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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짓는 목수

고영민의 「악어」에서 「구구」까지

송유미 시인 | 입력 : 2021/06/17 [00:50] | 조회수 : 113

너무나 감성적인 너무나 에세이적인 인터뷰/시인 고영민을 만났다

 

 

시집을 짓는 목수

고영민의 악어에서 구구까지

 

송유미

 

 

 

매년 오던 꽃이 올해는 오지 않는다

꽃 없는 군자란의

봄이란

 

잎새 사이를 내려다본다

꽃대가 올라왔을

멀고도 아득한 길

어찌 봄이 꽃으로만 오랴마는

꽃을 놓친

너의 마음이란

 

봄 오는 일이

결국은 꽃 한송이 머리에 이고 와

한 열흘 누군가 앞에

말없이 서 있다 가는 것임을

 

-고영민,'적막' 일부

 

 

#.1 에서 로 흘러가다

 

 …페루 인디언들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기 전 낚싯대와 대화를 합니다. ‘너는 바다에 나가면 고기를 많이 잡게 될 거야.’ 이 말을 통해 그 낚싯대는 고기를 잘 잡는 낚싯대가 됩니다. 남태평양 어느 섬의 원주민들은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이런 방법을 씁니다. 그들이 쓰는 무기는 날이 선 톱이 아니라 아우성입니다. 모든 주민들이 쓰러뜨릴 나무 주위에 둘러서서 3일 밤낮 나무를 향해 고함을 쳐댑니다. 그러면 나무속에 깃들어 있던 이 빠져나가면서 나무가 쿵, 하고 쓰러집니다

 

 시에서 시로 흘러가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강이 되어 끊임없이 세상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흐르는 시간의 관능官能 위에서 시집을 짓는 목수고영민 시인을 만났다. 그리하여 시의 관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구나 흔히 느낄 수 있는 일상들을, 쉬운 언어로 감동적인 그림처럼 구체화시키고 있는 시인이라는 점 때문일까. 기타 현 같은 긴장도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짭조름한 시의 맛을 내고 있는 시인은 어떤 모습일까? 첫 대면의 고영민 시인에게서 끊임없이 어디선가 송신되는 주파수느낄 수 있었다. 시인은 그것을놓치지 않으려고 매 초 매 분 시적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그는 손에 만년필을 쥐고 있었다.) 그것은 카메라를 손에서 한 순간도 놓지 않으려는 하이에나 같은 사진작가의 모습이었다. 해서 인터뷰어는 반은 부러움으로, 반은 질투심으로 짓궂게 물어보았다. “좋은 시를 쓰는 비결 좀 가르쳐주세요.”라고.

 

 “(너털웃음) 좋은 시요? 참 어려운 질문이군요. 그러나 시에도 드라마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독자에게 읽히고, 우선 읽히는 시가 좋은 시가 아닐까 합니다. 우선 드라마틱을 만들기 위해서는 흥미, 의미, 재미 세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드라마틱은 경험이고 진실함이고, 줄거리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웃음) 이거 시창작 강의 같은데요. 저야 말로 시에 무지 했습니다. 원래 소설지망생이었지요. 생각지도 못하게 등단을 했습니다. 그 무렵에 내가 거북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다에 갔더니 나 말고도 날고 기는 거북이들이 수두룩한 것입니다. 나와 비슷한 함민복 거북이, 이정록 거북이, 문태준 거북이들이 먼저 장악하고 있더군요.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내 시의 차별화 작업이었습니다. 그 차별화의 전략으로 12남매의 가족사, 위트, 해악, 쉽게 쓰기 등이었습니다. (사이) 내 시의 역량을 찾아내는 게 중요했습니다. 시를 애인으로 삼은 이상 밥을 먹다가도 빙그레 웃어주고 길을 걷다가도 떠올려 주고, 또 우연을 가장해서 그 애인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밤도 새우고 했습니다. (웃음)”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 시인은 2002문학사상으로 등단하여 악어(실천문학,2005),공손한 손(창비,2009), 사슴공원에서(창비,2012)를 냈다. 이어 3년 만에 치열한 시작 끝에 구구(문학동네, 2015)를 발간했다.

4번째 시집 구구는 현대인에게 소외된 존재에 대해 매우 심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전 시집과 다른 세계관을 보여준다. 순수시의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독자에게 실감나고 공감 있는 시를 써서 환호를 받는 행복한 시인이다. 소설가의 말처럼 내가 꼭 쓰고 싶은 것을 먼저 써버린 참 얄미운 시인이기도 하다.

