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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문장 외 1편/ 서정임

이경애 기자 | 입력 : 2021/06/11 [10:41] | 조회수 : 143

 

밤의 문장

 

 

블랙 아이스를 밟았다

속도를 놓쳐버린 시간이

사정없이 미끄러지는 중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익명을 자처한 얼굴은 알 수가 없다

아는 얼굴이거나 모르는 얼굴이거나

눈송이 같은 문장을 쓰는 얼굴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얼굴

 

문장에 문장을 단 댓글은 냉혹함이었다

무차별 대중을 향한

이유 없는 분노를 휘두르는 칼끝의 번뜩임이었다

 

급브레이크를 걸었던 전신이 불길에 휩싸인다

눈앞이 캄캄해진 한 영혼의 발목을

무참히 자르고 지나가는 비명悲鳴

 

시원하게 내달리는 속도를 내주는 길은

언제 어디서나 한 번쯤 급속한 감속 운행을 요구한다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대책 없는 시간이 문장을 내린다

게재했던 문장을 무참히 내리쳤던 저

흔적 없이 사라지는 편향된 경도

 

막혔던 길이 뚫린다

그 신 없는 신앙 같은 블랙아이스가

비명碑銘을 세웠던 자리에

또다시 쌓이는 눈송이 같은 댓글들

 

 

 

 

 

한줄기 법문을 써 놓은 주련처럼

깎아 놓은 감들이 걸려있는 식당 안

산채비빔밥을 먹는다

나물과 나물을 넣어 섞으려하자

누군가 저분을 달라한다

저분? 저분이라니

식당을 둘러보는데

누군가 꺼내주는 젓가락

저분이 젓가락이다

젓가락이 저분이다

저분이라면 어느 한사람 높여 부르는 말이건만

그럴 만도 하다 그렇게 불러도 되겠다

나란히 생각의 끝을 맞춰보는데

저토록 높임말로 불리고 불려도

결코 흐트러진 자세로는 일하는 법이 없는 저분처럼

사계절 지리산을 품었어도 언제나 흔쾌히

내 안의 거습*이 되어주는 산나물들

 

 

*거습: 습사를 없애는 치료방법을 통틀어 이르는 말.

 

 

 

 

 

 

 

 

▲서정임 시인

2006문학선등단

2012년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2020년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시집 아몬드를 먹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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