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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원 속의 상사병을 위한 서설/ 정훈

『날개 돋다』- 문인선 시의 세계

이경애 기자 | 입력 : 2021/06/16 [10:53] | 조회수 : 38

 

 

녹원 속의 상사병을 위한 서설

- 문인선 시의 세계

 

 

 

정훈(문학평론가)

 

 

 너무 훤하게 보여 다가서니 그것은 어둠이요 쓸쓸함이다. 캄캄한 먹물 같은 문을 잡아 여니 불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세계가 훤하다. 너를 잡으니 너는 이미 달아나버리고, 달아나버린 줄로만 알았던 당신이었는데 어느새 눈앞에 덩그러니 서 있다. 사랑이려니 여겼으되 미욱한 그리움이요, 쌀쌀했던 그였는데 실은 순박한 정열이었다. 마음이 동하는 때 그칠 줄 모르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홀로 영원을 꿈꾼다. 그래서 세상에 늘 머묾은 변덕과 환영과 착오의 쉴 새 없는 진자운동처럼 고요할 새 없다. 그래서 더욱이 인간은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남아있는 절대 존재를 그리면서 시간을 채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있어야 할 것은 반드시 있다. 그리운 것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마음은 갈대가 바람에 나부끼듯 갈팡질팡 이리저리 기댄다. 마음이 문제가 아니고 저 풍경이 문제인 것인가? 나를 사로잡고 밀치면서 뒤흔들어놓는 대상과 세계가 나 자신을 밧줄로 꽁꽁 묶어 질질 끌고 간다. 문인선의 시는 간단히 말해, 세계가 내뿜는 입김과 이야기가 풀어내는 그림 속을 들락거리면서 그 정서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소극적 적극성의 세계 개입이요, 세계와 대상을 향해 파고드는 감성의 활성이다. 시가 주체와 대상의 미적 교호 작용이라 할 때 문인선의 시가 이에 들어맞는다. 그는 여리고 순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매만진다. 호기심이거나 혹은 관찰이거나, 시인이 어루만지는 대상은 저마다 사연이 있어서 독자들은 시인의 시선에 올라앉은 자신들의 눈동자를 의식하게 할 것이다. 사연이라고 했지만 실은 대상이 만들어내는 풍경이요 이미지다. 즉 시인은 대상의 풍경과 이미지에 잠입해 들어가는 손님이다.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시인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시로 화()하는 질료요 이와 동시에 시적 잠재성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마음을 엿본다는 것

어느 가슴에 스며든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일 것이냐

얼마나 손톱이 닳도록 움켜쥐며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소리죽여 발을 디밀었어야 했으리

그 수고로움에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없어서

오줌싸개 아이가 남긴 지도 같이

어쩔 수 없는 그림 하나

슬쩍 그려놓았다

- 빗물이 그린 그림부분

 

 빗물을 의인화했지만 기실 시인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상대의 세계 안으로 잠입해서 그와 함께 스미고 싶은 욕망이 잔잔하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시인은 이런 행위가 가슴 설레는 일이라고 했거니와, 두 대상의 스밈과 합일에서 시적 행위가 생겨난다. 시는 어쨌거나 시인이 단호하게 세계의 내밀한 곳을 건드리면서 이를 확인하는 언어의 발레다. 그렇기에 시인의 마음은 늘 비어있어야 하며, 또한 언제라도 찾아오게 되어 있는 대상의 손 내밈에 부드럽게 감응해야 하는 것이다. 문인선 시인의 시들이 보여주는 두 대상, 혹은 두 세계의 소통과 눈짓은 빗물이 그린 그림뿐만 아니라 다음의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꾸 걷고 싶었지만 갈 데가 없었다

밤마다 하늘 길을 걸어보고

숲속을 달려도 보지만

바람도 오지 않는

아침이면 눈부신 해를 보는 것만큼이나 허망했다

슬며시 내려다보다가 사라지는

구름 한 점, 찾아오는 건

찌륵찌륵, 할머니,

양로원에 들어오고부터 제 관절에 녹이 슬면서 나는

소리라는 걸 까맣게 몰랐다

애처로운 것들은 다 서로 통한다고

굳은 손끝으로 폐타이어를 응시하던 할머니

업고 뛰던 안고 뛰던

그리운 한 때 있었노라고

먼 하늘 바라보던 두 눈, 출렁,

길 건너 모퉁이 한 간판에 꽂힌다. “새싹유치원

그 아래로

재생공장으로 향하는 고철트럭 씩씩대며 지나간다

- 애처로원 것들은 다 서로 통한다고부분

 