 

#.2 , 그 존재에 밑줄 긋기

 

이야기는 다시 시인을 만나러 오는 기차 안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실은 시인을 만난 적이 없는 사실에도 불구하고(오래전부터 시인의 영혼을 시로 읽고 있었지만) 친한 시인을 만나러 달려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시인의 목소리는 너무나 귀에 익숙했다. 그래서 인터뷰어는 시인에게 목소리가 너무 좋네요.”라는 느낌과 다른 표현을 한 것이었다. 덜컹덜컹 동해남부선을 오고가는 포항행 무궁화호는 흑백 사진 같은 오래된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때마침 추석연휴로 좌석표가 매진된 터. 내 좌석은 수동식 개폐문만 밀면 오줌 지린내가 요동치는 화장실 앞. 좌석 옆자리에 나란히 앉게 된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는 심심한 얼굴로 내 손에 들고 있는 공손한 손을 훔쳐보며, “뭔 책 이유?”라고 묻더니 낚아채어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 이 책을 TV 뉴스에서 본거 같아. 이 책 주인을 잘 알슈? ”라고 묻는 것이다. 금시초문(시집 소개가 뉴스에 나오나?) 이었다. 이후 기차 안에서 고시인의 시집을 읽겠다는 계획을,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와 대화하는 것으로 대폭 수정하고 말아야 했다.

 덜컹덜컹 대는 무궁화 호 기차는 황금벌판을 가로 질러 달려가고 있었다. 그 바람에 누런 황금빛 벼이삭들이 흔들리는 풍경을 감상하다보니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 다니던 기억도 났다. 그러나 잠시 넋을 놓는 순간, 아뿔싸, 경주역에서 먼저 내리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로부터 고시인의 공손한 손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느려 터진 거북이 같은 무궁화 호는 2시간 20분 만에 포항역에 도착했다. 사실 포항 역에서 1230분에 도착할 서울 작가 김과 합류해서 시인이 정해준 장소인 스시무라라는 초밥집으로 부랴부랴 향했다. 그리고 약속시간 130분 정확하게 입구에서 세 사람은 동시에 한번 본 적 없는 그 꽃을/ 왠지 알고 있는 듯통성명하며 정겨운 인사를 나누었던 것이었다.

 시인이 예약한 룸은 한 평 미만으로 보였다. 시선을 모두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한 거리. 평소에도 낯가림이 심한 나는 약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무궁화 호 기차에서 잃어버린 공손한 손이 원인인 것도 같았다.

 그리하여 난 엉뚱하게도 1986년 서울 종로 어느 찻집에서 서벌 시조 선생님과 함께 박재삼 선생님과의 첫 대면을 상기하며 이렇게 물었다.

 

 고선생님, 늦었지만 <박재삼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라고 참으로 뒤늦은 축하 인사를 하는데, 맛깔스러운 모양새의 밑반찬과 물컵 등이 조용하게 종업원의 손에 놓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져 날라져 올 맛난 점심點心을 기다리는 동안, 시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낡은 녹음기에 담기 시작했다.

 

 “종종 설명이 잘 안 되는 인연을 만나고 놀라기도 합니다. (해미읍성에서 만났다는 시인의 어린 시절의 한문 선생님과의 인연 이야기는 지면상 다음 기회로 넘긴다.) 박재삼 문학상을 받던 그해 몇몇이 삼천포 노산 공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노산공원의 박재삼 시비를 보기 위해 간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삼천포를 다녀 온 2주 후인가 박재삼 문학상수상 소식을 가지고 새 한마리가 날아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행은 마치 박재삼 선생을 만나기 위해 간 게 되었습니다.

 어떤 시인의 이름으로 지어진 문학상을 탄다는 일은 그 사람이 되는 일이겠지요? 박재삼 문학상을 탔으니 박재삼 시인이 된 셈이죠.(웃음)“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삼천포 노산공원에 박재삼 시비를 보고 온 후, ‘박재삼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이 우연한 인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또한 시인을 만나러 오기 전 계속 박선생님과의 인연을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고 시인과의 인터뷰어 인연이 예사롭지 않은 인연처럼 생각 됐다.

