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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유목을 떠나고 외 1편/ 석미화

이경애 기자 | 입력 : 2021/05/07 [10:27] | 조회수 : 155

 

 

 

 

당신은 유목을 떠나고

 

 

차라리 당신은 유목을 떠나고

 

내가 뭘 쓸 수 있을까 생각하는 밤

 

당신의 남쪽에 머무르는 동안

 

어디까지가 꿈인 줄 모르고 흔들리는 나날들

 

백리향 소식을 전해오고

 

당신의 고단을 엿본 후 쓰는 일에 허공을 맡기고

 

떠도는 밤은 검은 물과 돌 같은 밥이 기다린다고 새까맣게 그을린 달이 뜬다고

 

나는 깨끗한 물을 넘치게 흘려보내고 잠을, 허비하고

 

더 이상 쓰지 말아야지 생각할 때마다 누런 천막이 내 이마에 진을 치고

 

오직 황혼에 잠시 걸터앉을 수 있는, 당신이 참담해질수록

 

꽃의 그늘은 확장되고

 

쉰 목소리의 북쪽, 몇 번의 붉은 무릎으로 피어나고

 

꽃도 잠결에 지나지 않는다 꽃 속으로 사라져 버릴 듯,

 

써지지 않는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구름의 유목을 떠났던 베두인족 사내가 생각나고

 

순례를 마치고 올

 

벌판의 바람에 대해 나는 듣지 못하고

 

당신의 검은 눈 속에서 죽은 별이 서걱거리고

 

 

 

몸에 못이 박히면 눈이 생긴다

 

 

주먹을 쥔 한 소녀가 잠에 빠져 있다

소녀는 돌을 매단 채 물속으로 내려선다

 

스모키 화장이 번진 눈가

새어 들어오는 빛을 잡다가 놓친다

 

새벽 지하철 안, 소녀는 바닥에 처박힌 듯 별안간 눈을 뜬다 울음은 입 밖으로 흐르지 못한다 진흙 인형처럼 물결을 붙들다가 실눈을 뜨면 뱀이 지나가는 열기 검은빛의 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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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미화시인

1969년 경북 성주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2010매일신문신춘문예로 등단

2014시인수첩신인상수상

2019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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