 양로원과 폐차장의 대비를 통해 싱싱했던 지난날이 흘러 가버리고 그야말로 존재의 황혼에 접어든 쓸쓸한 정경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자주 걷고 싶었지만 갈 데가 없었다는 진술에서도 능히 상상이 되듯, 세월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지 못해 정지해 있을 수밖에 없는 노인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이는 또한 폐차장의 폐타이어가 직면한 실존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대상이 서로를 마주보며 소통하는 것은,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의미를 낳는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빚어내는 의미를 응시하는 시인의 눈이 있다. 복잡하게 헝클어진 세상의 요소들을 하나의 시적 의미로 생산하는 창작 주체로서 시인에게 위 시에서 등장하는 노인과 폐차장의 스산한 풍경은 무엇으로 다가왔을까. 그런데 우리는 굳이 시에서 의미를 찾는다든지 시적 메시지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일의 무의미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애처로운 것들은 다 서로 통한다고감지하는 시인의 마음, 그리고 이러한 연민의 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 세계의 얼굴들에서 시적 언어와 미학이 생겨날 구석이 있지 않을까. 시는 단지 대상을 보고 느낀 감정의 표현만이 아니라 칠정(七情)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절로 흘러넘치는 말들의 꼬리를 다듬고 품는 행위를 수반하는 것이다.

 

산 넘어 바람은

산사의 적막을 알았나보다

슬그머니 찾아와

덩그렁 댕그렁

적막을 노크한다

놀란 동박새 파르르

날개를 펼치고

오수를 즐기던 하늘은 뭉게뭉게

서둘러 목화밭을 가꾼다

긴 계곡을 거슬러 온 사람은

무슨 사연 있기에 부처님께 저리도 매달리는지

보다 못한 풍경이

바람을 붙들고 운다

덩덩 덩그렁 그렁그렁

- 풍경 2전문

 

 바람이 산사를 찾아오는 풍경을 형상화했다. 바람은 어디에도 있는 자연현상이다. 비단 산에서만 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시적 정황과 분위기에 집중하다 보면 바람이 마치 감정을 지닌 생명체이듯 특정한 장소에 제 의지를 발휘해서 들르는 것처럼 느낀다. 유동적이고 부드러운 공기의 흐름인 바람, 이 바람의 행보가 산사의 적막과 만나는 장면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자못 고요롭다. 여기서 은밀하게 방문한 바람과 산사가 어우러지는 적막의 풍경에서 울리는 소리에 주목한다. 필시 풍경소리임에 틀림이 없는 덩그렁 댕그렁”“덩덩 덩그렁 그렁그렁울리는 소리는 바람과 적막이 혼연일체가 되어 끝내 피어난 존재의 선연한 외침이 아닐까. 소리 안에 세계가 완성되고, 세계의 어울림이 아름다움 음악으로 화()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위 시에는 그런 평화로운 의미만이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사연 있기에 부처님께 저리도 매달리는지/보다 못한 풍경이/바람을 붙들고 있다/덩덩 덩그렁 그렁그렁대는 속세의 눈물이 있다. 산사 한복판에서도 세사(世事)의 희로애락이 묻어온다. 고요함 속에 들앉은 인정의 상흔과, 상처와 눈물을 훔쳐보며 미세하게 떨고 있는 바람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문인선의 시가 사연과 그리움을 간직한 대상에 대한 관심이 주된 시적 정조로 드러난다면, 뒤집어서 말해 그의 세계가 그만큼 말랑말랑하고 연약한 세포막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상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반응은 오히려 시적 화자의 수용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세상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시인의 감각세포는 언제라도 이 세계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한 줄기를 차지하는 음악시편들을 빗댈 수 있다. 소리를 흡수하며 받아들이는 수용성의 마음이 흘러가는 동선은 아마도 시인이 시를 쓰면서 닿고자 하는 시적 이상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빙산을 녹이는 햇살로

늘 음악으로 왔지

그러다가 영화와 명언 속에 숨어서

작은 별빛으로 오는 날도 있었지

은근히 귀를 간질이는

연둣빛 빗소리로 오더니

가슴 한가득

오로라 빛으로

아늑한 푸른 초원 속에 나를

데려갔어

날개가 돋는 줄 알았어

분홍빛 구름위에 나를 올려놓더군

머리카락 기분 좋게 날리는

코발트빛 실바람으로

백색의 꿈을 구듯

신기루가 보였어

이슬방울인 듯 눈물방울인 듯 영롱한

가슴을 열어 들판을 달려도 좋은

일곱 색 무지개로 오기도 하던

하늘에서 보내준

선물이었어

새벽마다 연꽃 같은 설렘으로 맞이한

내 영혼에 스며든

한 아름 순정한 빛이었어

- 너는 나의전문

 