 작금에 와서 나는 달빛같이 감성적인 인터뷰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하면 고영민 시인에게서는 달빛 냄새가 났다. 아니 시는 벙어리 소녀의 눈빛같아야 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시인의 깊은 눈에서는 반짝반짝 살비듬같은 이 별빛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대낮인데 시인의 주위를 맴도는 웅성웅성 눈에 보이는 듯한 의 소리를 느꼈던 것이다. 마치 시인의 앵두가 단 몇 분 만에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그의 마당에도착 한 것처럼

 

 이윽고 잘 차려진 점심식사가 공손한손에 의해 밥상 위에 보기 좋게 차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특별한 이 인터뷰를 위해 모인 세 사람이 어느 낯선 거리를 떠도는 나그네처럼,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고영민-공손한 손, 일부

 

 …새처럼 고개를 꺾어 뒤돌아보니, 한 가마솥의 을 먹은 아름다운 인연이다. 불가에서는 바람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 그 인연은 아득한 시간의 겁이 닿아서 만나는 시간이라 했던가. 겁은 성안 가득 겨자씨를 채우고 100년마다 그 겨자씨를 하나씩 꺼내어도 끝나는 않는 시간이라고 했던가.

 

 잠시 침묵처럼 수저 소리만 얼마간 지속됐다. 먼저 식사를 마친 사진작가의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 그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우두커니 방에 앉아 비의 이름을 짓네/ 매실이 익는 비/매실을 보내는빗소리가 들렸다. “그늘에서 그늘로 느리게 움직이는 핏물/음매애, 울음을 틀어놓고 있는/계곡물소리를 들려왔다.

 

 “고선생님의 시를 읽고 나서 정말 할 말을 잃었답니다. 직장 생활도 병행하면서 그렇게 시를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많이 덥죠?”라는 선문답禪問答. 그리고 닫힌 방문을 활짝 열면서,

 

 “제인 캠피온 영화감독의 피아노를 보셨죠? 저는 이 영화가 예술이 가져야 할 보편성(세속성)과 예술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봅니다. 여주인공 에이다가 배로 싣고 온 피아노가 예술의 상징성이라면,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찾아온 결혼상대(남편)는 보편성(세속성)입니다. 그는 피아노를 바닷가에 버리는데, 에이다의 연인(예술성)은 그녀를 사랑하고 이해해 줍니다. 미혼모 에이다가 낳은 아홉 살 사생아의 딸 플로다는 요정(뮤즈)이구요. 이처럼 시는 보편성과 예술성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어야 하고, 늘 그 긴장(시적인 상태)을 만들기 위해, 옛날 좋게 봤던 영화를 다운 받아 다시 보기도 합니다. 일단 시적 상태가 되면 시는 써지는데, 시적 상태를 만들기가 힘듭니다. 나의 시업과 직장생활도 이런 긴장 상태를 만들어준다고 믿습니다. 시만 쓴다면 아무래도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시적 긴장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식사를 왜 통 못하세요?(웃음)

 

  그랬다. 점심식사와 함께 하는 인터뷰. 정말 바쁘고 바쁘게 저마다 살아내야 하는 현대 시인의 초긴장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식사 중에 인터뷰라니. 죄송스러운 마음에 황황해서, 마치 중국 무협지 속으로 뛰어 들어온 것 같기도 했다. 얼마간 침묵을 지키지 못하고 내처,

 

 “시인께서는 포항에서 언제부터 사셨나요? 사실 저도 포항과는 깊은 인연이 있답니다. 어릴 적 아버님이 여기서 직장생활을 하셨거든요. 아버님을 만나러 엄마랑 자주 왔어요.”

 시인의 고요했던 눈빛은 약간 흔들리더니, 시인도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이사를 왔다고 했다. 현재 포항 포스코 교육재단 산하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두 권의 시집을 포항에서 생산 한 셈이니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포항의 지인 몇몇과 함께 하는 연분홍 축구단의 코치 겸 선수생활은 재미있습니다. 사실 13살의 장래 희망은 축구 선수였거든요. (사이) 청소년기 고향(서산)을 떠나서 낯선 서울에 살면서, 부모님이 계신 고향은 내게 큰 정신적인 위안처였습니다. 제 시의 도처에 나타나는 고향이야기들은 부모님을 떠나서 홀로 생활하는 시간들을 버티게 해 준 고향에 대한 집요한 기억들의 재 반복으로 인한 각인이지요. 그 때의 고향에 대한 끈질긴 기억들이 제 시의 구체성 확보 해주고 있다고 봅니다만

 

 이렇듯 시인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는 것 같다.

 바야흐로 시의 꽃향기가 진동하려 할 때, 가능한 짧은 시간 내에 점심點心을 챙겨먹고, 줄서서 점심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마음의 점만 찍고 일어서야 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한 바탕 비라도 쏟아질 듯 스시무라의 지붕까지 낮아져 있었다. 그런데 하늘은 왜 하늘이고 비는 비일까?

 

#3, 시의 관능, 그 견을 이야기하다

 

 고영민 시인의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깊은 눈빛을 바라보면서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가 남긴 병법서 오륜서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은 눈을 세게 하여 먼 곳을 살피는 것이고, 은 눈을 약하게 하여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다.”

