러내며 교포로서 겪는 통증과 고독을 절박하나 쓸쓸한 어조로 고백하고 있다.

 

시체꽃이 피었다는 소식은 북쪽 섬에서 온다

 

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를 뿌리며

가장 화려한 생의 한때를 피워내는

꽃의 운명을 생각한다

 

어제는 이웃집 마당에서 어른 키만 한 도마뱀이 발견되었다

근처 라구난 동물원에서 탈출했을 거라고

동네 수의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밀림을 헤쳐 만든 도시에는

식은 국수 면발 같은 빗줄기가 끈적하게 덮쳤다

 

밤에는 커다란 시체꽃이 입을 벌리고

도마뱀의 머리통을 천천히 집어삼키는 꿈을 꾸었다

 

사람들은 어떤 죽음을 목도한 후에 비로소 어른이 되지만

삶이 아무런 감동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에

번번이 놀란다

 

납작하게 익어가는 열매를 따먹으며

우리는 이 도시에서 함께 늙어갈 것이다

 

꽃은 제 심장을 어디에 감추어 두고 지려나

 

여름 가고 여름 온다

 

여름 가고 여름전문

 

 

이방인들이 그들의 묘지로 당신을 데려갔다

서둘러 이름을 새기고 하얀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

당신이 죽고서야 떠나왔다는 먼 나라의 당신 이름을 보았다

 

남은 생은 무덤에 이마를 대고 살아가야지

낡은 필름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묘지 위로 햇볕이 내려앉았다

 

우리는 함께 잊자고 했다

잊을 수 있는 것들이 아직 있어서 좋았다

 

당신이 살았던 나라의 항구에는 계절마다 다른 꽃이 핀다고 했던가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쳐버리던 아침

계절이 바뀐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생각하였다

 

화란의 말을 잊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는 편지를 쓰지 못했다

눈먼 자바의 물소처럼 소리를 죽여 혼자 울었다

 

무엇을 위해 떠나왔는지

누구를 위해 돌아가야 하는지

세월은 이유를 남기지 않고 흘렀다

 

당신만이 유일했으나 당신만이 죽었다

 

묘비 위로 푸른 이끼가 지붕처럼 덮여 갔다

 

나의 위로는 모든 당신이었으나

당신의 위로는 언제나 당신 눈물뿐이었다

 

 

네덜란드 인 묘지전문

 

 

인간은 유한한 생명을 지닌 생물학적 존재이며 죽음을 피할 길 없다. 그러나 죽음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곧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며 시인의 자기응시는 시에 대한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채인숙 시인은 여성성의 독특한 자각을 바탕으로 삶의 가장 내밀한 근원에서 길어 올린 사유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채인숙 시인이 통과해온 시간, 출렁이는 시간이 사계를 통과하고 있다. “시체꽃이 피었다는 북쪽 섬은 꿈틀거리는 생명의 꽃이 피는 섬이다. “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를 뿌리는 시체꽃은 꽃으로 보이는 거대한 꽃대를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 썩는 심한 악취가 실은 가장 화려한 생의 한때로서 생명이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죽음을 목도한 후에 비로소 어른이 되는것 같지만 일상은 변함없이 그대로 진행되고 삶은 아무런 감동 없이도 지속된다. 채인숙 시인은 죽음의지와 생명의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시체꽃이 피었다의 검은 상복 같은 현실의 고독과 생명의 악취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생명유지법을 찬찬히 응시하고 있다. “꽃이 제 심장을 어디에 감추어 두고 지는 것도 모르는 사이 여름 가고 여름 오는 혼란을 묵묵히 맞서며 지켜 볼 따름이다.

당신이 죽고서야 떠나왔다는 먼 나라의 당신 이름은 우리라는 이름이다. 마지막에야 그 존재를 나지막하게 알리는 이름은 생전에 많이 불러주어야 기운을 얻는다. ‘이름을 부르면 대답해줄 생생한 목소리를 잃고 무덤에 이마를 대고 살아 가야할 암흑의 과제가 남았다. 이름의 빛은 사라졌고 잊을 수 있는 것들이 아직 있어서 좋다는 등골까지 치밀어 오르는 빈사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존재로서 특권이자 그리움이기도 한 당신에게 화란의 말을 잊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는 편지를 쓰지 못하고 묘비명으로 남았다. “무엇을 위해 떠나왔는지/ 누구를 위해 돌아가야 하는지/ 세월은 이유를 남기지 않고 흘러 가는데 당신이라는 대체물을 찾음으로서 생존을 도모하는 반전은 당신 눈물뿐이었다. 채인숙 시인이 펼치고자하는 시 세계의 구성 요소들은 그의 영혼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카르타라는 공간에 이미 잠재해 있다.