 시의 화자에게 다가오는 그 무엇의 실체보다는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 무엇이 다가올 때의 느낌이나 정황이 자아내는 이미지가 우세한 작품이다. 그것은 음악으로”“작은 별빛으로”“연둣빛 빗소리로”“일곱 색 무지개로오는 선물이며, 결국은 내 영혼에 스며든/한 아름 순정한 빛이다. 우리는 시인이 이 세상과 교감하면서 시심(詩心)을 토해내는 가운데 떠오르는 이미지의 성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인선의 시는, ‘가 놓여있어야 하는 가장 이상적이고 극대화된 순정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것은 불순하고 오염된 세상의 반대편에 자리 잡은 공간이며, 악덕과 부조리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추한 사태들을 사선으로 비껴가면서 닿게 되는 이상적인 세계이다. “새벽마다 연꽃 같은 설렘으로 맞이한/내 영혼에 스며든/한 아름 순정한 빛그것은 무엇인가. 비록 특정해서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더라도 시인을 설레게 하는 것은 아마 이 세상을 아름답게 여기게 만들고, 또한 거기에서 발원한 시심으로 하여 시를 쓸 수밖에 없이 만드는 대상이 아니었을까. 이 순정한 미학주의자의 시편들은 성전(聖殿)의 모자이크처럼 여기저기서 빛에 반사된 순금이 되어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누군가 내게

중매를 섰다

 

그는 귀먹은 사내

세상의 아름다움이

다 들리는 사내

 

희고 푸른

순수의 전원에서

우리는 만났다

또르르르 또르르

바람은 흐르는 강물을 퉁겨

상냥한 소리를 내네

태양은 숲 사이로 빛나고

새들도 날아와 축복의

노래를 낭낭히 불러주네

 

(중략)

 

,

뜨거운 사랑은

폭풍이어라

세상의 티끌도

너와 나의 갈등도 부셔버려라

날려버려라

 

하늘과 땅이 한줄기 청량한 빛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네

 

이윽고 평화로운 새날을 맞이하네

햇살이 눈부시네

- 지금은 열애 중-베토벤의 전원 교향곡부분

 

 문인선의 시에서 두드러지는 순수와 상상의 행복한 만남은 위 시에서도 나타난다. 그에게 음악은 시적 상상력을 증대하는 중요한 매개이자 수단이다. “희고 푸른/순수의 전원에서/우리는 만났다는 진술에 주목한다. 필경 베토벤임이 분명한 사내와 음악을 중간다리로 해서 행복하게 만난다. 음악, 특히 천재 음악가가 작곡한 음악의 경우 사람의 영혼을 건드려서 무한한 감동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시도 음악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하고 이 세계의 깊숙한 내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점에서, 아마도 위 시는 순수예술을 대표하는 두 장르가 뒤엉킨 그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은 열애 중이라는 시 제목이 상기하는 것처럼, 시의 화자는 자신에게 음악을 선물한 작곡가에게 빠져있다. 시공을 초월해서 열정적인 사랑을 서로 나눈다. 이러한 뜨거운 사랑은/폭풍이어라/세상의 티끌도/너와 나의 갈등도 부셔버려라/날려버려라고 진술하는 화자의 마음의 단면은 과연 어떠할까. 가장 아름다운 시는 결국 음악을 닮고, 아름다운 음악 또한 결국 시처럼 사람들에게 다가설 것이다. 문인선의 시가 지향하는 상태도 아마 음악이 아닐까. 읊을 수 있는 시는 리듬이요, 리듬은 사람들의 생체리듬을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려준다. 이 점에서 서정시의 참된 의미를 곱씹어 본다. 시가 원래 원시종합예술의 한 형식에서 빠져나온 예술의 장르라면, 아마 현대시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우주적 리듬의 맹아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우주적 리듬이라고 해서 이 세계의 흐름과 무관하거나 아주 동떨어진 상상의 영역은 아니다. 모든 생명체 안에는 이 세계, 아니 우주전체의 기운과 상응하는 개체적 기운이 있기 마련이다. 시는 각자 속에 들어있는 생명의 리듬과 기운을 일깨워서 개체를 전체와 통합하려는 기능이 있다. 시인은 자신의 사소한 체험이랄 수 있는 음악 감상으로 자신도 의도하지 않았던 시의 중요한 기능 하나를 독자로 하여금 궁구하게 했다. 다음의 시를 보자.