 

 시인은 7년 정도 단학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봐서일까. 시인의 눈빛에는 먼 곳을 살피는 관과 가까운 곳을 보는 견이 함께 머물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무릇 세상 모든 시인에게 있어서, 과 견은 검객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니체는 그의 우상의 황혼에서  사람들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 했을 터. 그리고 18715월에 랭보는 시인은 보는 자(voyant=천리안, 시인은 우주의 모든 것을 투시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라고 제창했을 터. 그리하여 시인이란 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이를 위해서 끓임 없이 착란이 필요하다고 랭보는 이야기하고 있을 터.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시인에게 보고 듣는 것이 보고 듣는 것이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모든 소리와 형상 있는 것의 이면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시인,

 

 고영민 시인은 세상에나,

 “시가 그냥 보인다.”고 놀랍게도 말하고 있었다.

 

 거리를 걸을 때나 사물을 볼 때나 시가 되는 것이 보이고 난 그걸 받아 적습니다. 시로 옮겨지는 시간은 10-20분 사이 아주 짧습니다. 그러나 물(시심)을 끓어 올리는 데는 24시간 온 몸의 촉을 곤두세우고 살아갑니다. 시를 쓰기 전에 을 가까이 하는 데, 샤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일이 제의 의식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이런 보이는 일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저는 그 분(?)을 잘 모시려고 합니다.”

 

 시인은 잠시 침묵. 물속의 프리즘처럼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윽고,

 으음시는 불가능에 대한 가능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포항에 일이 계셔 들린 이성복 시인을 뵙게 됐습니다. 제 시를 읽으셨는지, 고시인의 시는 잘 떼 낸 뗏장같이 매끈하고 흠결이 없지. 그러나 시는 뗏장의 잔뿌리까지 보여주는 즉 끈질긴 생명이 아닐까?”하고 말씀하시는데, 그 한마디에 팍 오는 게 있었습니다. 시단의 대 선배의 말씀에서 각절 되어 나온 시집이 구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딴은 많은 각고와 애정으로 나온 시집입니다.

 

 우리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다시 자리를 옮긴 곳은 포항 시청 근처 커피 프렌즈’. 찻집의 부제가 있는데 커피 뽑는 집’. 시간을 되돌려보면 직접 뽑아 끓여 주는 아메리카노 커피 맛이 특별했다.

 실내에 흐르는 음악은 알비노의 아디지오에 이어, 시와 사상발행인이었던 정영태 시인이 좋아했던 Aspri Mera Ke Ya Mas가 흘러나온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좋은 시인의 자질을 직관적으로 알아내어 시인 김언과 소설가 김곰치 등을 음양으로 키운 정영태 시인이 살아계셨다면, 아마도 고영민의 시인을 천재적인 작가라고 침이 튀도록 혹해서 상찬을 했을 거라는 아쉬운 상상도 하면서.

4권의 시집을 지배하는 아바타라(avataara)”의 실재, 시인의 아버님는 어떤 분이셨느냐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요청했다.

 

 저희 아버님은 집을 짓는 목수셨습니다. 우리 전통 한옥은 못을 사용하지 않아요. 해서 잘못 지은 집은 이가 맞지 않으면 틀어지기 마련이라, 당신은 집을 지을 동안에는 오직 짓고 있는 만 생각하시는 걸 보고 배웠지요. 그 영향인지 시도 집짓기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아버님은 힘들어 집을 지어 놓으면 마루에 누워도 보고 잠도 자고 싶고 그렇더구나. 하지만 목수는 집을 짓는 사람일뿐, 집을 지으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하는 게 옳은 일이지.”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시인에게 시집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을 지었으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시간은 시의 관능의 물결을 타고 점점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속세의 시간은 기차를 타고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구입한 구구등을 시인에게 건네며 사인을 해줄 것을 눈빛으로 말하자, 시인은 예의 큰 눈망울을 굴리더니 인터뷰의 상징물, ‘만년필 형 볼펜으로 사인을 해서 건네준다. (무궁화호에서 발이 달려 도망간 잃어버린 공손한 손! 그 이야기를 재미로 들려들었더니, 웃으면서 서류 가방에 꺼내 김작가와 나에게 책 선물을 함.)

 째깍째깍 소리 내어 흘러가는 시간을 잡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나는 사슴공원에서의 발문의 한쪽을 펼쳐 보이며 “‘무규칙 이종격투 시 창작 배틀은 지금도 계속 중이냐 물으니 시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에게 카톡으로 보낸 시들을 살짝만 보여준다. ‘생생한 날것의 시들이 가득 찬 것 같다. 아직 채 가공이 끝나지 않은 원석들이었다. 스크롤을 내려도 끝없이 시를 쏟아내며, 시인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흐르는 음악과 함께 듣고 있었다.

