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별호 외 1편/ 안태현

이경애 기자 | 입력 : 2021/06/16 [10:01] | 조회수 : 34

별호

 

 

산을 좋아하는 벗에게

회갑 기념패에 새길 별호를 알려달라고 하니

山仰門卒이라 해 달란다

직역하자면

산을 우러르는 문의 졸개란 뜻이고

그 뜻을 헤아리자면

인간은 자연 앞에서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니겠냐는

부드러운 물음 같기도 한데

이 별호를 다른 벗이 보고는

산을 그리워하다 죽어분다

이런 것도 되네 한다

출처도 알 수 없고

무슨 의도로 그걸 별호로 쓰겠다는지

나중에야 알 수 있는 노릇이지만

다른 벗의 해석을 듣고 보니

어떤 결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춥다

산봉우리에 올라 캔 맥주 하나 비우고

망망한 너머를 바라보는 벗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죽을 수만 있다면

그 또한 복된 일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 나에겐 없다

이미 헛되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시 쓰는 일도 그냥저냥

나를 지키는 일도 그냥저냥이지만

물러질 때마다 한 번씩 불러보는

쓸 만한 별호라도 하나쯤 가져봐야겠다

 

 

 

흰 돌 검은 돌

 

 

아이가 방바닥에 바둑알을 쏟았다

흰 돌 검은 돌

바둑판에 한 알 한 알 놓일 때보다

혈기가 더 왕성해 보인다

아이들은 이 바둑알로

꽃과 나무와 집을 그려 소꿉놀이를 한다

흰 것과 검은 것으로 이루어진

무채색 세상도

아이들에겐 즐거운 놀이터

보자기가 찢어진 듯이

방바닥에 쏟아진 이 바둑알들은

숨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맞짱을 뜨자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정월 대보름날 패싸움 같다

나는 얼마나 많은 돌을 던졌던가

빗나간 것인지

누구 머리통이 깨진 것인지도 모르고

악에 받치던

그날 그 들판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검은 것을 골라내고 나니 하얀 눈밭이다

하얀 것을 골라내고 나니 검은 융단이다

흰 돌 검은 돌

이편과 저편을 수습하는 일이

꼭 저세상 일 같다

 

 

 

 

 

 

 

▲안태현 시인

전남 함평 출생

2011󰡔시안󰡕 등단

시집 󰡔이달의 신간󰡕 󰡔저녁 무렵에 모자 달래기󰡕(문학나눔 선정도서) 󰡔최근에도 나는 사람이다󰡕

산문집 󰡔피아노가 된 여행자󰡕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홍수연
김평엽
이화영
전형철
서대선
이서빈
심우기
허갑순
허갑순
마경덕
이영춘
백현국
이충재
권영옥
박일만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 집필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