 

어느날 네가

지구의 자전을 멈추게 하고

밤새도록 노래를 지어

불러주었을 때

내게 심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초록이 햇살에 생기를 찾고

바람도 순백의 빛깔을 띠던 날

내게도 심장이 있다는 걸 알았어

네 노래는 내 심장의 파도였어

 

비로소

하늘이 열리는 줄 처음 알았어

날고 싶었어

날개를 젖지 않아도 되었어

 

이슬 같은 눈물은 햇살에 날아가고

슬픔은 노래되어 봄바람으로 살랑거렸지

 

, 내게도 심장이 있다는 걸 알았어

 

심장이 처음으로 말을 했어

아지랑이처럼 속삭였지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는

그 말 한마디

- 나는 알았어전문

 

 이 시에서 반복되는 시어인 심장에 주목한다. “내게 심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네 노래는 내 심장의 파도였어”“, 내게도 심장이 있다는 걸 알았어”“심장이 처음으로 말을 했어처럼 시의 화자가 자신의 심장을 의식하게 했던 동인(動因)은 바로 노래다. 리듬의 물결을 타고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파동은 음악이 실현하는 주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고, 이 음의 물결은 화자에게 심장의 떨림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시인은 구체적 체험에서 시작해서 예술의 초월적이고도 보편적인 상태를 실감나게 진술한다. ‘승화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에는 시적 정황이 충분하지 않지만, 위 시는 노래를 기점으로 전후의 감정 상태가 비약적인 거리만큼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 “어느날 네가/지구의 자전을 멈추게 하고/밤새도록 노래를 지어/불러주었을 때부터 시작하는, 화자의 희열의 지속은 내게 심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로 대변되는 생명의식의 자각에 그 기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 이전의 상태는 폐허요 절망이요 생명의식의 부재였지 않았을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시인에게 음악은 몸의 생명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정신적 생명의 세례와도 같다. 이 생명수의 흡입으로 시인은 시를 쓴다. 음악은 관계의 예술인 바, 주체와 대상이 서로 음을 매개로 속삭이는 소리의 밀어(密語)요 애무다. 아마도 시인은 그런 음악의 성분을 잘 알아차렸기에 자신의 시에서 자주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리라.

 

비가 온다

바람 없이 오는 비는 탬버린을 치듯

경쾌한 소리

시의 리듬을 만든다

시를 읊조린다

우리 할아버지의 초롱초롱 책 읽는 소리

 

마당에 널린 나락

장대비에 멍석까지 떠내려가도

그 빗소리 리듬으로 책만 읽던 우리 할아버지

그 아들

그 아들의 딸이

시를 읊조린다

 

비오는 마당에는

꽃밭에서 두꺼비 엉금엉금

어김없이 나타났는데

비가와도 맹꽁이 한 마리 나올 수 없는

삭막한 베란다

난 분 몇 동그랗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살던 집

내 유년의 집

그 꽃밭과 푹신한 흙 마당

어느새 슬쩍 옮겨놓고

시를 읊조린다

할아버지처럼

울 아버지처럼

비처럼

- 비 오는 날전문

 

 「비 오는 날에서 형상화한 지난날의 정경을 상상해본다. 그 옛날 화자의 할아버지가 책을 읽는 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진 추억과, 화자가 현재 시를 읊는 행위가 스며드는 장면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빗소리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문인선 시인은 시 낭송가로도 활동한다. 따라서 시인은 시를 낭송’, 즉 읊는 행위와 연결하는데 익숙한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편들에서 음악의 소재가 자주 나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마당에 널린 나락/장대비에 멍석까지 떠내려가도/그 빗소리 리듬으로/책만 읽던 우리 할아버지/그 아들/그 아들의 딸이/시를 읊조린다” ‘빗소리 리듬에 맞춰 책을 읽는 할아버지와, 그 손녀인 시인이 시를 읊조리는 일이 보기 좋게 겹친다. 시인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아름다움으로 해서 펼치는 평화로운 세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문인선의 시는 그런 아름다움의 풍경에 푹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가 세계 한복판에서 시를 읊조리며 꿈을 꾸는 장면을 상상한다. 푸르디푸른 녹원에서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노래, 그 노래에 얹혀 실려 가는 평화로운 꿈들을 상상한다. 그 꿈들은 시인이 오래전부터 성취하고 싶었던 꿈들이고,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고 가닿고 싶어 했던 꿈이었으리라. 흘러간 모든 것들은 아름답다. 아름답기에 두고두고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가.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혹은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르지만 그 실체만큼은 만질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당신이 있기에 우리는 살 수가 있다. 몸서리치며 그리워 상사(相思)의 병을 앓으면서도 손가락으로 그리는 그림, 이 그림이 글자가 되고 음표가 되어 허공으로 너울너울 날아간다. 문인선의 시가 그리 되고 싶어 하겠다.

 

 

 

 

 

 

 


문인선 시인

시낭송가/문학평론가/경성대시창작아카데미교수

교육청연수원강사전평화방송목요시담당

한국문협중앙위원부산문협연수이사여류시협6대회장

전국낭송대회심사위원장 다수한중윤동주문학상 심사위원장외 다수

실상문학작가/작품상백호낭송대상외 다수, <천리향>, <애인이생겼다>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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