 

 나는 시를 쓴다기보다는 받아낸다는 생각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시를 수신하는 일종의 안테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받아낼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만드느냐, 만들지 못하느냐에 따라 시를 쓰느냐 못 쓰느냐가 결정 됩니다. 마치 라디오나 TV의 수신 안테나의 주파수가 맞으면 음악이 들리거나 영상이 보이고,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칙칙거리고 영상이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우주의 어떤 영혼이 나를 택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어떤 거짓과 타락으로 비시적인 상태가 되면 나는 몇날 며칠 반성하며 시혼을 부르기 위해 성심을 다합니다.

 

 시인다운 아주 시적인 선문답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시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저 보들레르의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사이의 은밀한 소통의 회로를 찾아내어, 시를 통해 저 너머에 있는 불가시의 존재와의 교감(correspondances)을 끝없이 시도하여 자가 시인이라는.

 나는 알 수 없는 오한을 추스르며, 나를 왜 때리냐고……내가 껍데기냐고, 내가 껍데기냐고 고영민도 더는 나를 때리지 못하고 우리는 부둥켜안고 엉엉 울어버렸다는, 윤성학 시인과의 그 끈끈한 우정 이상, 사랑 이하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았다.

 

 … (웃음) 사슴공원에서에 발문을 맡아준 윤성학 시인은 나보다 두어 살 어리지만 대학동기동창입니다. 우리는 서로 매일 시를 써서, 메일로 주고받으며 무규칙 이종격투 시창작배틀을 벌였습니다. 우리가 등단한 2002, 나는 자그마치 300편을 썼고 윤성학은 250편정도 썼으니까요.

시인의 말은 계속 놀라움이었다. 세상에나, ‘시창작 배틀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시인은 가방에서 묵직한 서류 뭉치 같은 시집 한권 분량이 훨씬 넘는 원고를 한 페이지 씩 넘겨 보였다. 이윽고 사진만 열심히 찍던 김작가가 시인의 시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며 저도 읽어봐도 돼요?”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이에 시인은 고개를 끄떡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새벽닭이 방금 생산한 따끈따끈한 계란 같이 느껴져서, 손바닥으로 원고뭉치(초고, 봄의 정치)를 스캔하듯이 만져보고 있었다. , 이 넉넉한 시의 살림살이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랬다. 시인의 치열한 시의 우물은 하늘처럼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우물 속으로 하늘에서 빗방울 한 방울 두 방울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그네 둘을 뒷좌석에 태우고 배웅하기 위해 고시인의 승용차는 포항시청을 지나서 포항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때늦게 떠오르는 잡문雜問 몇 개를 던져보지만, 시인은 귀를 닫고 운전에다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렇게 인터뷰 팀들은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그리고 첫사랑처럼 잊어버리지 않도록 나는 시집 구구속에 비둘기 몸만 한 큰 돌멩이 하나를 넣어 주었다.”, 덩달아서 나도 주먹만 한 작은 돌멩이 하나 주워서 구구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이렇게 공손한 손에서 시인의 말을 한자 한 자 옮겨 적고 있는, 只今이다.

 

매화가 피고

참외가 익고

연꽃이 피고

눈이 와도 이젠 모일 수 없는 것들이 내겐 있다.

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할 수 없는 것들이 네겐 있다.

그래도 나는 만나러 가야 한다.

혼자라도 만나 한 시절 떠들고 실컷 울고 웃다 와야 한다.

매화가 피었기에,

참외가 익었기에,

서지에 연꽃이 피고 큰 눈이 왔기에.

 

 좋은 시인이 살고 있기에 포항은 행복한 도시 같다무궁화호의 애틋하고 가난한 추억의 이름으로, 불현듯 시인을 찾아가는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상상도 해보면서.

 

 

*이 글은 폐간된 계간 ·던시에 게재된 글을 일부 개정하였음을 밝혀둔다.

 

 

 

 

 

 

고영민 시인 약력

충청남도 서산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 학사

02년 문학사상 등단

22회 천상병시문학상

4회 박재삼문학상

7회 지리산문학상

시집 봄의 정치외 다수

 

 

 

 

 

 

 

 

송유미 시인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외 다수 있으며, 2회 김민부 문학상 등 수상했다.

15년도 세종도서 문학 나눔 우수도서로 검은 옥수수 밭의 동화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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