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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외 9편/ 차용국

이경애 기자 | 입력 : 2021/06/15 [10:24] | 조회수 : 236

 

 

바다

 

 

비 그친 국사봉길

해무에 취한 길

물 빠진 갯벌에 남겨진 배여

누구를 기다리나

한적함과 쓸쓸함마저 다 비우고

오히려 평화로운 무의도 앞바다

그 바다에 가고 싶다

가서, 그 옆에 누워 그의 말을 듣고 싶다

 

 

 

등대

 

 

하늘과 바다는

흰 구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미소 다정한 연인이었네

 

시선 끝 수평선에 불꽃을 피우고

돌아온 지친 해를 토닥이며

소망 가꾸는 연인이었네

 

한순간 스쳐 간 바람이었나

한 시절 심하게 앓은 열병이었나

붉은 눈물 뿌리며 쓰러진 불새*

 

이별의 이유도 모르는 해맑은 얼굴로

별이 되어

아픔도 슬픔도 없는 세상으로 떠났네

 

수평선 너머 별나라에 가면

영원히 반짝이는

어린별을 만날 수 있겠지

 

부서진 파도의 파편 같은 추억을 찾아

그리움의 불꽃처럼 맞추면

별나라에서도 볼 수 있겠지

 

서늘한 파도 소리 움켜쥐고

장승처럼 시린 눈으로 지키는 가슴

이별 없는 세상을

 

 

* ‘노을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

 

 

 

고려산 연가

 

 

산새는 바다가 그리워

수평선 구름 위에 노을집을 지었네

물새는 참꽃*을 연모해

산마루 나무 위에 바람집을 지었네

 

한 번만이라도 아주 짧은 순간만이라도 볼 수만 있다면

내 가슴에 남은 단 한마디는 사랑이라고 전해야 하는데

 

산과 바다의 경계에서

하염없이 마주 서서 바라만 보다가

그리움도 쓰러진 언덕

추억은 세월 스치는 불나방이었네

 

잠시만이라도 정말 짧은 순간만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내 영혼에 남은 단 한 방울 사랑마저도 주어야 하는데

 

 

* 진달래꽃

 

 

 

바지락 칼국수를 먹다

 

 

엷은 해무가 걷히자

포구의 곡선에

통통한 바지락을 풀어 놓은 바다

나는 해변에 앉아 바닷소리를 듣는다

후루룩후루룩

 

바다를 건너온 만선의 추억은

맛깔스럽게 쌓여만 가는데

내 가슴엔 뜨거운 비가 내린다

바람에 떠밀려 하얗게 부서지는 멍든 파도

그리움이 허기진 사구에 쌓여만 간다

 

배를 불룩 내밀며 허세를 부리는 텅 빈 쌀독

주름진 바지락을 움켜쥐고

갯벌에서 서둘러 돌아온 엄마

장작처럼 메마른 손으로

가마솥에 토닥토닥 불을 지폈다

 

솥뚜껑을 흔드는 연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낙지발 같은 면발을

한 움큼 솥에 던진 엄마는

이팝꽃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바다의 포승줄에 묶인 오월의 숙명이었다

 

세월은 화려한 바다의 치세(治世)를 쓸어갔다

말없이 물러난 텅 빈 바다

돛단배는 지친 갯벌에 쓰러져있는데

엄마 거친 손맛 아른아른

허기가 밀려온다 엄마!

 

 

 

바다가 멀리 물러서는 것은

 

 

해가 뜨면 늘 그랬던 것처럼 떠나는 바다

그를 배웅하는 의전행사는 지루했다

그가 내어준 갯벌은 시장처럼 번잡했다

그가 돌아와 곯아떨어진 해변에는

파도 소리만 우레처럼 부서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떠나지 못하는 바다

성벽 같은 방파제에 부딪쳐

하염없이 어슬렁거렸다

갯벌엔 늙고 쇠약한 파도의 가쁜 숨소리만

저린 추억을 파고들었다

 

주름진 해변을 흔들며 노을빛이 쏟아지는데

갯벌에 들어서면 아버지 냄새가 난다

해 뜨면 떠나갔다 해 지면 돌아오는

속 깊은 마음

바다가 멀리 물러서는 것은 사랑이었다

 

 

 

다 사랑이다

다 사랑이다

떠나는 것도 남은 것도 다 사랑이다

 

젖을 다 빨아 먹고

떠나는 파도를 배웅하는

마른 손등처럼 납작한 젖무덤

서럽게 파란 남은 세월도

돌아보면 다 사랑이다

 

