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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외 9편/ 권혁모

이경애 기자 | 입력 : 2021/05/05 [10:27] | 조회수 : 240

 

 

 

 

첫눈

 

 

1

첫눈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란다

눈망울 속 고인 사랑이 홀씨로 떠다니다

연둣빛 당신 가슴으로

뛰어내리는 거란다

 

첫눈은 겨울에만 오는 것이 아니란다

해종일 반짝이다 소등한 자작나무 숲

목이 긴 기다림 끝에

등불 들고 오는 거란다.

 

2

금모래 긴 강변길 손잡고 걷던 첫눈아

헤매고 헤매어서 마주치는 바람 속에서

 

산목련

새하얀 날들이

흔들리며 내려온다.

 

 

 

작별

 

 

딸아이네 멀리 보내고 돌아오는 공항로

스치는 바람소리 긴 침묵 정적 속에

아내도 눈물 감추며 먼 창밖만 바라본다

 

생트집 손녀 등원 길 달래고 달래던 날

나 안고 가면 안 돼? 아직도 팔이 아파?”

가슴 꼭 안아 줄 너를 색종이로 접는다

 

단단히 마스크 하고 출국대 앞 손 흔들더니

니네들 떠난 몇 밤을 둘이서 잠 못 이루던

이제는 텅 빈 의자가 달빛 내려 곱구나.

 

 

 

 

 

그냥 두어도 될 걸 또 건드리고 말았다

속삭임도 느껴야 할 한 겹의 상피세포를

미워도

미워하지 않으며

사랑으로 닦는다

 

달팽이관 어디쯤에 그리움이 사나 보다

한쪽이 불편하면 다른 쪽도 따라 불편한

서로가 그리며 살아

사뭇 아픈 관계여

 

 

 

한지창

 

 

햇살끼리 모여 앉아 정겨워라 장지 밖

가만 보면 문이 아니네 인동꽃 피는 시절

그림자 흐린 불빛도 어디 보일 것 같다

 

별은 대책도 없이 감꽃으로 지는 뒤란

꽃창포 눈웃음이며 떨리는 숨결까지

초롱 등 창가에 기대면 들릴 것도 같다

 

펼쳐서 풀질하고 황국黃菊곱게 앉혀 두면

시린 관절 마디마디 문풍지로 우는 겨울

톡 톡 톡 두드리는 봄 누가 올 것만 같다

 

 

 

패랭이꽃

 

 

밤새 누가 옮긴 걸까 평화시장 단추 가게

추억의 박물관이 눈인사를 보내는데

잃었던 단추를 찾아 손전등 비춰 봅니다

 

풍랑 다 밀어 보낸 나뭇잎 배 은하를 지나

거기 반달과 여기 반달이 서로 나누어 갖듯

보랏빛 단추의 꿈이 많이도 닮았습니다

 

삼천의 삼천을 헤매 만난 우린 보헤미안

옷깃 스친 빈자리가 흰구름으로 가고 있는

하늘 창 반쯤을 열고 당신 참 그리워합니다

 

 

 

자작나무에게

 

 

나 한때 수비에서 자취하고 있었을 때

 

그대 가을 편지가 창틈으로 날아들어

 

밤새껏 잠 못 이루던 그날이 생각나는가 

 

 

나 깊은 꿈결이었을 때 초병으로 지켜 서서

 

손 흔들며 흔들며 별을 불러 모았던

 

그날 밤 이니스프리를 아직도 기억하는가

 

 

 

비 내리는 호남선

 

 

서편제가 구부려 놓은 아득한 철길 따라

하늘이 오솔길을 연 그리로 가고 싶다

갈수록 눈빛이 흐려 내사 자꾸 그리워

 

날은 이미 저물고 모기떼 날아들어

속살까지 쏘여 붉던 최루의 건널목 지나

툭하면 혼자서 울던 동백꽃을 만나야지

 

삼학도 됫술 주전자야 너도 잘 있느냐

섬초롱 버선발로 곱게 딛던 겨울밤이

흰구름 손톱달이 떠서 파도 소리 들린다

 

 

 

미역

 

 

당신 친정 가고 없는 날 처음 씻어 보는 미역

 

거친 바다일수록 더욱 연한 몸짓이 되는

 

멍들어 얼룩진 줄기를 이제야 두 손 잡는다

 

무심히 감싸 안은 순례의 파도를 넘어

 

헹굴수록 떨어지는 푸른 시절의 잎들

 

가슴속 물그릇 안에 회오리로 돌고 있다

 

 

 

추석 달

 

 

손주가 잡아 끌며 달을 보러 가잖다

그렇지 네 달은 거기, 내게는 가슴에 있네

그리움 마중하는 오늘 참 오래 보고 싶은

 

생시인가 하였더니 금세 꿈속이고

언제나 제 뒤에서 지켜만 보시더니

아득히 허공 다리 건너 문밖에 와 계신다

 

넉넉히 아주 넉넉히 탑을 쌓던 그 밤이

구름인 듯 별빛인 듯 눈이 부신 객창에서

고와서 서러운 것도 당신 그늘로 젖는다

 

 

 

새벽 강

 

 

때론 수련꽃이 물잠자리를 유혹하거나

버들치 잠결을 깨운 아라비안의 일출 혹은

물새 알 훔치다 들킨 동화 속인가 했어

 

아니었어 안개 잔잔한 홰나무 밑 잠은 깊고

폭풍이 지나는 듯 검은 눈빛들의 축제장

종속從屬을 달리한 신들이 떠돌았어 한가히

 

살아서도 죽어서도 불타는 건 같네만

살아 불타는 이는 감춘 몸 여기 와 씻고

떠나도 못 떠난 이는 매운 연기에 휩싸여

 

수채화 붓을 씻던 회색 물통 생각나네

눈 감으면 켄트지에 덧니로 돋은 색상들아

손잡고 함께 잘 가라 긴 침묵의 갠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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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모 시인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1984),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작품상, 한국꽃문학상 특별상, 월간문학상.

시집 오늘은 비요일, 가을 아침과 나팔꽃, 첫눈,

한국문인협회 안동지부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문인문학정보화위원장, 양천문인협회 감사, 영축문학회 이사, 가람시조문학 이사, 

<오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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