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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범의꼬리 외 1편 / 박찬희

이경애 기자 | 입력 : 2021/04/15 [10:00] | 조회수 : 267

 

 

꽃범의꼬리

 

 

다들 무고하신지요 우리는 지금 좀 지루한 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산다는 게 마음대로 된다면야 이리 지루한 길을 가겠습니까만

잠시 짬 냄도 사치스런 요즈음인 만큼 허겁지겁 먹어치운 밥에 체하듯

늘 묵직한 아랫배로 삽니다 부디 다들 무고하시기 바랍니다

 

예년 같지 않은 계절이 저만 좋다고 오고 갑니다

꽃범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사실 우리는 꽃범은 몰라도 범의 등짝에 올라타고 위태위태 삽니다

꽃이라더군요 꽃범은 어디가고 치켜 든 꼬리가 순둥이처럼 살랑거립니다

꽃범의꼬리를 살살 쓰다듬어봅니다

손버릇이 몸 사린 꽃범을 불러낼까요

 

무엇 하나 건드리면 온통 난장판이 되는 세상에서

저 꽃범이 몸 낮춰 숨은 것처럼

대바늘처럼 곧추선 신경을 좀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꼬리로만 살아도 꽃 같은 생이라 하겠습니다

병원 대기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지루한 하루가 갑니다

진단서에는 망막병증이라 쓰여 있더군요

꽃범의꼬리를 보는 날이 짧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꽃 간혹 피어 있어 꼬리치는 걸 보는 낙이라면

길이 지루해도 먼 거리 지금처럼 주옥 계속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부디 모두들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가면

 

 

벗겨진 비늘 한 조각 한 조각이 나뒹구는

늙은 나무 아래 드리워지는 어둑한 그늘 같은 것

 

회귀하는 새떼들이 흘린 노쇠한 깃털이

눈 하나 깜짝 않고 눌어붙는 비 오는 날 오후

낯이 근질거리는데 긁을 수가 없다

 

살아가는 법을 레시피 삼아 믹서에 갈면

어떤 것은 질기게 남아 뱉어내야하지

혀끝에는 별날 것 없는 빈한의 맛이 남는다

 

가면 뒤에서 남몰래 씹던 물컹한 살점은 비릿하고

덕지덕지 붙은 미련을 버리기는 비릿함을 뱉어내기보다 어렵지

질기게 붙는 그림자를 떼어내 백주白晝의 중턱에 걸어 말려야할까

 

호들갑스런 오페라의 막이 내려지고 가면을 벗을 때

객석은 더 이상 가면에 환호하지 않을 것이다

극이 끝나면

숨 막히는 지문地文은 개방하는 것이 좋다

이제 무도회를 끝낼 때가 되었다

그늘의 시간엔 버거운 가면보다 민낯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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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 시인

문학의봄신인상·추보문학상·충청남도인권작품상(3,장려가시문학상·대한민국독도문예대전(8,입선문학의봄작품상(대상영종도서관문예공모전(장려사육신공모전(2,시조,입선경북일보문학대전(7,가작안양문화예술재단창작시공모전(우수상), 문학의봄작가회 회원·시산맥 특별회원, 시집<시간의 화석>(보민),<혼의 깡마른 직립>(시산맥),<너무 짙은 유혹>(문학의봄). 호는 果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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