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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에 어리는 봄볕과 눈물을 기후라고 불렀다 외 1편/ 최세라

이경애 기자 | 입력 : 2021/06/15 [09:48] | 조회수 : 48

너의 눈에 어리는 봄볕과 눈물을 기후라고 불렀다

 

 

공연이 끝나자 너는 절반 쯤 광택이 날아간 기타를 둘러멨다

 

굿 이브닝, 피에 중독된 노을이랄까 서늘한 괴담에 중독된 저녁이야 희부윰한 기운이 뭉쳐있는 하늘에 창백한 별이 돋아나고 있어 작별 키스를 위해 기타 케이스를 내려놓을 것까진 없어 이번 겨울엔 이 커다란 도시의 영혼 중 누구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야 안심해 사람들이 죽어나갈 테지 안심해 예쁘게 치장하고 누워 어떻게 죽을 건지 골몰하게 될 거야 그게 너일 수도 그게 나일 수도 그런 생각 끝엔 나쁜 천사들에게 한 모금의 독주까지 뺏기게 될 거야 떠난 마음들을 부검해야 하는

 

천사들에게도 취해야 할 이유가 있겠지

 

오늘 저녁을 위해 양초를 만들었어

대접에 파라핀을 부어 굳히고 심지에 불을 붙이면

눈동자보다 눈동자의 흔들림이 빚어내는 그림자가 커서

 

너는 울지 마

기타 줄은 갈아야 하겠더군

하나가 끊어졌지만 통째로 교체하는 게 좋겠더군

손가락 사이에서 망가지는 기타 피크는 던져 버리고

편지는 보내지 말고

 

후회라는 말 따위로 내 절망에 흠집 내지 말아 줘

 

비는 비의 감정으로 곁을 지나고

나의 멸종은 네가 떠난 뒤에만 이루어질 것이어서

창백한 별이 드리우는 그늘 아래

 

공연은 끝났고 너는 기타를 둘러멨지 아직 이 도시에는 취소된 공연 포스터들이 날아다니고 네가 연주하던 소극장의 티켓이 찢어지고 우리 추운 심장으로부터 더 추운 심장으로 공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너의 이름은 숲, 나는 끝내 알 수 없던 네 본명을 지어 불러 보았다 너의 얼굴에 감도는 봄볕과 눈물을 기후라고 불렀다

 

 

 

사계似界

- 가을

 

 

거울의 등을 두들긴다 뱀이 토해낸 듯 귀때기가 빨갛고 온몸이 독에 불은 새가 튀어 나와 제 깃털을 하나씩 뽑아 던지며 가생이에 운다 가을은 거울에 손을 넣어 더 많은 새를 꺼낼 수 있어서 인간과는 다른 계절 수없이 반복되는 음악이 텅 빈 제 몸을 만지는 순간 비가 온다

 

이런 날 너는 판이 튀듯 오래 반복되는 음색 어쩌면 바닥에 닿아 빗물이 튄다 물 튀김이 희미하게 퍼진다 퍼져서 복사뼈로 밀려든다 너는 속삭인다 비둘기가 비보다 먼저 떨어져

 

너는 다음 말을 찾는다 너는 무슨 말로 이어야 하나 

 

독니를 붙들어 줘 거울이 멈출 수 있게

 

거울의 앞면은 끊긴 물 흐르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물 가을은 악어에서 나무껍질까지 매끈하게 비춰 주고 네가 손뼘으로 나의 우는 뺨을 재는 동안

 

어쩌면 단풍은 밤새 어둠의 불티를 뒤적이는 중이다

 

 

 

 

 


 최세라 시인

 2011 시와반시 등단

 2015년 시집 복화술사의 거리, 2020년 시집 단 하나의 장면을 위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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