 

2, 종이와 여백에 드러난 격자무늬 은유

 

채인숙 시인의 시에는 외국생활에서의 삶과 사랑과 죽음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침묵의 글쓰기를 볼 수 있다. 격자무늬 창문에 어룽대는 댓잎 같은 지조와 허무가 시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십 수 년이 넘는 외국생활을 견디게 해준 버팀목은 무엇이었을까. 잊혀져가는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침묵하는 경험들의 글쓰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열린 공간의 자발적 유배라는 처지에서 존재의 감옥이라는 억눌린 공간은, 글쓰기의 치열성을 불러왔거나 이러한 작업들은 절망과 허무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해외 교포 여성들의 상처 입은 경험들은 위로 받고 치유되어야 할 경험이지만 털어놓을 수 있는 공식적인 장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1945, 그리운 바타비아는 채인숙 시인의 등단작이다. 채인숙 시인은 자신의 존재론적 고통과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등점에 도달한 역설적인 생명력으로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정조를 드러내고 있다. 과거의 시간을 추스르며 지나온 날들을 새롭게 구성하는 그녀만의 경험에 말 걸기는 그녀의 시적 모험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1

화란의 여자들이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쓴 채 하얀 자전거를 타고 파타힐라 광장을 빠져나간다 항구 바깥에는 별의 방향을 따라 바다를 항해하는 목선들이 긴 열을 이루며 잠에 들었다

 

2

어둠의 극장에는 일찍 늙어버린 배우들이 모여 도망자들을 위한 연극을 만든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북동의 식민지에서 왔다던 청년의 이야기를 한다 어린 아내를 두고 온 그는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을 생각하느라 밤새 울었다고 그러다 잠자리를 밀고 당한 것이라고 수용소를 탈출한 그를 찾아 병사들이 그림자 극을 공연하던 와양 극장을 덮쳤다고 그건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고 청년은 화란인의 빨래를 다려주는 여인의 사랑을 거절했다고

 

3

광장 모퉁이에서 사산도를 연주하던 노인은 중세의 문양들이 어지럽게 그려진 천막으로 들어가 끝내 돌아오지 않은 옛 애인의 이름을 문신으로 남겼다 손목에 새겨진 검은 먹선의 그녀와 이별 수를 점쳐 준 점술사를 위하여 너는 국수를 삶았다 발목에 쇠뭉치를 매단 채 키보다 낮은 천장 아래서 서럽게 입을 맞추던 노인의 사랑은 한때 와양 극장의 아름다운 대본이었으나 무수히 실패한 사랑의 대사들만 젖은 면발이 되어 목구멍을 타고 넘었다

 

4

사랑을 잃은 날마다 밤은 더 깊어지고 자정이면 어김없이 배가 고팠다 그 날도 그 다음날도 바타비아의 밤은 느리게 걸어왔다가 황급히 광장을 덮쳤다 그림자 극의 마지막 대사가 끝나면 배우들은 식은 국수를 먹으러 천막으로 들었고 너는 밤새 다림질할 빨래 바구니를 받으러 광장을 나섰다 누구도 사라진 그이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습기의 무게를 견디느라 밤이 저지르는 어떤 더러운 사랑에도 눈을 감았다

 

5

당신을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했는가를 생각하는, 밤은 쓸쓸하다

 

 

*바타비아: 자카르타의 옛 이름

 

1945, 그리운 바타비아전문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표를 적네

 

촌스러운 옛날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마지막으로 훔친 대학도서관의 시집 같은

 

지퍼가 고장 난 여행 가방은

네덜란드풍 격자무늬 창문 아래 놓여 있네

 

고향보다 크리스마스 섬이 더 가까운데

올해도 가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12월이 왜 겨울이 아니냐고 묻는

너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네

 