다 그리움이다

떠나는 것도 남은 것도 다 그리움이다

 

*을 다 내어주고

떠나는 노을을 바라보는

터진 발등처럼 거친 바위섬

모질게 환한 남은 추억도

눈 감으면 다 그리움이다

 

* 갯벌의 충청도 사투리

 

 

 

세월의 그림자

 

 

구월의 썰물이 떠난 가슴

시월의 밀물이 거침없이 채워지는데

장화리 바다는 노을을 만들지 못하고

잃은 달빛 그리워

투덜투덜 파도만 탓하네

 

초지를 넘어온 갈매기

동막 해변의 먹구름 후기를 읽으며

끼륵끼륵 울고 있는데

비에 젖은 지친 날개를 펴고

어디로 가야만 하나

 

사랑 떠난 바다에 무슨 추억 있다고

파도는 저렇게 속절없는 사연을 노래할까

너도 가고 나도 가는 등 굽은 해변

멀어지는 발자국처럼 긴 그림자

그것이 이별, 세월이라 하네.

 

 

 

삶을 위로하라

 

 

해변을 달리는 바람을 맞으며

삶은 푸른 바닷물에 눈을 씻고

흰 구름을 담는다

파도가 쓸어간 갯벌은

비우고 또 비우니 오히려 싱그럽다

 

바다 저편으로 떨어지는 해

하늘과 바다를 삼키며 노을을 펼치면

삶은 산봉우리에 걸터앉아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쉼터를 찾는다

 

그래, 우리도 우리들의 쉼터로 가자

가서, 떨어지는 해를 붙들고

지나온 일들을 토로하라

저 구름이 다 불타도록

삶을 위로하라.

 

 

 

해운대 일출과 마주 서다

 

 

잿빛 햇살이 눈을 스치며 길을 연다

이대로 달려가면 바다에 닿으리라

가자, 남쪽 끝 태평양과 맞닿은 바다로 가서

물욕과 심욕 가득한 가슴을 씻어내고

푸른 파도만 담아 오자

 

불타는 구름에 등을 기대고 서서

수평선을 맞대고 펼쳐진 일몰의 선을 붙잡고

말없이 바다와 대면하자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일출의 기상과 마주 서자

 

바다는 냉큼 해를 내놓지 않는다

애타는 기다림도 본체만체 한참 뜸을 들인다

진통이 있는 게다

어찌, 깊이 잠든 해를 흔들어 깨우는 일이

바다인들 만만하다 하겠는가

 

드디어 바다는 해를 수평선 위로 들어 올렸다

해가 온전히 내 눈에 내 가슴에 들어올 때까지

맑은 해와 눈싸움을 한다

태평양을 힘차게 건너온 작열하는 기세

푸른 파도도 홀로면 외로우니

저 밝은 해도 함께 담아 오자

 

 

 

바다의 꿈

 

 

저렇게 일렁이는 구릿빛 근육을 봐

저게 노쇠한 바다의 허세로 보이나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세월의 잣대로 그은

빨간 선 너머 부두로 갈 수는 없지만

 

떠나는 파도를 장승처럼 바라보지 마

빼먹을 만큼 빼먹은 단맛을 누가 다시 찾겠어

파고의 거리는 고독의 크기겠지만

바위에 기대어 섬이 되라 하지만

 

바다는 늘 꿈을 꾸었지

꿈꾸는 바다는 마른 섬이 될 수 없어

구름 같은 배를 꺼내 닻을 올리자

먼지를 걷어낸 낯선 좌표가 반짝이는 새벽

 

아침마다 샛별 찾아 허둥대는 등대와

작별 인사를 하고 가자

붉은 태양 떠오르는 큰 바다로

산티아고* 기다려요 내 낚싯줄 아직 튼튼해요.

 

* 헤밍웨이 소설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 

 

 

 

 

 

 

 

 

차용국 시인

시인ㆍ문학평론가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학 석사

시집사랑만은 제자리2020.삶은 다 경이롭다2019.삶의 빛을 찾아2018외 다수

논문다문화 사회의 한국군의 과제와 역할에 관한 연구, 2013

수상; 김해일보 남명문학상, 강원경제신문 누리달문학상, 신문예 평론 부문 신인상, 새한일보신춘문예 문학상 외 다수

한국문인협회, 한국가곡작사가협회, 아태문인협회, 문예마을작가회, 신정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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