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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드 야트라 외 1편/ 김이응

이경애 기자 | 입력 : 2021/06/11 [10:24] | 조회수 : 61

 

패드 야트라

 

 

두 발로 세계의 길이를 재며 등고선을 따라왔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오른발과 왼발로 길이 없던 숲을 가르며

잘 물려있던 골짝마다 득음의 경지였다

암만 봐도 짐승의 몸을 가진 산이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나는 능선 같은 삶이다

단순한 깨달음이 가장 힘든 길임을

계절이 떠나간 빈 둥지에서 읽는 해탈, 지구가 돌고

새들이 우듬지를 돌고 돌아 별들은 돋아나고

답이 없는 화두를 전하는데

우리는 배낭에서 얼마쯤의 무게를 덜어내야

남은 시간을 재촉하는 물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개미들이 줄지어 나이테 속으로 들어간다

제 몸에 채찍을 휘두르며 허벅지를 단단하게 키웠어도

개미에게 길을 내어주고 숲이 된 나무들

아주 멀리 걸었어도 뿌리는 이승의 내면이다

깊은 호흡 속에 낙엽들의 기도가 쌓여간다

땅에 닿은 모든 간절함이 꽉 쥔 주먹을 펴고

신앙이 된다, 지도를 펼쳐 놓고

손가락으로 더듬는 지름길은 만 분의 일의 축척,

우리가 걸어온 길은

달이 팽이처럼 더듬어 온 풀잎의 면적,

손톱만한 세상 속에 개울과 등산로와 쉼터가 있다

한 겹 한 겹 등고선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내리막이 오르막임을 믿게 되는 순례자들

손바닥에 경전을 새기며 순한 짐승이 되어간다

불이문 벽화 속으로 옅은 빛이 길을 터준다

 

 

 

은어의 집

 

 

처음부터 물은 나의 집

천정부터 얼어붙는 겨울이 다시 오고 있었다

우리들의 계절은 춥고 낮았지만

하늘에선 신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저녁은 끝까지 위태롭고

그들에겐 시시하고 지루할 텐데

아직 단단하지 않은 구름에다

구멍을 내고 싶어 틈틈이

어둠의 높이를 재보며

입김으로 수은주를 굴리는 날씨,

꼼짝 않는 구름과 살 떨리는 바람

가만히 있을수록 팽팽해지는 실랑이에

뜬 눈을 더 부릅뜨고

햇볕 닿지 않는 바닥으로 붙어가는

불침번의 교대 시간,

깨진 유리병처럼 가라앉은

우리들의 두려움은 깊고 길었지만

가끔은 물풀들의 춤사위에 숨어

몰래 짧은 사랑도 나누웠다

유리창을 기웃대던 눈이 감기고

지붕을 밟고 다닌 신들이 사라진 다음에도

흔들려도 쓰러져도 물은 나의 집

얼어도 죽어도 우리들의 집

 

 

 

 

 

 

▲김이응 시인(본명 김영욱)

2021<시산맥>으로 등단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문학으로 박사 수료.

지은 책으로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교보문고 2007), <그림책, 영화를 만나다>(교보문고 2010) 등이 있다.

현재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번역하며 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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