한일합섬 야간여상 어둔 창문 아래

졸음을 눌러 쓴 너의 편지를 기억했고

먼 시간의 바깥을 서성이다

타향으로 돌아오네

 

창백한 유리창에 붙은 어린 도마뱀의 울음처럼

저녁은 감당할 수 없이

지린 습기의 냄새를 풍기네

 

격자무늬 창문마다 다른 풍경이 저물고

여행 가방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더 이상 나빠질 것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보내지 못한 편지를

먼지 가방 속에 구겨 넣었네

 

격자무늬 창문전문

 

바타비아는 자카르타의 옛 이름이며 인도네시아 수도이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지배하에 있었으나 19458월 독립하였다. 바타비아는 인도네시아의 복합적인 역사와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채인숙 시인이 고독과 성찰에만 머무른 시인이었다면1945, 그리운 바타비아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화란의 여자들이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쓴 채 하얀 자전거를 타고 파타힐라 광장을 빠져나간다/ 항구 바깥에는 별의 방향을 따라 바다를 항해하는 목선들이 긴 열을 이루며 잠에 들었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얀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빠져나가는 화란의 여자들과 별의 방향을 따라 바다를 항해하는 목선들의 아름답고 화려한 열림과 확장의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 위에서 다루었던 작품(여름 가고 여름,네덜란드 인 묘지)처럼 시종일관 침잠하고 자기만의 방에 갇혀 있다면 채인숙 시인의 시 세계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 어두운 심층만이 퇴적될 것이다. 그러나 양자 간의 탄력을 통해 그 간격이 변화하며 굴곡을 이루고 있으니 어떤 역동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둠의 극장에는 일찍 늙어버린 배우들이 모여 도망자들을 위한 연극을 만든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북동의 식민지에서 왔다던 청년의 이야기는 식민지배로 파국을 맞은 어떤 사랑의 이야기다. 실연에 대한 시인의 관심이 극장으로 이어지고 그림자 극을 공연하던 와양 극장의 이데아 구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연극은 열린 공간에서 실행되고 수립된다. “발목에 쇠뭉치를 매단 채 키보다 낮은 천장 아래서 서럽게 입을 맞추던 노인의 사랑은 한때 와양 극장의 아름다운 대본이 상기시켜 주는 것처럼 지금은 객석의 불도 꺼지고 소통할 관객도 없다. 내면의 비밀은 노인만 알 뿐, 극장에서 은밀했던 단원들의 작업은 각자 존재를 증명하는 사건으로 남았다. “그림자 극의 마지막 대사가 끝나면 배우들은 식은 국수를 먹을 천막으로 들어 가는 행위는 시인의 내면이 밖으로 투사되면서, 그 결과로 내부와 외부세계가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인 것이다. 이 절묘한 열림과 확장은 시인의 시선을 따라 대본의 여백을 상상하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채인숙 시인은 군더더기 없는 정묘한 형식과 묘사를 위한 자신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격자무늬 창문을 둔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표를 적는 시인의 행위는 시간의 가변성이 만들어내는 기억의 절대성, 가짜 속의 진실, 일상의 헝클어짐의 등이 양극으로 치닫는다. “지퍼가 고장 난 여행 가방은/ 네덜란드풍 격자무늬 창문 아래 놓여있으나 부재하고 있음을 말하기 위한 은유의 장치로 보인다. “먼 시간의 바깥을 서성이다/ 타향으로 돌아오는 끝임 없는 관계 맺기와 음율의 반복은 이미 당도해 있는 격자무늬 창문 아래 고장 난 여행가방처럼 존재와 부재의 경계에 가까스로 위치할 뿐이다. 광대한 의미의 공간이 열리게 된 이유는 종이와 여백을 응시하는 깊고도 지속적인 글쓰기에 있다.

한 편의 시가 주는 거대한 울림을 위해 채인숙 시인은 또 다른 직조법을 구상할 것이다. 절망과 고독사이의 심연에 자생하는 무수한 생물과 미생물의 역사가 그녀의 내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들에서 묘비명이 의미하는 이름과 그리움이 파생되는 열림, 또 새로운 닫힘이 채인숙 시인의 시 세계를 무한한 공간의 체계로 직조해 나갈 것이다. 그러한 시인의 방은 고독하고 웅숭깊고 쓸쓸하다.

 

 

-계간 시와경계, 2021,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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